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클래식 보물창고 4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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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언제나 노인이게 '라 마르'였다. 사람들이 바다를 좋게 생각할 때 부르는 말이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끔씩은 바다를 욕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바다를 여성 형으로 사용하곤했다. (중략) 노인에게 바다는 언제나 여성 형이었다. 바다가 거칠게 굴거나 성을 내도, 바다도 어쩔 수 없어 그러는 것이라 여겼다. 달이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듯 바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p.32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바다는 무척이나 특별한 의미가 됩니다. 일용할 양식을 내어주는 어머니의 품 속 같은 곳이기도 하면서, 포세이돈의 심통에 목숨을 잃고 마는 두려운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다의 맛을 아는 사람은 언제고 다시 바다를 찾으며 그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노인에게 바다는 특별한 의미였습니다. 운없는 사람 '살라오'라고 불리워도 노인은 그저 괜찮습니다. 오히려 노인을 좋아하는 소년 마놀린이 더 마음 아파했습니다.

노인은 소년을 아꼈고, 소년도 노인을 잘 따르고 사랑했습니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책을 읽다보면 노인의 이름이 언급되었었다는 것도 잊고 말지만, 소년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그는 그냥 노인이 아니라 산티아고라는 한 사람의 어부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노인은 태양에 검게 탄 살갖 아래 두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소년을 많이 아꼈다.

"네가 내 아들이라면 데리고 나가 모험을 해 보고 싶지만, 너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이고, 행운이 넘치는 좋은 배를 타고 있으니 안타깝구나."

p.12

 

소년과 함께 바다에 나가 일을하고 싶지만, 자신은 운 없는 노인이기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은 다음으로 미룹니다.

 

 

하지만 노인은 바다위에서 아이를 그리워했습니다. 사실 그의 그리움과 애틋함은 비단 그 소년에게만 향한 것은 아닐것입니다. 망망대해에서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 한마리와 힘겨운 싸움을 할 때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느끼면서,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소년을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노인이 사랑한 것은 사람 만이 아닙니다. 대자연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와 밤새 싸워가면서도 바다를 사랑했고, 심지어 낚시에 걸린 물고기도 사랑합니다.

 

노인은 문득 물속의 물고기에게도 이것을 먹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형제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저 물고기를 죽여야 한다.

p.64

 

노인이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것은 생존을 위함이고, 그것은 생태계의 먹이사슬 중 자신이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이 녀석을 잡아서 돌아가면 조금은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노인은 필요하지 않을정도로 많은 양의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닌, 생활을 위해 한마리, 생존을 위해 한마리. 그렇게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왔습니다. 그가 노인이 아닌 어부 산티아고 였을때부터요.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바다의 생물들과 공생하는 또하나의 터전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날마다 달을 죽여야 한다면 아마 달은 예전에 달아나 있겠지. 또 날마다 해를 죽여야 한다면 그건 또 무슨 재앙일쏘냐. 그러니 인간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지.

p.81

 

 

 

네가 진정 날 죽일 셈이구나, 물고기야. 노인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해한다. 나는 여태껏 너처럼 크고 아름답고 침착하며 위엄 있는 물고기를 본 적이 없다. 네가 나를 죽인다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나의 형제여. 어서 와 나를 죽이렴. 이제 아무 상관없다.

p.98

 

노인은 거대한 물고기와의 싸움에 결국 승리하고, 물고기를 자신의 배에 비끌어 매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지만, 사실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 큰 시련이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하지만 희망을 잃지는 않습니다.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노인이 생각했다.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죄악이다.

p.111

 

