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 - 위험정보 독해력, 불량지식 해독력
최낙언 지음 / 예문당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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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척 오래전부터 식품이나 영양, 건강 같은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제 나이에서 10년을 빼면 남는 세월만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남들은 지금 제 나이 때부터 관심이 급증한다던데 저는 오히려 관심이 줄었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TV나 인터넷에서 떠드는 이야기엔 거의 귀를 닫았다고 해야 옳을 거예요. 책으로는 꾸준히 찾는 걸 보면요. 그렇게 귀를 닫고 있어도 아마씨가, 퀴노아가, 렌틸콩이, 병아리콩이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걸, 굳이 찾아가며 볼 필요가 없어요. TV나 인터넷에서 하는 이야기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멀리하는 것인데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부 시책에 따라 떠들어대는 학자, 남들과 다른 견해를 과장되게 말함으로써 인기를 먹고사는 이른바 쇼 닥터 같은 이들이 꼴보기 싫은 것도 있지만, 어떤 식품이 좋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가격이 급상승하는 걸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미 같은 경우, 지금은 가격이 많이 안정화되었지만, 백미는 몸을 망치고 현미가 좋다는 것이 이슈가 되자 현미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백미보다 도정 공정이 적은데 - 겨만 벗겨낸 것이 아닌가! - 도 말인데요. 가장 겉층에 있는 잔류 농약은 어쩔 셈인지. 유기농이 아닌 다음에야 농약 걱정을 안 할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유기농은 괜찮을까요. 약을 쓰지 않고 기르는 데에는 오리나 다슬기 같은 친환경 방법이 사용되고 농부의 수고로움도 훨씬 클 테지만 식물 자체(벼)도 살아남기 위해 많은 피토케미컬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반드시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현미의 이로움을 주장한 학자조차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겁니다. 100% 안전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장이 약하면서 치아도 약한 사람은 현미밥이 잘 맞지 않습니다. 어차피 쌀에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다 채우지 못하므로 귀리나 보리 같은 다른 곡류를 섞어 밥을 짓는 것이 훨씬 맛도 좋고 영양 밸런스도 좋습니다.

예를 든다는 것이 무척 길어지고 말았네요. 하지만 저건 단적인 예일뿐입니다. 지구 상의 인구 중 많은 (70~90%) 사람들이 대부분 15종의 곡류와 5종의 육류만을 섭취(기타 채소, 어패류는 따로 두도록 하고) 하는데, 옥수수를 많이 먹거나 밥을 많이 먹는다고 큰일 나는 것처럼 떠드는 현대에선 먹거리에 대해 현명하게 식탁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기 좋고 친환경 식자재가 많은 제주가 성인병, 비만율 전국 1위라는 건 상상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는  이야기 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도 영양이나 식품군에 관심이 있는 저조차 비만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식까지 비만이거든요.

