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윤해서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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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때면 꿈결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나 자신의 목소리일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 시간의 것이 아닌 목소리일지도 모르죠.


윤해서 소설 <암송>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하나로 모이는 공간의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보통 이 책의 주인공은.... 하고 말문을 트고 싶은데 이 책에서의 주인공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공간속에 흩어져있습니다. 각기 다른 공간에 몸을 늘어뜨리고 부유하듯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두 발 바닥에 굳건히 딛고 서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만일 다른 장르의 소설이었다면 애길 정도가 신발끈 질끈 매고 강하게 박차고 일어났었을 것 같은데, 슬픔과 한이 가슴에 맺혀있으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책에는 멀리 떨어진 두 나라 독일과 한국의 여덟 남녀의 목소리가 들어있습니다. 이들은 생존자이기도 하고 생존하지 못한자이기도 합니다. 슬픈 사연들 속에서 선주와 미소는 삶과 죽음을 경계로 나눌 수 없는 공간에 떠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듣습니다. 떠도는 목소리가 끝없이 밀려와 편안히 휴식할 수도 없는 공간입니다.


제목이 왜 <암송>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어려운 책이기도 했고요.

길지도 않은 포스팅에 모르겠다는 말을 참 많이도 썼습니다. 읽고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는데, 어딘가 마음이 아리고 슬픈건 맞는데 제 마음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재독 피아니스트 애길이 결국 만나지 못한 한국의 쌍동이 딸들 때문인지, 독일에서 낳은 아들 모로가 미소를 찾아 갔던 그 마음때문인지, 미소를 지키는 현웅때문인지.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그렇습니다.




무서워요. 내가 모른 척하고 있는 걸까 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데

모르고 있는 걸까 봐.

나한테 이 목소리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데 내가 그걸 계속 못 알아차리고 있는 거면 어떡하죠?



아르테의 작은 책 시리즈는 신기한 매력이있습니다.

평소에 제가 읽는 책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어서 읽고 이해하기가 힘든데, 그래도 자꾸 읽고 싶어집니다. 

지난번의 책들도 그랬고 이번의 책도 그렇습니다.

<암송>은 세 번 읽었습니다.

아, 그래서 암송일까요.

이러다 이 책을 외워버릴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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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징비록 - 역사가 던지는 뼈아픈 경고장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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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민족 유산, 훌륭한 위인이 많았던 조선은 왜 망했을까요. 처음엔 잘 나갔었지만 흥선대원군이 역사에 등장할 때쯤부터 갑자기 흔들흔들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렸던 걸까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소 잃은 후에라도 외양간은 고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조선이 망했다. 일본은 흥했다. 흥한 일본이 조선을 망가뜨렸다. 500년을 이어가던 조선이 갑자기 망했다. 총 한 번 쏘지 않고, 전쟁 한 번 치르지 않고 도장 몇 번 찍어주고 망해버렸다. 도대체 왜.

-p.6

저도 내내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다른 나라가 식민지가 되는 과정과는 뭔가 다르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임진왜란 때처럼 총칼 앞세우고 들어와 모든 걸 파괴하며 이 땅 내놓아라!! 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그런 일들을 겪었어야 했는지 말입니다.

교과서에 적혀 있는 대로라면 조선왕국은 지금도 찬란하게 역사를 선도하며 생존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왜 조선이 망했는지, 알지를 못한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착한 조선이 어느 날 악한 일본에 억울하게 망하고 말았다고 알고, 그리 살고 있다. 그래서 좋은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또 망할 것인가. 18세기 외교관 조명채처럼 통분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일본을 쪽발이라 비하하며 통쾌한 정신 승리를 구가하며 살 것인가.

- p.6

<대한민국 징비록>을 읽으려면 반드시 프롤로그를 읽어야 합니다. 정독해야 해요. 간혹 작가의 말이나 프롤로그를 빼놓고 읽는 분이 계시던데 이 책은 절대 그러지 마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의 집필 의도를 마음에 새기지 않고 읽는다면 화를 내며 독서를 중단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정독하고 읽던 저조차 책의 중반쯤 되니 저자의 의도를 잊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거든요. 화를 내기 전까지는 문장이 매끄럽고 진행이 흥미로워 저도 모르게 술술 읽고 있었어요. 심지어 공부 중인 아이에게 읽어주기까지 했죠. 역사를 말하며 정치 비판도 나올 듯해서 잔뜩 긴장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안 좋았던 과거, 답답했던 것들을 신랄하게 늘어놓은 탓에 뭐야 이 사람. 까도 이렇게 깔 수 있나. 그래도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아니야? 하는 마음에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습니다.

