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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유괴 범죄가 제법 많았습니다. 특히 1970년대에서 1980년 사이에는 공개수사로 전환된 사건도 있을 정도로 심각했었죠. 당시 유괴는 주로 금전을 목적으로 하거나 개인 원한으로 발생하였는데요, 골든 타임 내에 구하지 못하면 사망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분초를 다루는 사안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범인들은 주로 공중전화를 이용하여 몸값 전달 장소를 고지하곤 했는데요, 보호자들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금전을 끌어모아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하였습니다. 김윤석, 유해진 주연의 극비수사라는 영화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공개 수사냐 극비수사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고 합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기에 한 가정과 사회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가까스로 돌아온 아이도 신체적 피해와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안기 때문에 법적으로 중범죄로 간주됩니다. 강력하게 처벌해야만 유괴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오타 다케시의 <존재의 모든 것을>은 유괴 사건 그 이후를 다룬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1991년 한 지역에서 두 명의 아동이 순차적으로 유괴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경찰들은 두 군데로 인력이 분산되었음에도 아이의 무사 귀환을 위해 노력합니다. 첫 번째 아이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발견되어서 한시름 놓았지만, 두 번째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비가 오는 날 무거운 돈 가방을 들고 범인이 유도하는 대로 온 힘을 다해 노력하였지만 결국 손주를 되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느꼈을 좌절감과 절망감이 제게도 파고드는 듯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도서의 뒷면에서 3년 만에 아이가 돌아왔다는 문구가 있으니 희망을 갖고 지켜보았습니다.
시오타 다케시는 신문 기자 출신으로 마치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처럼 소설을 풀어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장면이 실재감 있게 다가왔고 그래서 다른 책에 비해서 속도가 더뎠던 거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장면을 꼬닥꼬닥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라니!
유괴되었던 네 살 난 소년은 3년 뒤 일곱 살이 되어 외할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소중히 길러지기라도 한 듯, 빠진 날짜까지 기록된 유치 박스까지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예의 바른 태도와 예절까지 갖춘 걸 보면 함께 살았던 사람이 나쁜 이는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아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며 경찰과 언론 모두에 더 이상 협조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비교적 재력이 있는 집안이었기에 아이는 조부모와 평화롭게 생활하며 어른이 되었고, 유명한 사실화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는 유괴 당시의 트라우마를 극복했을까요? 아니면 애초에 그런 거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걸까요.
1991년 신참이었던 한 기자는 당시에 유괴 사건 추적을 이끌었던 한 형사의 죽음 이후, 소년의 현재 모습을 통해서 과거의 사건을 추적하기로 했습니다. 그 형사와는 유괴 사건 그리고 건담이라는 공통점 밖에는 없었지만, 자신이 은퇴하기 전에 꼭 찾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작가는 마치 이 기자와 같이 동시 유괴가 벌어졌던 공간 배경을 추적하며 자료를 모으고 경찰 관계자에게 수사 방법 등을 인터뷰하며 소설을 준비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배경과 현재를 잇는 과정을 직접 진행하였기에 소설의 주인공인 몬덴의 발자취를 저 역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소년 료의 현재부터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은 잔잔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료를 찾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그를 좋아했던 리호의 여정도 좋았습니다.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료를 사랑하고, 료의 그림도 사랑했습니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이들의 발자취와 사랑이 좋았기에 내가 정말 유괴와 관련된 소설을 읽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백의 3년'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시간을 따라 제 가슴도 짜르르 울렸습니다. 미스터리인 관계로 자세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소년은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달라질만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존재의 모든 것을>을 관통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조지 윈스턴의 Longing/Love입니다.
저는 마지막에 모든 이들이 모이는 장면에서 이 곡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 소설은 바로 이 곡과 함께 흘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와닿았습니다.
료에게 있어서 유괴의 시간은 하마터면 끝까지 경험하지 못할 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시오타 다케시가 스토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섬세하고 리얼해서 소설 속의 두 화가가 세밀화를 그리며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긴 여정을 통해 진한 감동을 느끼고자 하는 분이라면 <존재의 모든 것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