식품 선택에 관심이 많은 나머지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무언가가 TV에 등장했다고 해서 찾아다니며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근조차 과량 섭취하면 간 기능에 과부하가 걸려 사망할 수 있는데 여타 다른 음식 - 게다가 약효가 있는 (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죽하겠습니까. 적당히 지혜롭게 경제적인 면도 고려하며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첨가물, 가공식품 없는 세상에서는 살기 글렀는데 TV나 인터넷의 정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줏대를 단단히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이라는 책을 읽어봅시다. 
이 책에는 식품에 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고 앞으로 흘러들어 올 것들에 대한 판별을 할 수 있도록 논리적인 문장으로 고정관념을 깨부숩니다.
하지만 주의합시다. 혹시 이 책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건 아닌가 의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불안감을 전도하는 마케터나 쇼 닥터를 비난하면서 이 책 역시 '믿을 만한 정보가 없다는 불안감'을 전도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다른 이야기로 주목을 받으려 한다는 관점에서는 그들 - 마케터, 쇼 닥터, 일부 학자 -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식품 공학과 영양학, 의약학, 마케팅에 대해 두루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자가 그 모든 것들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 역시 문헌이나 자료를 자신의 판단으로 수용 혹은 배제하며 지식과 이론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후에도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제발 휘둘리는 것은 이제 그만.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하면 이미 사람들은 선동당해있다 - 괴벨스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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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 쉰다섯, 비로소 시작하는 진짜 내 인생
서정희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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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아는 PD와 저녁을 먹으며 잡설을 하다가 서정희 씨(이하 존칭 생략)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뭐, 결론은 비호감이다, 주는 것 없이 얄밉다, 완벽주의자라서 피곤하다, 깍쟁이다 등등의 부정적인 이야기였는데, 저야 간혹 CF에서 보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제가 관심 두는 연예인이 있기나 했나요. 호감이 있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였을 뿐, 별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뿐인가 하면 연예인 누가 연애를 하건 결혼을 하건 이혼을 하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 남의 일이라고 쉽게 입방아를 찧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가십 기사나 지라시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거든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하지만 아무리 그런 저라도 서세원이 서정희를 폭행한 사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잘 모른다지만 소문난 잉꼬부부인데다가, 서정희의 완벽주의 때문에 서세원이 피곤하게 산다는 이야기도 주워들은 터라 처음 폭행 사건을 접했을 때엔 뭔가 무지 열받게 했나 보다 생각하면서, 그래도 어떻게 때릴 수 있냐며 분노했습니다. 그 사건이 수십 번 폭행의 종장이었다는 것도 모르고요. 

그들의 첫 단추는 애초에 잘 못 끼워져 있었습니다. 어린 서정희를 그가 낚아챈 그날부터 말이에요. 약간의 결벽증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으니 순결에 대한 마음가짐은 어땠을지 말하지 않아도 뻔합니다. 지금과는 무척 다른 시대였으니 더요. 그러니 시댁의 모진 반대와 폭행에도 그와 헤어지기는커녕 쫓겨날까 두려워했겠죠. 그의 폭력성은 시댁에서 기인한 건 아닐까요. 처음부터 폭력적인 건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에요. 
끊임없는 언어폭력, 자존감 파괴, 그런 게 어떤 건지 아는 저는 그녀가 그런 환경에서도 CF 모델이나 살림 고수의 모습을 TV에서 보여주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 '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재능이 있다 해도 머릿속 저 귀퉁이에서 '네까짓 게'라는 말이 울리게 마련인데 그걸 이겨낼 만큼 가족 사랑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건 오직 가족이었고, 자신이 좀 더 노력하면 가능할 거라 믿었습니다. 그게 허상이라는 걸 조금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정희>를 읽으며 답답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서정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였습니다. 얄미운 그녀. 글에 다 드러납니다. 
어쨌든 그녀는 여전히 비호감입니다. 저랑은 죽어도 안 맞는 스타일이에요. 지나치게 꼼꼼한 것도, 교회에 그렇게 열성적인 것도, 이혼 후 무너져 정신 못 차린 시간도. 저랑은 에너지도 아우라도 정반대의 것입니다. 
아아아... 싫다. 정반대인데 어째서 닮은 구석이 있는 걸까요. 바보같이. 그 닮은 부분이 있다는 게 정말 싫습니다. 왜 하필 그런 걸 닮아서.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렇게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이에게서 자신과 닮은 단점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그래서 여전히 그녀가 싫은가 봅니다. 그래요. 여전히 호감가지는 않지만 그녀의 새로운 출발만큼은 응원하고 싶습니다. 
서정희 씨, 잘 될 거예요. 당신에겐 달란트가 있잖아요. 반짝반짝 빛나는.

** <정희>는 서정희의 에세이로 그녀의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어릴 적 성격도, 서세원을 만나 결혼 생활과 파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새로운 발돋움을 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실려있으나,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녀는 왜 해피엔딩을 꿈꿨던 시나리오를 폐기했을까요. 지금까지 해피 하지 않았으니 아직은 엔딩을 향하는 연장선상에 서 있는 건데요. 해피엔딩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는 거라고 누가 정했다고. 지금부터 해피한 엔딩을 만들어 가면 되는 거예요.

