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 TOP 30 : 명화 편
이윤정 지음 / 센시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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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7월 21일부터 시작된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한국미술명작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무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앞으로 일주일 밖에 안 남았는데요, 다행히 우리는 <이건희 컬렉션 TOP30> 명화편을 통해서 국내 화가는 물론 해외 화가의 명작들까지 감상이 가능합니다.


물론 직접 관람하며 느끼는 감동에는 못 미치겠지만 훌륭한 큐레이션이 함께하기에 또 다른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창원 해양신도시에 '이건희 미술관' 건립 가능성이 올라간다고 하니 완공되는 날까지 이러한 도슨트 북을 통해서 아쉬움을 달래어도 좋겠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국립현대 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은 국내 작품 1369점과 국외 작품 119점이라고 합니다.(총 23000여 점) 회화 412, 판화 371, 한국화 296, 드로잉 161, 공예 136, 조각 104점이라니 상당한 규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중 1930년 이전 출생한 근대작가의 작품이 860여 점으로 우리가 잘 아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까미유 피사로,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등의 명작 등이 이에 속합니다.


이번에 만난 <이건희 컬렉션 TOP30>에는 이중 16명의 화가의 명화 30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미술품을 중심으로 화가의 대표작도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요, 따라서 총 87점의 명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기증품들 중 상당수가 근현대작이므로 이 책 또한 그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외와 국내로 파트를 나누고 화가에 따른 큐레이션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은 무엇이며 스토리는 어떻게 되는지 그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라거나 지식 등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가 처해있던 경제적이나 심리적 상황들도 묘사해 주니 그림을 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상당히 익숙한 그림부터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까지 다루고 있으므로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세상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를 주기도 합니다. 국내 근현대 작가 작품들은 미술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잘 알려진 그림이나 화풍이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몰랐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서 화가에 대한 이해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연대기 순이나 어떤 사조별로 엮지 않고 그저 작가에게 중심을 두고 구성되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사회 그리고 예술 개념으로 풀어나갔습니다. 따라서 독자 입장으로는 화가 한 명 한 명을 만나는 여정 자체가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 또한 행복했습니다.​

공부하기 위해서 읽는 게 아니기에 꼼꼼히 외우거나 학습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습니다. 늘 즐겨 듣는 음악 - 분위기 있는 클래식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드는 음악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읽어나가는 느낌 자체가 좋았습니다. 이건희 컬렉션을 중심으로 구성된 거장들의 마스터피스를 훌륭한 큐레이터와 함께 감상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이 책은 표지 디자인부터 내지까지 나무랄 데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회화 도서의 경우 간혹 고급스러움을 주기 위해서 반사가 심한 용지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 빛에 따라서 불편감을 느끼기도 했었기에 딱 단정하면서도 깔끔한 종이를 쓴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다채로운 컬러를 이용하여 수록된 작품들의 느낌을 제대로 잘 살려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그림들을 포함하기 위해서 분명 저작료가 만만치 않게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지와 컬러 그리고 그림 수와 분량을 고려해 보면 도서 가격이 무척 착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런 책을 정성껏 만들어서 독자에게 선보인 출판사의 마음까지 받아서 더욱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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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 상편 - 교과서보다 쉽고 흥미진진한 물리학 교실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천아이펑 지음, 정주은 옮김, 송미란 감수 / 미디어숲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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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물리라는 과목은 딴짓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과반이었건만 물리 선생님도 개의치 않았는데요, 학생들의 90%가 잠들어도 꿋꿋하게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저는 예의상 듣는 척하면서 한 손으로는 캐릭터를 그리고 놀고 있었어요. 말풍선까지 그려가면서 공식을 집어넣곤 했는데... 어휴 그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아니 그래도 물리는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알고 보면 물리라는 과목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아우르기에 제가 좋아하는 화학하고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임에도 저는 '물리'라는 과목명 자체가 물려서 싫었습니다. 화학은 생물하고 친한 게 아니냐며, 대학에 가서 생화학을 배울 때에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죠.



그러나 나이를 먹고 내 아이가 물리를 선택해서 수능을 치르는 걸 보기도 하고, 때로는 대학 온라인 강의를 숨죽여서 도강 아니 청강하고 있다 보면 그렇게 괴롭기만 한 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아.. 공식만은 제발.



그런데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상>을 읽다 보니 문득 그때에도 이와 같은 도서가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으니 분명 흥미를 가지고 만나보았을 거 같은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과학에 좀 눈을 뜨려고 하는 중학생에게는 어떨까, 이 책이 물리와 가까워지는 계기를 주지는 않을까 싶었어요.



