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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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해리스는 너무나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입니다. 특히 그의 소설 <양들의 침묵>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앤서니 홉킨스의 한니발 연기는 정중하면서도 소름 끼쳐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한니발이라는 캐릭터는 지적이고 예의 바르며 치명적인 매력과 놀라운 화술을 모두 갖춘 사이코패스로 <양들의 침묵>이후 <한니발>이나 <한니발 라이징>을 통해 그의 세부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양들의 침묵 이후 30년. 토머스 해리스의 마지막 작품 이후 16년 만에 <카리 모라>라는 야심작으로 독자들을 다시 찾아왔는데요. 혹시 한니발의 다른 시리즈 인가하여 눈을 빛냈습니다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카리 모라>에는 여전사 타입의 카리 모라와 냉혹한 살인자 한스 피터 슈나이더가 등장합니다.

'슈나이더'라는 이름은 어쩐지 머리가 좋고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캐릭터에게 어울린다고 -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슈나이더들은 그래왔기 때문에- 생각했었는데요. <카리 모라>에서의 한스 피터 슈나이더는 슈나이더라기보다는 한스나 피터가 어울리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는 알비노인지 모두 새하얀 데다가 몸에 털이 전혀 나지 않는 무모증을 유전적으로 타고났는데요. 잔인성도 그랬던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까요. 사람을 괴롭히고 잔인하게 죽이는 것에 쾌감을 느낍니다. 어쩌면 부모님을 옷장 안에 가둬두었을 때, 엄마가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자신을 달랠 때 쾌감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정복감, 즐거움, 해방감.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전율했겠죠.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그냥 쾌락 살인마인편이 낫지 않았나... 하는 것인데요. 쾌락 살인마이지만 결국은 하청업자로, 여자를 공급하는 인신매매범이었다는 - 실제라면 그런 놈도 없어져야 하지만 소설의 설정상 그런 쪽이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여자 공급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세상에 변태의 종류도 참 다양하죠. 한스 피터 슈나이더가 어떤 놈들에게 여자를 공급했는지 알게 된다면,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공급'이라는 불쾌한 단어를 사용한 이유도 알게 되실 거예요.

이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 카리 모라는 확실히 클라리스 스탈링보다 강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강해요. 어린 시절 납치되어 강제로 소년병으로 훈련받고 실전 투입도 되어 갖은 나쁜 일들을 보고 겪거든요. 하지만 본디 마음이 선했던 카리는 자신이 감시를 담당했던 노교수를 도울 수 있는 한 도우며 따랐는데요. 작전 중 상사를 죽이고 달아나 이전에 석방된 노교수를 찾아가서 미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이애미에서 부업도 하고 봉사도 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중, 자신이 관리인으로 있던 집에 한스가 방문하고 한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25세의 카리 모라를 부자 변태에게 팔아치울 계획을 세웁니다.

소설은 의외로 분량이 짧습니다. 300페이지도 안되거든요. 스릴러는 보통 600페이지 정도이거나 그 이상인 경우가 많아서 이 짧은 곳에 모든 이야기를 어떻게 담았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데 다섯 시간이나 걸렸어요. 상상의 여지가 많은 책이었거든요.

담담한 서술,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한 것들에 소름 끼쳤습니다. 과장되지 않은 간결한 선들이 이리저리 그어져있어서 상상력을 증폭시켰던 것 같습니다. 이는 독자의 수만큼 다양한 모습의 카리 모라와 한스 피터 슈나이더를 존재하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는데요.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의 카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다만, 지나치게 간결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따랐는데, 마치 풍성한 나무가 아닌 주요 가지만을 남기고 가지치기 한 성긴 나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소설에 살이 더 붙었거나 캐릭터를 좀 더 살려주었으면 어땠을까요.

카리의 매력도 한스의 악역 다운 모습도 조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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