**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거나 같은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그러니 저랑 정반대인 서정희의 성격이나 삶의 방식도 존중합니다. 다만 좀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주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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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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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행복 탓으로 돌리는 한 인간의 손에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사랑했던 가족을 잃었습니다. 할멈은 죽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외롭거나 슬프거나 무섭지 않았습니다.

<아몬드>의 작중 화자인 윤재는 알렉시티미아로, 감정 표현 불능증입니다. 이런 증례의 사람이 있다는 건 책에서나 인터넷 어디선가 몇 번 보아 알고 있었지만,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처음입니다. 하긴 이내 잊어버릴 텐데 이름을 알게 된 것이 무슨 소용일까요. 알렉시티미아는 후천적이거나 선천적인 이유로 편도체가 작거나 축소되어 감정을 제대로 느끼거나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증상인데요. 희로애락의 표현 때문에 겪는 불편함과 이질감 - 은 상대가 느끼는 것이지만, 본인에게서 가장 위험한 건 '공포'를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포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감정으로 두려움이 제거된 상태라는 건 무방비하게 위험에 노출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눈앞에서 할멈과 엄마가 묻지 마 폭행을 겪는 순간에도 말입니다. 그래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식당의 유리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으니까요. 죽음의 공포와 생존의 본능보다는 엄마와 할멈을 구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을 뿐이지.

엄마는 윤재에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습니다. 편도체를 닮은 아몬드를 많이 먹으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에, 사랑과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길 소망하는 마음에 아몬드를 주었습니다. 아몬드나 호두 같은 견과류를 꾸준히 먹어 왔지만 결국 뇌가 쪼그라드는 파킨슨 증후군을 앓고 있는 한 노인을 알고 있기에 과연 그런 게 소용 있을까 싶지만, 한때 아이의 아토피를 치료해보겠다고 이런저런 것들을 발라주며 괴로움에서 벗어나길 바랐던 저이기에 윤재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임신 중에 했던 몇 번의 흡연 같은 좋지 않은 행동 때문에 윤재가 이렇게 된 것 같아 마음 아파했던 것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할멈과 엄마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감정을 익히게 해주었습니다. 비록 사건이 나던 날까지 감정을 살리는 데는 실패했지만요. 
엄마를 병원에 두고 할멈의 장례를 치르던 날에도 눈물은 나지 않았습니다. 
아동 센터에 가는 대신 자립을 선택한 윤재는 엄마의 헌책방을 운영하며 학교에 다닙니다. 건물주이자 빵집 주인인 심 박사는 윤재의 멘토가 되어 줍니다. 각자 가진 아픔의 크기는 다르지만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윤재가 안타깝습니다. 윤재는 전학생 곤을 만납니다.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는 니트로글리세린 같은 아이 곤은 윤재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아니, 너무나 닮았습니다.

윤재와 곤은 '표현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윤재는 자신을 포함한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없어 그랬고, 곤은 넘쳐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런 두 아이가 만났습니다.



나는 그런 결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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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부엌 -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
류지현 지음 / 낮은산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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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의문을 가졌음에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유통 시스템이 무척 좋아진 현대에 냉장고는 왜 점점 커질까 하는 것인데요. 문 밖에 나가면 마트 건 편의점이건 돈만 있으면 손쉽게 식료품을 구할 수 있으므로 그 옛날처럼 저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가정마다 900L 짜리 (혹은 그 이상)의 냉장고가 필요한 걸까요. 심지어 김치냉장고는 따로 두고요.