공식과 기호가 가득한 물리라는 과목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스포츠 속에서 그리고 동화 속에서 알고 보면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왜 그렇지?라는 궁금증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말이죠.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상>은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존재하는 과학 원리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리학의 기초를 익히게 되고 개념을 확립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방법이라니. 무척 즐겁습니다.



저자는 베이징시 제8중학 영재교육센터 물리 연구반 책임자이자 베이징시 시청구 학과목 리더 겸 우수 교사라고 책 소개에 나와있습니다. 물리와 함께하는 삶을 사랑하며 과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분이지만 수백 명의 제자가 명문 베이징 대학, 칭화대학에 진학했다고 하는군요.


이 책은 물리의 기본 개념을 탄탄하게 다지고 있습니다. 목차만 훑어보아도 느낌이 딱 오는데요, '운동', '힘과 뉴턴의 운동법칙', '일, 에너지와 운동량','열현상' 이것만 알아도  물리의 기본기는 갖추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물론 깊게 들어가느냐 맛만 보느냐의 차이인데요, 중학생부터 고등학교 1학년 정도 수준까지는 모두 커버가 된다고 봐도 좋습니다.



사실 물리는 세상 만물의 돌아가는 이치임에도 각종 공식으로 시작한다고 여겨져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바로 저처럼요. 미적분을 싫어하는 이과생이었으니 물리하고 친하게 지낼 수는 없었던 거죠. 그러나 기본 개념을 챙기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다 보니 미리 좀 알고 지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도서는 재미있는 그림과 예를 통해서 천천히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링이 참 좋은 책입니다. 중간에 공식이 상당히 나옴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을 만나보시길 슬며시 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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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리커버)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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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수도 없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아마 상상의 나래를 펴는 그 자체가 좋아서, 그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부하지 못했기에 나름 놀이처럼 읽어댔던 것 같습니다. 많은 책을 만나고 주니어들이나 읽음직한 글 밥 많은 소설들까지 읽으니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죠.

'15소년 표류기'를 읽었던 게 7살 때의 일이니 그럴 수밖에요. 그렇지만 그 뒤로 불어닥친 - 열 살이 되기 전에도 상당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 수많은 우여곡절 때문에 더욱더 책을 통해 많은 걸 배워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건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롤 모델이 되어줄 만한 대상이 없었기에 책을 통해 남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며 살아남았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 고개를 드는 억울함과 슬픔을 약간 다크함이 섞인 시트콤처럼 만들며 살아가는 재주도 익혔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는 고통스러워하는 어린아이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겨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면 지금은 그 역시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살아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글이 참 아팠다. 그렇게도 아프게 글을 쓴 이유, 가시 돋친 나를 드러냈던 이유는 '살고 싶어서'였다. 나는 내 모습으로 나답게 제대로 살고 싶었다.

-p. 244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저자 고수리가 '살고 싶어서' 글을 썼다면 저는 같은 이유에서 책을 읽어왔습니다. 고통스러운 순간,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의심되는 순간 독서를 통해서 꿈을 꾸기도 했고, 어떤 판단을 내리기 위한 기준을 알아내기도 했으니까요. 때때로 지금처럼 타인이 남긴 삶의 흔적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과거에 대한 괴로움을 끌어올리기도 하고 아니면 도로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 재미있는, 혹은 슬픈 스토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밋밋하거나 평범하게 산다는 거. 그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스치듯 지나가는 이들에게도 드라마가 몇 편씩 쌓여있을 텐데 세상의 고통은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죠. 그렇다고 남의 고통을 보고서 행복을 느끼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게 좋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에서 작가는 늘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고 후회막심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스토리들이 쌓여가며 현재의 자신을 만든다는 거. 그런 걸 빠르게 깨달은 사람이라는 점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잘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하지만 나는 매일 자라고 있다. 하루, 한 달, 한 해가 지나면 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자라 있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으면 좋겠다. 다른 누구처럼이 아닌 고유한 나로 살아 있길 바란다.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나는 자라 내가 되고 싶다.

-p.237

작가의 말대로 저도 자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커서 뭐가 되는 게 좋을까 하고 미래를 꿈꾸기도 합니다. 직업적인 면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요, 이를테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고 싶다거나 마블 월드를 정복해버리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원하는 대로 몰랑이 피겨를 사 모으겠다는 포부를 가질 때도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무슨 그런 희망 사항을 적느냐고 한다면 투덜대겠지만 어린 시절 저처럼 자란 사람이 영 어덜트가 될 확률이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하니, 주저하지 않고 '이다음에는 사고 싶은 피겨도 세트로 사고 소고기 먹고 싶은 날에는 장바구니에 턱턱 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건 곤란할까요?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시작해 봤으면 좋겠다. 늦었다고 생각한 꿈을 다시 꺼내고 당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길. 이름 모를 당신의 인생은 어떤 책일까. 그 첫 페이지가 궁금하다.

