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7 7 시리즈
케리 드루어리 지음, 정아영 옮김 / 다른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언론, 특히 영상 매체를 이용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정보의 영향력이란 상상 그 이상입니다. 별것 아닌 일이 크게 부풀려지거나, 오히려 축소되기도 하는데 대중은 그것을 진실이라 착각합니다. 사건의 가해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내세워 피해자로 바뀌기도 하는 일은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제는 하도 속아서 제법 예리한 판단을 하게 된 대중들도 여전히 언론 플레이에 속곤 합니다. 만일 일부 기득권층에게 언론 통제력이 몰려있다면 어떨까요. 무척 공정한 방송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압력이나 돈의 힘으로 진실이 왜곡될 것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셀 7>의 배경이 되는 곳은 디스토피아 영국입니다. 빈부의 양극화가 무척 심한 데다가 통신 요금마저 비싸, 요즘 초등학생도 가지고 있다는 휴대폰은커녕 마치 그 옛날 이장님 댁에서 전화 빌려 쓰듯 집안에 일반 전화 갖추기도 힘든 시대니 인터넷 또한  비용 때문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도서관 같은 공공 기관조차 돈이 없으면 이용할 수 없으니 도서관에 가서 이용하면 된다는 말은 빵 대신 과자를 먹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일겁니다. 
재판정에서의 잘못된 판결로 범법자가 무죄방면되어 무참한 살인을 저지른 것을 계기로 이 나라의 사법제도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사형 받아야 마땅한 자 - 혹은 그렇게 추정되는 자-를 감옥에 가두고 7일 동안 '눈에는 눈'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유죄, 무죄를 ARS나 문자 투표로 결정합니다. 죄수는 7일간 매일 전기의자와 가까워지는데, 수감되는 방도 바뀝니다. 전 국민이 방송을 통해 범죄 사실과 기록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쪽에 투표하면 됩니다. 수많은 사람이 표결하므로 언뜻 보기에 공정한 것 같지만, 전화번호 하나당 기회가 한 번 있는 게 아니라, 원하는 만큼 계속 투표할 수 있습니다. 그게 몇 만 도수이건 상관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수감자의 무죄를 주장하여 아껴둔 돈으로 간신히 한 표를 던진다 해도 재벌이 그 사람을 유죄로 만들기로 결정했다면 수감자는 전기 의자 행이 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시스템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7년 전 제주 세계 7대 자연 경관 투표 독려가 있었습니다. 저도 소중한 한 표를 던졌는데, 여러 번의 투표가 가능하단 말을 듣고선 더 이상 버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그렇다면 투표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도정에서 독려하고 심지어 공공 기관에서는 사내 전화로 열심히 ARS를 눌러댔다고 합니다. 결국 이때 사용된 행정 전화 요금은 211억 8600만 원이었고 KT가 41억을 감면해주어 160억의 요금을 갚아야 했습니다. 이 요금은 올해 4월 드디어 완납을 했고, 당시 상당수의 공무원들은 휴대폰으로 여러 번 투표에 참여했으니 대국민 사기극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2011년에 세계 자연 경관에 선정되었으니 돈 없어서 투표 못한 나라와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가지고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구나하는 마음에 별로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돈으로 투표하는 어이없는 시스템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소설 <셀 7>에 등장합니다. 투표 결과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그들은, 7일간 교도관의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면서 대중의 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의 대결을 보며 공식적인 살인을 즐기듯, 무리하게 돈을 써가며 사형 집행장에 참관하러 옵니다. 짜릿한 맛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기 때문이지요. 죄수가 실제로 무죄 건 유죄 건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합법적으로, 내 눈앞에서, 내가 유죄라고 배팅한 자가 죽으면 좋은 겁니다.

소설의 주인공 마사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유명인이자 사회사업가 잭슨 페이지를 총으로 쏘아 죽인 일로 수감되었습니다. 전직 검사 출신이지만 재판정이 사라진 이후 상담자로 일해왔던 이브는 마사를 담당하지만 마사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한편, '눈에는 눈'이라는 방송을 통해 마사는 거의 97%의 유죄를 확정받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앞으로 7일간 그녀의 처지는 바뀔 수 있을지, 어째서 잭슨을 죽인 건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몇 가지의 반전은 있었지만 복선을 너무 진하게 깔아 놓은 바람에 사건의 흐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뒷이야기가 궁금해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즐겁게 읽고, 언론 플레이와 부조리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마사와 아이작의 러브 스토리를 즐겨도 좋고요.

*** 영국에서 TV 시리즈물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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