<노인과 바다>에는 헤밍웨이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들어있었습니다. 눈에 잡힐듯 보이는 바다의 낮과 밤. 풍부한 묘사가 아닌 절제된 언어의 사용이 오히려 내 안의 모든 상상력과 감수성을 끌어내어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끄트머리에 이르러서는 이게 뭐야... 하는 약간의 허무함도 있었지만, 묘하게 다시금 희망을 갖게 하는것이 우리네 인생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일에 부딛혀서 난처할 때에도 헤쳐나갈 힘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이겨내고, 끝인가 싶었는데 산넘어 산. 그래도 헤쳐나가고.. 그 결과는 디즈니가 아니기에 언제나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하지만, 또 그렇게 살아갑니다. <노인과 바다>는 그런 이야기 인 것 같습니다. 우리네 인생 이야기.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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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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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미국에서는 금주령이 발효됩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곡류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에도 술통에서는 향기로운 술이 익어만 갔으니 그랬을테지요. 이 금주령은 농민들, 기독교인들, 노동자의 음주를 못마땅해 하던 산업 자본가들가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나아가서는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이 금주령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가 건재하는 한 (물론 디오니소스는 와인의 신이지만) 세상에서 술을 없앨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영조때 금주령 이후로 밀주의 제조가 이루어졌듯이 미국의 어두운 곳에서도 밀주를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질 좋은 술 대신 가난과 괴로움을 이겨내고자, 혹은 시름을 잊고자 밀주를 찾았고, 저품질의 밀주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고품질의 밀주는 쾌락만을 주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고품질의 밀주는 다른 의미에서 사람을 죽였지요.

 

그것도 악화일로의 범세계적 경제 위기 와중이었다. 경제 위기의 충격은 매번 커졌고, 날마다 달마다 더욱 심각해졌다. 사람들은 직장과 주거와 희망을 바랐지만, 그 어느 것도 가망이 없자  술에 의존 했다.

악은 불경기가 없다.

p.392

사실 금주령을 추친한 사회 지배층은 술을 마시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돈이 있었으니까요. 1920년~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아도 상류층의 파티에 술은 끊이지 않습니다. 술의 합법적인 제조, 판매가 금지되면서 갱단이 고품질의 밀주를 생산하고 유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알 만한 이름 알 카포네도 이 때 밀주를 유통해서 시카고 갱단의 중심이 되지요.

 

 

데니스 루헤인의 신작 소설 <리브 바이 나이트>는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한 청년의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1919년 보스턴 경찰 해산 이후로 경찰인 아버지의 아들 셋은 뿔뿔이 흩어져 제 살길을 찾아갑니다. 그 중 막내 아들인 조 커클린은 인생은 한방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밤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하찮은 건달생활중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여자와 만났고,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지역의 보스 앨버트 화이트의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 에마와 조는 은행을 턴 돈을 가지고 달아나기로 하지만, 에마는 조를 앨버트에게 넘깁니다.

 

 

조는 경찰에의해 겨우 목숨을 건지지나 은행을 털 때 조의 동료가 쏜 총에 의해 경찰이 사망한 사건으로 감옥에 가게 됩니다. 게다가 에마는 행방불명. 아마도 앨버트가 살해했을거라고 추측합니다. 어쨌든 감옥에 가게 되어 개과천선했으면 좋으련만, 알다시피 감옥은 또 하나의 어두운 세상입니다. 그 곳에서 조는 마소 페스카토레를 만납니다.

아버지는 조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법도 수호하고 싶었습니다. 아들이 법을 어기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막내아들 조지프야. 내 방탕한 낭만이자 성마른 심장아, 이제 내가 그들에게, 최악의 악마들에게 그 법칙을 깨닫게 해 주어라. 그러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나약함으로, 도덕적 과실로, 의자박약으로 죽는 게 낫구나.

 내 너를 위해 기도하마, 권력을 잃으니 이제 기도만 남았구나. 이제 내겐 그 어떠한 권력도 없단다. 저 화강암 담벼락 너머에 손이 닿지도 않고, 시간을 늦추거나 멈출 수도 없단다. 아니, 이 순간, 지금이 몇 시 인지조차 모르겠으니.......

 

p.185

아버지는 스스로 죽음으로서 막내아들 조를 타락에서 구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그것은 조를 더욱 깊은 어둠의 세계로 빠지게 했을 뿐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지?"

"밤, 밤은 나름의 규칙이 있어."

"낮에도 규칙은 있지."

"오, 알아..... 하지만 난 낮의 규칙은 싫어."

p.217

 

낮의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기에 조는 이미 너무 깊은 곳까지 와버렸던 모양입니다. 아버지의 죽음도, 형의 권유도 그를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고리대금업자한테 빚을 갚지 않으면 다리를 부러뜨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은행도 사람들을 집에서 쫓아내잖아? 그런데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은행은 자기 일을 하는거고 고리대금업자는 범죄자라는 식으로. 내가 고리대금 업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착한척하지 않기 때문이야. 오히려 은행가들이 지금 이곳에 들어앉아야해. "

p.218

 

조는 먼저 출소한 마소의 도움으로 2년만에 세상에 나옵니다. 하지만, 그가 나온 세상은 밝고 낭만적인 낮의 세상이 아니라 감옥에서 배운 밀주만들기를 바탕으로 한 세력다툼의 세계. 즉 밤의 세계였습니다. 세상으로 나온 조는 더이상 건달이 아닙니다. 한세력의 수장. 보스입니다.