-p. 155

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원하는 바를 슬며시 꺼내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는 참 신기한 에세이입니다. 작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쩐지 거기에 내 인생이 묻어 나옵니다. 20대 초반에 좋아했던 음악 이야기가 나오니 엉뚱하게도 - 사실은 요즘도 가끔 듣고 있는 - 劉德華의 誰人이 떠오르질 않나, 텅 빈 엄마의 냉장고 이야기를 하니 우리 엄마는 뭐 드시고 계시려나 하는 염려도 기어올라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신기하다고 하는 겁니다. 이야기를 자연스레 털어놓는데도 그 장면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그려져, 나도 모르게 포장마차에 앉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잔치국수를 맛있게 호로록호로록 먹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진한 멸치 육수 향이 여기까지 따라오는 것 만 같습니다. 글 솜씨에 이런 묘한 매력이 있기에 브런치 북에서 누적 200만 뷰를 달하는 조회 수를 기록한 게 아닐까 합니다.

2019년 수오서재를 통해 책으로 만들어진 후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 최근에 리커버로 새 단장하여 나왔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새로운 표지로 만나보게 되었는데요, 부드러우면서도 텍스처가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손맛이 있어서 착 달라붙습니다.

표지 속 멀리 둥실 떠있는 구름을 보면서 내가 살던 고시원에서도 저런 한 조각 솜사탕이 있었더라면 약을 먹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살아서 드넓은 하늘에 제멋대로 떠다니는 것들을 실컷 보고 있으니 앞으로도 오래오래 살면서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볼까 합니다.

아니 참, 그러니까 이 책이 참 이상하다는 겁니다. 분명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다시 제 이야기로 버린 걸까요? 그건 아마도 소소한 순간들을 보듬으며 진솔하게 서술했기에 친한 친구에게 그래그래 나는 이랬어하면서 이야기를 건네는 기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잠들 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서로를 지켜줄 거야."

언젠가 이 밤들도 사람들도 사라질 것을 안다. 알지만 조금만 천천히, 오래, 우리가 이 밤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잠들기도 잠들지 않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의 곁에.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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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 끝의 아이들
전삼혜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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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붉은 실 끝의 아이들>을 펴기 전에 안예은의 '홍연'을 BGM으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전삼혜 작가의 이 SF 소설을 읽으며 듣기에 가장 적합한 배경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작가 스스로 밝히길 이 음악을 시작으로 '난파'로 이어지는 노래들에 이야기를 붙여서 이 책을 써나갔다고 했으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은 없을 것입니다.

여섯 개의 평행우주 속에 존재하는 '유리'는 각각의 지구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름과 능력을 지녔습니다. 우리 지구의 아이야말로 '유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에 편의상 모두 같다고 표현해 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흩어져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는 재주를 가졌던 이 이 아이는 예지몽을 통해서 사람들의 운명을 예견합니다.

그러나 바뀌는 것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는 걸 깨달으며 점점 그 악몽들을 밀어내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나날이 쌓여가는 우울감에 병원을 다니던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또 다른 자신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섯 명의 '유리'는 이곳의 '유리'에게 '시아'가 지구의 멸망을 초래할 거라는 사실을 알립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손시아'라는 동급생에게 관심조차 없었지만 찾아온 그들로 인해 인연을 맺고 결국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하지만 시아는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었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 '유리'들은 '유리'에게 '시아'를 죽이라고 종용합니다.

우리가 온 다섯 개의 우주는 멸망하거나 멸망 직전까지 갔지. 그건 다 시아의 능력. 걱정하는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능력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p.47

그러나 지구에 있는 유리는 도무지 그 뜻을 따라야 할 이유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의 고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선한 아이 '시아'가 희생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 능력이 우주의 멸망을 초래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습니다.

유리와 시아가 가진 초능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은 숱한 과거들로 미루어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운명을 비껴나가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책 안에 들어차 있습니다. 책을 읽는 어른인 저는 '그래, 무슨 상관이야. 스스로의 행복을 포기해야 할 만큼 이 유니버스가 소중한 건 아니잖아.'하며 그들을 응원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깨닫고 스스로에게 제동을 걸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은 죽어도 좋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얘 하나만 희생하면 다른 사람들은 편안한데...라는 생각을 해도 괜찮은 건가 하며 딜레마에 빠져버렸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기로에 서서 저는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평행 우주 속에서 다른 선택을 하고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유리와 시아가 존재하기를 바라면서. 이 스토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나가는 수많은 선택과 아픔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가자.”