조선인들은 꽉 막히고 답답해서 서양인과 신문물에 대해 쇄국하였고 중원에 사대하였으나 공학이나 과학에 대해 무지하였다고. 그리고 일본은 오픈 마인드라서 모든 걸 잘 받아들이고 연구하고 개혁하였기에 발달이 빨랐다고 찬양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읽다가 기분이 나빴어요. 하지만, 요지는 그게 아니잖아요.

국뽕을 눈에 차고 읽으면 당시 성리학을 근거로 이것만이 세상의 근본이요 최고라고 외치던 조선의 선비, 학자, 왕과 다를 게 무언가요.

500년 동안 조선 지배집단, 권력집단이 어떤 방식으로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나라를 망가뜨려갔는지, 그 경로를 짚어봤다. 스스로를 정의의 화신으로 규정해 힘과 도덕과 돈을 독점했던, 그리하여 감시할 주체 없이 완벽하게 권력을 구가하며 공동체를 허물어뜨린 지식동재의 화장을 지워보았다. 그 경로에서 이웃나라 일본과 마주쳤던 방식도 샅샅이 구경해보았다.

그래서 독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책을 썼다. 대한국인이 읽었으면 하는 '21세기 징비록'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기분이 더러울 것이다. 우리는 찬란한 역사에 대하여 배웠다. 훈민정음과 고려청자와 금속활자와 성리 철학과 애민정신으로 무장한 정치와 슬기로운 성왕들에 대해 배웠다. 실패사는 배우지 않았다. 조선 망국사를 분석하지 않으면, 또 우리는 패배한다. 똑같은 패턴으로 또 패망한다.

-p.7

책을 끝까지 읽은 후 처음으로 돌아가 프롤로그를 읽다가 '당신도 기분이 더러울 것이다'라는 구절을 보고 제가 기분이 더러운 건 작가의 경고를 잊었기 때문이라는 걸 떠올렸습니다. 경고를 했음에도 연속된 비판을 읽으니 어쩐지 우리 편, 내 가족에게 누가 자꾸만 뭐라고 한 거 같은 기분에 마음이 까칠해졌었나 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뿐만 아니라 청의 경우(아편 전쟁)에도 당한 놈이 잘못되었다는 식의(자만, 무방비) 이야기를 하니 마음에 안 들었었습니다. 혹시 이 사람 방비하지 않은 쪽만 뭐라고 하는 건 아닌가 하였습니다.

물론 방범을 전혀 하지 않아서 도둑이 들었다면 집주인의 안전 불감증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잘못은 도둑이 저지른 게 아닌가요.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본다면, 만일 제가 여행을 간 사이, 아이가 현관문이고 창문이고 모두 열어놓고 친구 집에 파자마 파티를 하고 다음날 왔는데 집이 털렸다거나 홈리스가 들어와서 자리 잡고 살림을 차렸다면 저는 도둑이나 침입자에게 화를 낼 뿐만 아니라 문 열고 나간 아이에게도 불같이 화를 내겠죠.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저자는 도둑과 방비를 하지 않았던 양쪽에 다 화를 내고 있는 겁니다.

방비라고 하니 쇄국으로 오해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반대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기는커녕 백성과 가난한 선비를 우민화하고 일부 지식층의 것이었던 성리학만을 숭배했던 그들을 탓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현재의 세계정세, 일본과의 관계에서 어쩐지 과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뼈아픈 과거의 기록 <징비록>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300년도 지나지 않아 조선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결국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또 과거를 반복하려고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키를 돌리느냐,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느냐 하는 건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금은 광산을 폐쇄하고 해시계와 과학 기술을 파묻어버린다거나 서점을 없애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원래 용맹했고, 우리네 훌륭한 예술가와 장인들은 좋은 물건을 만들었다. 우리는 원래 바람과 추위와 눈보라를 굴복시킨 끈기와 불굴의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멈춰 있는 고대 일본 역사에 숨결을 불어넣어 준 찬란한 문명국이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각성'을 통해 그 상실했던 모든 것들을 부활시킬 일만 남았다. 무능한 권력자들이 초래한 식민과 전쟁의 역사를 딛고, 각성한 호민이 만든 대한민국을 이어가자.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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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화학이야 - 유튜브 스타 과학자의 하루 세상은 온통 시리즈
마이 티 응우옌 킴 지음, 배명자 옮김, 김민경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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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

보통 화학 제품이라거나 화학 성분이 들어있다고 하면 몸에 나쁜 것, 생태계에 치명적인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들 중 일부가 그런 것이지 모든 '화학'이 그런 게 아닙니다. 고등학생 때를 돌이켜 주기율표를 잠시 떠올려봅시다. 맨 처음 원자가 수소입니다. 주기율표 20번 안에 탄소도 있고, 질소도 있고, 산소도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게 화학입니다. 모든 곳에 있다는 것도 부족합니다. 자신이 바로 화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다는 오해를 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중고등학생 때 어렵게 배운 화학 과목의 영향도 없진 않을 겁니다. 어쩌면 화학 선생님과 합이 잘 안 맞았을 지도 모르죠. 그러나 저는 화학을 좋아합니다.