이 새로운 세상에서 그녀는 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어두움을 살아갑니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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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는 해녀입니다
강영수 지음 / 정은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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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이라는 곳은 신기합니다. 사방이 바다로 막혀있어 갇혀있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함과 동시에, 간신히 떠나있던 섬사람을 다시 돌아오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저도 어릴때 제주라는 섬을 떠나 살고 싶었습니다. 저는 섬 안에 갇혀있었고, 그 섬을 떠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섬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있던지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가 나를 불렀고, 도시와 바다와 숲이 공존하는 곳이 어딘지 몰라 헤매었습니다. 얼굴에 주근깨를 잔뜩 만들어 댈 햇살과 바람, 신선한 내음이 그리웠습니다. 저는 3년전 제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깨달았습니다. 제주가 나를 다시 부르고 있었구나.... 난 어딜 가든지 또 바다를 그리워하겠구나... 다시 내가 이 곳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제주에 대한 생각이 이랬던 제가 다른 섬인들 가 보았겠습니까. 우도 역시 제주의 동편으로 돌아 아름다운 해가 뜨는 성산일출봉을 건너 바라보기만 했었지요.

멀리서 보니 더욱 아름다운 그 섬에서의 이야기.

<내 아내는 해녀입니다>를 읽었습니다. 멀리서, 그리고 겉에서 볼 때 아름다운 소가 누운 형상의 그 섬은 섬사람들의 삶을 쥐었다 폈다 했습니다. 자연에 가까워 아름다운 그 섬은 자연에 가깝기에 섬사람들이 살기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삶을 살아갔습니다.

 

저자는 북제주군의회 재선 의원이었고, 제주특별자치도 도서(우도)지역 특별보좌관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전혀 그런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다가 이사람 뭐하는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는 수필가이며, 시인이었습니다. 한 해녀의 남자였습니다. 그렇기에 미안함이 가득했습니다.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득했습니다.

 

해녀인 아내는 코로 피를 토하고 입으로 피를 토하며 용왕님의 바당에서 소라, 전복, 해산물들을 내어와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이 남자의 아내, 어머디, 할머니 모두가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고 바다와 함께 있었습니다. 해녀는 자신의 몸이 스러지고, 무너지면서도 바다에 들어가기 싫어하면서도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자신의 삶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해녀의 남편은 이 책을 통해 우도에서의 과거, 현재를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 섬의 이야기, 해녀의 이야기를 합니다. 어쩐지,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거친 파도가 친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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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남기고 떠난 열두 사람 -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그 두 번째 이야기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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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인생의 많은 부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10대나 20대 때 죽음을 생각했던 것은 철없던 시절 내가 주인공인 이 세상은 내가 죽음으로서 막이 내리는 것이라서 괴로운 세상 앞으로 나가기 보다는 이제 그만하자라는 심정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죽느냐와 더불어 어떻게 사느냐가 무척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다가 죽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은 두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떠나는 환자와 함께 바라본 거리는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비춰진다.

특별하지 않은 병원 밖 풍경이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추억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계절은 흐르고,

스치는 풍경과 함께했던

'누군가'는 사라졌다.

 

하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p.167

 

저자인 오츠 슈이치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호스피스 전문의 입니다. 호스피스를 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마음 아픈 일일 것 같습니다. 각자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모인 환자들. 지금의 모습과 생생한 삶의 모습은 심히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모두 숙연해집니다.