전기냉장고는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조금씩 보급되다 80년대쯤 이르러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냉장고 없던 시절을 겪었던 어른들께 냉장고의 필요성을 여쭤보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저희 엄마조차 업소용 초대형, 대형, 중형에다가 화장품 재료를 보관할 소형(이라지만 300L는 됨직한) 냉장고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단 두 식구뿐인데 말이에요. 참, 김치냉장고도 보통의 것과 김치통 4개가 들어가는 작은 것해서 두 대나 있었어요. 이사하면서 냉장고를 줄여서 대형과 소형, 그리고 보통의 김치냉장고 한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참고로 식량을 마구 퍼가는 딸이 있거나 한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얻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비단 저희 엄마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오히려 냉장고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3~4년 묵은 명절 떡도 괜찮다 할 정도로요. 
냉장고가 커져서 그런지 마트에서 파는 식료품의 포장 단위도 커졌습니다. 아니, 포장단위가 크니까 냉장고가 커진 건가요? 곰곰이 과거를 되짚어보지만 이 역시 쉬이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예전엔 식사 준비 전 정육점이나 재래시장에 가서 돼지고기 반근을 사다가 찌개를 끓여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조금 눈치가 보입니다. 그래서 다른 고기도 조금 더 사거나 필요량 보다 더 많이 사게 되죠. 돼지고기를 1 Kg, 2 Kg, 심지어는 5~6 Kg 단위로 구매해 가정에서 소분하여 냉장, 냉동 보관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척에 마트도 정육점도 전통시장도 있는데 말이에요.

<사람의 부엌>의 류지현은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습니다. 
냉장고 없던 시절, 식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염장법이니 당장법같이 소금이나 설탕을 이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건조하고 수분을 이용하는 등 자연의 은혜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책에서의 저장법은 해외의 것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당장 시도해 볼만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시사하는 것은 식품 저장법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자연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근래 친환경에 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온 저장이 이 식품에 관한 친환경적인 방법인지 고려하지 않은 채 가정 내 전력 소모량이 가장 높다 해도 과언이 아닌 냉장고를 24시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간헐적으로 가동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요.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것과 실온에 두어도 좋은 것들이 모두 들어가서 버거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 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신도 잊어버린 저 한 귀퉁이에서 상해 가는 식재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저자 류지현의 기행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을 이용하며 그에 맞는 방법으로 풍요롭게 살아가는 - 돈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하 통로를 이용하기도 하고, 흐르는 물을 건물 안으로 통하게 하기도 하고, 겨울에 쏟아지는 눈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선선한 지역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더운 지역은 태양을 이용하거나 병조림, 오일 담금 등을 이용하여 환경에 맞는 저장법을 택했습니다. 그들 삶의 지혜를 배우다 보면 얼마나 미련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장 음식을 마련한다는 건 얼마나 수고로운지. 김치를 담그고 장아찌를 하고, 채소를 말리고... 그런 것들을 하는 걸 보기만 해도 피곤합니다. 위의 것들을 즐겨 하던 저조차도 된장 고추장 같은 건 담그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은 김치나 장아찌도 장만하지 않습니다만. 올해는 선녀벌레(로 추정되는)들이 꽃씨처럼 너무 많이 날아다녀서 채소를 말릴 엄두도 못 냈습니다. 매일 내리쬐는 햇볕이 그냥 버려지는 게 어찌나 아까운지. 우리는 비타민 D를 머금은 채소를 마련하거나 사 먹는 대신에 비타민제로 보충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건조된 식품을 제대로 불려 요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과거처럼 천연 저장법을 이용하는 건 무척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냉장고를 없앨 순 없습니다. 하지만 소량의 장을 보고, 냉장과 실온에 둘 것을 구분하여 지혜롭게 식생활을 즐긴다면 나도 좋고 지구도 좋아할 것입니다. 