전문가적 지식은 없지만 화학 구조식만큼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외우지도 못하면서 노트에 그려보곤 합니다. 탄소고리가 어쩌면 이렇게 귀여운지.

세상의 화학을 어렵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화학을 전파하는 유튜브 스타 과학자 마이 티 응우옌 티의 <세상은 온통 화학이야>를 읽었더니 나도 저렇게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커피를 마실 때에도 커피 분자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 몸에 들어와서는 아데노신 수용체에 아데노신 대신 쪼르르 달려가 주차를 하는 카페인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면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저에겐 여전히 커피 향은 커피 향이고 카페인은 제발 내 아침잠을 쫓아 내주길 바라는 친구일 뿐입니다.

나는 세상을 분자 차원에서 본다. 거의 강박에 가까운데, 나는 아름다운 강박이라고 생각한다. 강박장애라는 뜻의 OCD라는 용어가 있는데, 나는 단어 하나를 화학으로 바꿔 내가 강박성 화학 장애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중략) 이 세상의 모든 흥미진진한 것들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화학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결국 분자 더미다. 물론 분자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화학자 역시 분자 더미다.

-p.16

저자는 화학자일 뿐만 아니라 심한 화학 덕후입니다. 유튜브 채널 '과학자들의 은밀한 삶'을 개설해 과학이 얼마나 쿨한지 보여주려 했고 현재 구독자가 5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 채널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이 책을 통해 화학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화학이 나쁜 녀석, 애물단지로 취급받는 게 싫었습니다.

'화학약품'이라는 낱말 자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독성이 있든, 건강에 좋든, 생존에 필수적이든 어떻든 이 세상은 온통 화학이다. 정말이지 화학물질이 아닌 것이 없다!

-p.56

이 책은 저자의 하루를 통해서 만나는 화학과 화학 변화를 통해서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물합니다. 우리가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것들, 일상에서 소비하는 것들에서 화학을 만나고 생각함으로써 화학과 조금 더 가까워질 계기를 줍니다. 저도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재미있고 흥미롭게 쓰여있어서 과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학생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상관없지만 중학생인 경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해마다 재독을 권합니다.

저만 권하는 게 아니라 전국과학교사 모임에서도 권하고 있으니까요.


통 화학이야 - 마이 티 응유옌 킴 - 일상에서 발견하는 재미있는 화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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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조사관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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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우 작가의 팬이기도 한 저는 이 책을 이미 2016년에 읽었습니다.

당시에도 너무나 재미있게 읽어서 인상 깊게 남아있었는데, 드디어 OCN에서 드라마로 방영을 하지 뭡니까. 그래서 다시 한 번 원작 소설을 읽었습니다.

드라마는 소설과는 조금 다른 설정으로 진행되는 것 같은데요. 드라마를 보며 천천히 비교해보아야겠습니다.

대충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에서의 등장인물을 살펴보았는데 소설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해요.

이 소설 <달리는 조사관>은 가상의 국가기관인 인권증진위원회(인권위)의 조사관들이 의뢰인, 혹은 민원인의 요청에 따라 '그'의 인권이 지켜졌는가 지켜지지 못했는가를 조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정의를 구현하는 형사나 탐정이 아니기에 반드시 진실을 알아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중요한 건 인권이었죠. '인권'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하고 사실 관계를 보고하면 되지만 사람의 일이 그렇게 쉽게, 냉정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일적인 면으로만 치부하려고 해도 진실은 자꾸만 그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뭘 어쩔 수 있겠습니까. 사법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세상에 이야기합니다. 못 본 것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덮어둘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설은 옴니버스 구성으로, 특정 주인공 한두 명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편에서 활약하는 조사관이 따로 있습니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모두 함께 사건을 조사하고 결과를 끌어내지요.

첫 번째 케이스 '보이지 않는 사람'은 황금가지 출판사의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도 실려있던 소설로 미스터리 요소를 듬뿍 안고 있습니다. 고전 추리물에 등장하는 존재하였지만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 모티브인 것 같지만 실은 이런 식으로밖에 의뢰할 수 없었던 의뢰인의 사연이 더 마음에 밟힙니다. 단편이라 줄거리를 말씀드리기 뭣해 손가락을 놀리지 않지만, 일전에 읽은 <29초>도 생각나고하여 더 속상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메모를 했는데, 거기에 '아이씨 나쁜 놈아.'라고 써놨더라구요. 이 책에는 욕 나올만한 부분들이 무척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더 슬픈 건 너무나도 실제에 가깝다는 거죠.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현실. 그래서 더 속상하고 슬픕니다.

