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부엌 -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
류지현 지음 / 낮은산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몇 년간 의문을 가졌음에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유통 시스템이 무척 좋아진 현대에 냉장고는 왜 점점 커질까 하는 것인데요. 문 밖에 나가면 마트 건 편의점이건 돈만 있으면 손쉽게 식료품을 구할 수 있으므로 그 옛날처럼 저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가정마다 900L 짜리 (혹은 그 이상)의 냉장고가 필요한 걸까요. 심지어 김치냉장고는 따로 두고요.

전기냉장고는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조금씩 보급되다 80년대쯤 이르러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냉장고 없던 시절을 겪었던 어른들께 냉장고의 필요성을 여쭤보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저희 엄마조차 업소용 초대형, 대형, 중형에다가 화장품 재료를 보관할 소형(이라지만 300L는 됨직한) 냉장고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단 두 식구뿐인데 말이에요. 참, 김치냉장고도 보통의 것과 김치통 4개가 들어가는 작은 것해서 두 대나 있었어요. 이사하면서 냉장고를 줄여서 대형과 소형, 그리고 보통의 김치냉장고 한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참고로 식량을 마구 퍼가는 딸이 있거나 한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얻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비단 저희 엄마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오히려 냉장고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3~4년 묵은 명절 떡도 괜찮다 할 정도로요. 
냉장고가 커져서 그런지 마트에서 파는 식료품의 포장 단위도 커졌습니다. 아니, 포장단위가 크니까 냉장고가 커진 건가요? 곰곰이 과거를 되짚어보지만 이 역시 쉬이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예전엔 식사 준비 전 정육점이나 재래시장에 가서 돼지고기 반근을 사다가 찌개를 끓여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조금 눈치가 보입니다. 그래서 다른 고기도 조금 더 사거나 필요량 보다 더 많이 사게 되죠. 돼지고기를 1 Kg, 2 Kg, 심지어는 5~6 Kg 단위로 구매해 가정에서 소분하여 냉장, 냉동 보관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척에 마트도 정육점도 전통시장도 있는데 말이에요.

<사람의 부엌>의 류지현은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습니다. 
냉장고 없던 시절, 식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염장법이니 당장법같이 소금이나 설탕을 이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건조하고 수분을 이용하는 등 자연의 은혜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책에서의 저장법은 해외의 것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당장 시도해 볼만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시사하는 것은 식품 저장법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자연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근래 친환경에 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온 저장이 이 식품에 관한 친환경적인 방법인지 고려하지 않은 채 가정 내 전력 소모량이 가장 높다 해도 과언이 아닌 냉장고를 24시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간헐적으로 가동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요.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것과 실온에 두어도 좋은 것들이 모두 들어가서 버거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 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신도 잊어버린 저 한 귀퉁이에서 상해 가는 식재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저자 류지현의 기행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을 이용하며 그에 맞는 방법으로 풍요롭게 살아가는 - 돈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하 통로를 이용하기도 하고, 흐르는 물을 건물 안으로 통하게 하기도 하고, 겨울에 쏟아지는 눈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선선한 지역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더운 지역은 태양을 이용하거나 병조림, 오일 담금 등을 이용하여 환경에 맞는 저장법을 택했습니다. 그들 삶의 지혜를 배우다 보면 얼마나 미련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장 음식을 마련한다는 건 얼마나 수고로운지. 김치를 담그고 장아찌를 하고, 채소를 말리고... 그런 것들을 하는 걸 보기만 해도 피곤합니다. 위의 것들을 즐겨 하던 저조차도 된장 고추장 같은 건 담그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은 김치나 장아찌도 장만하지 않습니다만. 올해는 선녀벌레(로 추정되는)들이 꽃씨처럼 너무 많이 날아다녀서 채소를 말릴 엄두도 못 냈습니다. 매일 내리쬐는 햇볕이 그냥 버려지는 게 어찌나 아까운지. 우리는 비타민 D를 머금은 채소를 마련하거나 사 먹는 대신에 비타민제로 보충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건조된 식품을 제대로 불려 요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과거처럼 천연 저장법을 이용하는 건 무척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냉장고를 없앨 순 없습니다. 하지만 소량의 장을 보고, 냉장과 실온에 둘 것을 구분하여 지혜롭게 식생활을 즐긴다면 나도 좋고 지구도 좋아할 것입니다. 

- 지금 냉장고 안의 감자, 양파, 고구마, 토마토부터 꺼내 놓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