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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힘
우테 에어하르트 & 빌헬름 요넨 지음, 배명자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많은 거짓말들이 있습니다. 만약 자신은 오늘 거짓말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거짓말일테지요. 어릴때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일화를 들으며 정직한 것이 미덕임을 강조당하며 살아왔던 우리 세대 역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거짓말을 합니다. 정직하게 세상을 산다면 엄청나게 불편해지기 때문이지요.
노총각 직장상사가 애인이 100일 기념이라며 선물해 준 넥타이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정말.. 눈뜨고는 못 봐줄 형광 핑크. 애인이 너무 어린 탓에 핫한 선물을 준 모양인데요. 그럴 때, 저는 잘 어울린다고 말해야 할까요, 괜찮다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침묵해야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사실대로 눈뜨고는 못봐주겠다고 말해야할까요. 마지막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거짓말에 해당합니다. 뭐, 사실대로 말해도 상관없긴 합니다. 다만, 후폭풍은 감당해야겠지요.
피가 끓어오르던 시절에는 아닌걸 아니라고 말할 용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두루뭉술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어릴때는 정직했을까요? 수업이 일찍 끝나 친구들과 만화방에 가서 가방 한 가득 만화를 빌려오고선 학교가 제 시간에 끝난 척, 아니 오히려 더 늦게 끝난 척도 해봤기 때문에 정직했었다고 말 할 수는 없겠네요. 어짜피 말하면 혼날 거. 그냥 침묵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거짓말을 합니다.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던가요. 때로는 침묵이 진실보다 위대할때도 있잖아요. 단순한 변명 역시 거짓말이고, 아닌줄 알면서도 우겨보기도 거짓말입니다. 더 큰 범주로 생각한다면 진실이 아닌 것은 모두 거짓이지요. 생태계에서 의태나, 보호색같은 것도, 제가 재미있어하는 영화나 소설 역시 거짓이지요. 이렇게 거짓투성이에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에 진실된 건 무엇이냐고 외치며 머리를 싸안고 좌절하지는 않지요.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진실은 사람을 피곤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진실만을 말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는데,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그 순간에도 거짓을 말하고 맙니다. 의도된 거짓일수도 있고, 착각에 의한 거짓일 수도 있지만요. 우리의 몸은 이상합니다. 거짓도 자꾸 반복하다보면 진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때는 거짓을 감추려고 거짓말 위에 다시 거짓말을 덮어씌우기도 하는데 그럴 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며 우리의 온몸은 진실을 나타내니까요.
저의 거짓말 방법은 이렇습니다. 진실 90에 거짓 10을 섞는 것이지요. 그리고 일부는 말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20정도 내뱉았다면, 그 거짓말을 보완할 장치들을 80정도 숨겨두는 방법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다만, 이것은 상대가 제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거나 - 그러니까 부모님 말이죠... - 할때 쓰는 방법이지 웬만하면 그냥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지어냅니다.
"아.. 그러니까.. 지하철이 막혀서요."
이 책 <거짓말의 힘>을 읽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울컥울컥하기도 하지요.
'뭐야. 그래서 거짓말은 좋은 거니까 많이 하라고 장려하는거야?'
툴툴 거리면서도 책은 다 읽었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라, 그런데 책을 덮고 리뷰하려니까 책 한 가득 옳은 말씀이 써있지 뭔가요. 도덕심으로 똘똘 뭉친 내가 책을 읽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변명하고, 좋은게 좋은거라며 진실을 왜곡하려는 행태가 마음에 안들어서 이게 무슨 책이야!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리뷰를 하려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언제나 거짓을 말할 준비가 되어있는 나이기 때문에 이 책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