'인권'위원회 조사관의 이야기라고 하니 인권에 관한 심각한 책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미스터리입니다. 고전 추리물에 가까운 정통 미스터리, 사회파 미스터리이기도 합니다. 표지만 보고 일본 추리소설인가 하신 분도 계셨는데, 아닙니다. 우리나라 작가 송시우의 작품으로 내놓는 작품마다 사랑받고 있는 멋진 작가죠.

이 책에 등장하는 인권위 조사관들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물이 나는 심한 아토피 환자 한윤서 조사관, 피를 보면 기절하는 피 공포증 이달숙 조사관, 면봉이라는 별명이 있는 부지훈 조사관, 개구리 닮은 배홍태 조사관까지. 도청이나 시청에 가면 우연히 딱 마주칠 것만 같은 그런 공무원들입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그런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활약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 정이 갑니다.

혹시 <달리는 조사관 2> 가 나오지는 않을까 몇 년 기다렸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저는 달리는 조사관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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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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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해리스는 너무나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입니다. 특히 그의 소설 <양들의 침묵>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앤서니 홉킨스의 한니발 연기는 정중하면서도 소름 끼쳐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한니발이라는 캐릭터는 지적이고 예의 바르며 치명적인 매력과 놀라운 화술을 모두 갖춘 사이코패스로 <양들의 침묵>이후 <한니발>이나 <한니발 라이징>을 통해 그의 세부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양들의 침묵 이후 30년. 토머스 해리스의 마지막 작품 이후 16년 만에 <카리 모라>라는 야심작으로 독자들을 다시 찾아왔는데요. 혹시 한니발의 다른 시리즈 인가하여 눈을 빛냈습니다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카리 모라>에는 여전사 타입의 카리 모라와 냉혹한 살인자 한스 피터 슈나이더가 등장합니다.

'슈나이더'라는 이름은 어쩐지 머리가 좋고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캐릭터에게 어울린다고 -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슈나이더들은 그래왔기 때문에- 생각했었는데요. <카리 모라>에서의 한스 피터 슈나이더는 슈나이더라기보다는 한스나 피터가 어울리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는 알비노인지 모두 새하얀 데다가 몸에 털이 전혀 나지 않는 무모증을 유전적으로 타고났는데요. 잔인성도 그랬던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까요. 사람을 괴롭히고 잔인하게 죽이는 것에 쾌감을 느낍니다. 어쩌면 부모님을 옷장 안에 가둬두었을 때, 엄마가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자신을 달랠 때 쾌감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정복감, 즐거움, 해방감.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전율했겠죠.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그냥 쾌락 살인마인편이 낫지 않았나... 하는 것인데요. 쾌락 살인마이지만 결국은 하청업자로, 여자를 공급하는 인신매매범이었다는 - 실제라면 그런 놈도 없어져야 하지만 소설의 설정상 그런 쪽이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여자 공급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세상에 변태의 종류도 참 다양하죠. 한스 피터 슈나이더가 어떤 놈들에게 여자를 공급했는지 알게 된다면,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공급'이라는 불쾌한 단어를 사용한 이유도 알게 되실 거예요.

이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 카리 모라는 확실히 클라리스 스탈링보다 강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강해요. 어린 시절 납치되어 강제로 소년병으로 훈련받고 실전 투입도 되어 갖은 나쁜 일들을 보고 겪거든요. 하지만 본디 마음이 선했던 카리는 자신이 감시를 담당했던 노교수를 도울 수 있는 한 도우며 따랐는데요. 작전 중 상사를 죽이고 달아나 이전에 석방된 노교수를 찾아가서 미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이애미에서 부업도 하고 봉사도 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중, 자신이 관리인으로 있던 집에 한스가 방문하고 한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25세의 카리 모라를 부자 변태에게 팔아치울 계획을 세웁니다.

소설은 의외로 분량이 짧습니다. 300페이지도 안되거든요. 스릴러는 보통 600페이지 정도이거나 그 이상인 경우가 많아서 이 짧은 곳에 모든 이야기를 어떻게 담았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데 다섯 시간이나 걸렸어요. 상상의 여지가 많은 책이었거든요.

담담한 서술,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한 것들에 소름 끼쳤습니다. 과장되지 않은 간결한 선들이 이리저리 그어져있어서 상상력을 증폭시켰던 것 같습니다. 이는 독자의 수만큼 다양한 모습의 카리 모라와 한스 피터 슈나이더를 존재하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는데요.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의 카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다만, 지나치게 간결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따랐는데, 마치 풍성한 나무가 아닌 주요 가지만을 남기고 가지치기 한 성긴 나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소설에 살이 더 붙었거나 캐릭터를 좀 더 살려주었으면 어땠을까요.

카리의 매력도 한스의 악역 다운 모습도 조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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