 

이 책은 <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의 후속이라고 합니다. 전작에서는 후회로 가득찬 죽음을 이야기 했었다면, 이 책에서는 충실한 삶으로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눈을 믿을 것. 그때 비로소 사사로운 집착에서 벗어나 진실로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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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클래식 보물창고 18
알베르 카뮈 지음, 이효숙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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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분명 이 자리에 있는데, 어쩐지 주변이 낯설다기 보다는 내가 그들에게 낯선 존재인건 아닌가.. 난 어울리지 않는 존재인건가.. 하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종종 그런 것을 느낍니다. 이 자리에 있어도 괜찮은건가. 어떻게든 어색하지 않게 굴어야해. 하지만, 이내 어색해지고, 입을 다물고 눈치를 봅니다. 그런 제가 싫습니다.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걸 인식한다는건 무척 씁쓸한 일입니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자신이 다르다는 걸 잘 몰랐습니다. 무언가 약간 결여된 그런 느낌.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조차 슬픔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미워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들었을 때 못마땅한 얼굴로 휴가를 준 사장이 신경쓰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장례식 날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뫼르소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외로운 존재는 아니었을겁니다. 그 중, 폭력적이며 소유욕이 강한 레몽이라는 청년이  단연 눈에 띕니다. 그는 애인을 때렸고, 그 때문에 그의 동생인 아랍인에게 보복을 당할 뻔 합니다. 레몽은 애인을 '당연히'때릴 정도로 폭력에 무감각합니다. 다만, 자신이 맞는건 싫었지요. 때문에 바닷가의 레쏭네 집으로 놀라갔을 때 접근해 온 두명의 아랍인들 때문에 긴장합니다. 그리고 결국, 뫼르소의 손에 쥐어준 레몽의 총이 그로하여금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지요.

 

나는 내 이마에서 태양이 심벌즈처럼 울려대는 것밖에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희미하게, 여전히 내 바로 앞에 있는 칼에서 분출되는 번쩍이는 양날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 불타는 검이 내 속눈썹을 물어뜯고 고통스런 내 눈을 후벼 대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모든 것이 비틀거렸다. 바다는 두텁고 뜨거운 숨결을 휩쓸어왔다. 불이 내리도록 하늘이 활짝 열리는 것만 같았다. 나의 온 존재가 긴장했고, 내 손은 권총을 꽉 쥐었다. 방아쇠가 굴복했고, 내 손은 권총 자루의 반들반들한 배에 닿았다. 바로 거기서, 메마르면서도 귀를 멍하게 하는 소음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뒤흔들었다. 낮의 안정, 내가 행복을 느꼈던 해변의 특별한 침묵을 내가 파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꼼짝도 않는 몸에다 또 네 발이나 쏘아 댔다. 보이지 않게. 총알들이 몸속에 박혀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차례의 짧은 노크 같았다.

- p.74

 

뫼르소는 왜 사람을 죽였을까요.

주인공 뫼르소는 사람의 감정이나 사람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소설의 흐름은 건조하고 묘사가 별로 없습니다. 다소 딱딱하게 진행됩니다. 어떤 깊이 보다는 현상, 그리고 상황에 주목합니다. 아마도 주인공인 뫼르소 즉, '나'의 성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화자인 '나'는 열려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생각 구조는 무척 독특합니다.

25년만에 돌아온 남자가 어머니와 누이를 놀라게 하려고 정체를 감추고 방을 하나 잡고 돈자랑을 했고, 그 돈이 탐났던 어머니와 누이는 그를 죽여 돈을 뺐습니다. 다음날 자신들이 죽인자가 누군가를 알고 어머니와 누이는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은 뫼르소는 모녀의 부도덕을 탓하거나 비극을 슬퍼하는 대신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수천 번은 읽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가 사실 같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웠다. 어쨌든 나는 그 여행객이 그런 일을 당해 마땅하며, 절대로 장난을 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p.95

 

이러한 그의 독특한 성격과 생각구조탓이었는지, 법원에서의 상황 역시 특이하게 흘러갔습니다. 재판은 그가 아랍인을 죽인 것 보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그가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에 촛점이 맞춰지는 듯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변호인도 그런말을 했을까요.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은 것 때문에 기소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결국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은 이유는 살인 때문이 아니라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과 감정이 다른 존재. 장례식때 슬퍼하지 않았으며, 애도하지 않았고, 태양이 너무 뜨거워 4발이나 더 쏘았고, 신부님께 고해하지도 않았기에 그는 <이방인>이었던 것인가봅니다.

 

그는 '체'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솔직했습니다.

 

 

내가 덜 외롭다고 느껴지도록, 내게 아직도 바랄 것이 남아 있었다.

내가 처형되는 날, 구경꾼들이 많이 와서,

나를 증오의 외침으로 맞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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