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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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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간으로 3월 13일 오후 1시 13분 13초.
이때부터 13초간이 지구로서는 운명의 시간입니다."
p-13현상. 예측된 날. 13초간 시간이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12초, 13초 그다음 26초 27초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툭 끊겨 13초간이 누락된다는 것입니다. 이 현상이 발생할 확률은 99.95퍼센트우주의 거대 블랙홀이 13초를 삼켜버리지만, 우리는 논리적으로 그 시간을 느낄 수 없어 그냥 지나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저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러나 3월 13일 오후 1시 13분 13초.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동물도 사라졌습니다. 거리 곳곳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 대도시에서 움직이던 거대한 기계들. 교통수단들은 그대로인채 사람만 증발했으니, 자동차 추돌, 항공기 추락, 가스폭발... 엄청난 재앙입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군요.
열혈 경찰 후유키, 다섯살날 여자아이 미오와 그 아이의 엄마 에미코,
최고의 식탐 뚱보 다이치, 후유키의 이복 형이자 경시청 형사 세이야,
씩씩한 여고생 아스카, 직장 상사와 부하관계인 도다와 고미네,
간호사 나나미, 노부부 하루코와 시게오,
아파트에서 발견된 아기 유토,
마지막으로 합류한 야쿠자 가와세.
하루하루가 절망입니다.
이 세상에 - 적어도 도쿄에는 - 남은 것은 자신들 뿐. 그것만으로도 두려운데, 폭우, 지진, 붕괴등 자연재해가 계속해서 그들을 덮칩니다. 자신과 싸우며, 몇 안되는 동료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무서운 회색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어째서 그들만이 세상에 남게 된 것일까요.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리고 그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린걸까요...
지금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만 하면 모두 다 스포일러가 되는지라 감상이나 우주이론적인(대단한건 아니지만)이야기는 할 수 없겠군요. 블랙홀, 초끈이론, parallel world 같은거요.
패러독스 13...이 책의 두께가 또 만만치 않아서주말에 읽으려 벼르다가 읽었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정말 숨가쁘거든요.
책을 읽고 있는 이 시간도 저들의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나봅니다.
책을 덮은 후의 감상은.. 뭔가 엄청 슬펐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과 함께 호흡했기 때문일까요. 가슴이 찡해옴을 느꼈습니다. 배드앤딩이냐구요? 글쎄요...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요.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SF를 좋아하시는분, 재난영화를 좋아하시는 분께는 권해드릴께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도 여운이 계속 남네요. 제 밑바닥에서부터의 공포를 일깨워주었습니다. - 덕분에 지금 수면부족 상태입니다.
"지금 이 세계는 패러독스의 이치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거야.
그러니 인간은 소멸하는 편이 나아. 우주를 위해서는."
- p.3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