- 지금 냉장고 안의 감자, 양파, 고구마, 토마토부터 꺼내 놓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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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7 7 시리즈
케리 드루어리 지음, 정아영 옮김 / 다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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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특히 영상 매체를 이용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정보의 영향력이란 상상 그 이상입니다. 별것 아닌 일이 크게 부풀려지거나, 오히려 축소되기도 하는데 대중은 그것을 진실이라 착각합니다. 사건의 가해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내세워 피해자로 바뀌기도 하는 일은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제는 하도 속아서 제법 예리한 판단을 하게 된 대중들도 여전히 언론 플레이에 속곤 합니다. 만일 일부 기득권층에게 언론 통제력이 몰려있다면 어떨까요. 무척 공정한 방송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압력이나 돈의 힘으로 진실이 왜곡될 것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셀 7>의 배경이 되는 곳은 디스토피아 영국입니다. 빈부의 양극화가 무척 심한 데다가 통신 요금마저 비싸, 요즘 초등학생도 가지고 있다는 휴대폰은커녕 마치 그 옛날 이장님 댁에서 전화 빌려 쓰듯 집안에 일반 전화 갖추기도 힘든 시대니 인터넷 또한  비용 때문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도서관 같은 공공 기관조차 돈이 없으면 이용할 수 없으니 도서관에 가서 이용하면 된다는 말은 빵 대신 과자를 먹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일겁니다. 
재판정에서의 잘못된 판결로 범법자가 무죄방면되어 무참한 살인을 저지른 것을 계기로 이 나라의 사법제도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사형 받아야 마땅한 자 - 혹은 그렇게 추정되는 자-를 감옥에 가두고 7일 동안 '눈에는 눈'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유죄, 무죄를 ARS나 문자 투표로 결정합니다. 죄수는 7일간 매일 전기의자와 가까워지는데, 수감되는 방도 바뀝니다. 전 국민이 방송을 통해 범죄 사실과 기록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쪽에 투표하면 됩니다. 수많은 사람이 표결하므로 언뜻 보기에 공정한 것 같지만, 전화번호 하나당 기회가 한 번 있는 게 아니라, 원하는 만큼 계속 투표할 수 있습니다. 그게 몇 만 도수이건 상관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수감자의 무죄를 주장하여 아껴둔 돈으로 간신히 한 표를 던진다 해도 재벌이 그 사람을 유죄로 만들기로 결정했다면 수감자는 전기 의자 행이 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시스템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7년 전 제주 세계 7대 자연 경관 투표 독려가 있었습니다. 저도 소중한 한 표를 던졌는데, 여러 번의 투표가 가능하단 말을 듣고선 더 이상 버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그렇다면 투표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도정에서 독려하고 심지어 공공 기관에서는 사내 전화로 열심히 ARS를 눌러댔다고 합니다. 결국 이때 사용된 행정 전화 요금은 211억 8600만 원이었고 KT가 41억을 감면해주어 160억의 요금을 갚아야 했습니다. 이 요금은 올해 4월 드디어 완납을 했고, 당시 상당수의 공무원들은 휴대폰으로 여러 번 투표에 참여했으니 대국민 사기극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2011년에 세계 자연 경관에 선정되었으니 돈 없어서 투표 못한 나라와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가지고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구나하는 마음에 별로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돈으로 투표하는 어이없는 시스템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소설 <셀 7>에 등장합니다. 투표 결과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그들은, 7일간 교도관의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면서 대중의 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의 대결을 보며 공식적인 살인을 즐기듯, 무리하게 돈을 써가며 사형 집행장에 참관하러 옵니다. 짜릿한 맛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기 때문이지요. 죄수가 실제로 무죄 건 유죄 건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합법적으로, 내 눈앞에서, 내가 유죄라고 배팅한 자가 죽으면 좋은 겁니다.

소설의 주인공 마사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유명인이자 사회사업가 잭슨 페이지를 총으로 쏘아 죽인 일로 수감되었습니다. 전직 검사 출신이지만 재판정이 사라진 이후 상담자로 일해왔던 이브는 마사를 담당하지만 마사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한편, '눈에는 눈'이라는 방송을 통해 마사는 거의 97%의 유죄를 확정받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앞으로 7일간 그녀의 처지는 바뀔 수 있을지, 어째서 잭슨을 죽인 건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몇 가지의 반전은 있었지만 복선을 너무 진하게 깔아 놓은 바람에 사건의 흐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뒷이야기가 궁금해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즐겁게 읽고, 언론 플레이와 부조리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마사와 아이작의 러브 스토리를 즐겨도 좋고요.

*** 영국에서 TV 시리즈물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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