유리는 속으로만 덧붙였다. 우주가 더 이상 출렁이지 않는 곳으로. 우리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너의 멸망으로.

-p.218

운명의 '붉은 실'이 존재한다는 건,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걸 뜻합니다. 우리의 지구를 찾아온 다른 '유리'들은 이미 자신의 '시아'를 죽이고 왔습니다. 그들의 시아는 엄마, 쌍둥이 등 가장 소중한 누군가였습니다. 대부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요를 받고 - 스스로의 운명을 인지하고 뜻을 따랐습니다.

각각의 지구에서 베이, 륜, 토토, 렌, 진이라고 불렸던 아이들은 고통과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 스토리가 <붉은 실 끝의 아이들> 사이에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특수능력자임과 동시에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소수자인 그들은 늘 슬프며 운명을 따라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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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지 않을 권리
김태경 지음 / 웨일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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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현상이라거나 타인을 재단합니다. 때로는 위로의 말이랍시고 건넨 게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가끔은 침묵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야야 합니다. 크고 작은 범죄에 노출되었던 사람에게 '유난이다'라는 말로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다 잊으라'라고 다독이는 것 모두가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읽으며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임상수사심리학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삶이 더 힘들어지는 게 싫어서 가상이 아닌 현실을 보도하는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 편입니다. 발췌해서 시청하곤 하지만요. 김태경은 'PD수첩'이나 '궁금한 이야기 Y'등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상담심리학과 교수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강력 범죄 피해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실사례가 많이 등장합니다. 속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마주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돌이켜 봅니다. 스스로의 잣대를 가지고 그 사람들이 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가 의문을 가졌던 적은 없었던가 혹은 너무나 빨리 회복하는 사람을 보면서 내면의 상처는 미처 보지 못한 채 일어서서 다행이라며 안도했던 일은 없었나 반성해 봅니다.

역설적이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상 경험을 토대로 범죄 피해자의 생각과 감정을 추측하며 그것을 이해라고 착각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오해를 양산한다. 심지어 피해자가 예상보다 더디게 회복하면 무능하거나 게으른 사람이라 비난하고,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면 피해자 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p.56

권선징악

우리는 어렸을 때 많은 동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권선징악을 주입당했었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간단한 이치가 동서양에 넓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범죄에 노출되었던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은 내가 나쁘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기 탓'을 하며 원인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는 겁니다.

이는 자신에게 직접 벌어진 일뿐만 아니라 사망 시에는 유족에게까지 해당되는 일입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아가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통제감을 돌려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죄책감을 안고 살게 됩니다. 권선징악은 정의와 공정성이 담보되어야만 한다(p.60)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문화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아이가 '콩쥐 팥쥐', '헨젤과 그레텔' 혹은 '백설공주'와 같은 동화나 노래 혹은 놀이를 통해 권선징악적 가치 기준을 주입받으며 성장한다. 그렇게 자란 우리는 좋은 일은 선한 사람에게 그리고 나쁜 일은 악한 사람에게만 일어난다는 믿음, 즉 정의로운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덕에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한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토대로 안전감을 느끼며 일상을 영위한다.

-p.179

공감의 잘못된 예

범죄에 노출되었던 피해자를 대할 때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며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게 좋다고 합니다. 따라서 나름 도움을 주기 위해서 조언을 한다거나 바깥으로 끌어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강력 범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을 주기에 섣부른 이끔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2차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강력 범죄의 피해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정확히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마다 느끼는 정도라거나 정황 등이 모두 다르기에 나도 이겨냈으니 너도 해봐라는 식은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왜 여전히 그 안에 갇혀있을까 하는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든 지목된 가해자에 대한 공감이든 객관성과 중립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진정한 공감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잔혹할 수 있다.

-p.79

용서하지 않을 권리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자극적인 범죄 사건 그 자체에만 주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면 연일 흥미 본위로 보도하는 기사들을 보며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어떻게 살해당했는가 그리고 범인이 한 기이한 행동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우리는 피해자나 유족에 대해서 돌아보기는커녕 사건 그 자체만 자극적으로 대하곤 합니다.

어쩌면 감정이입을 했을 때 스스로도 고통스럽기에 애써 피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몇몇 사건에 있어서는 자려고 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괴로웠었으니까요. 제3자가 느끼는 트라우마라고 하기에는 약한 것일 테지만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본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피해자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없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금씩 회복하며 챙겨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시한을 우리가, 주변인이 정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죽은 아이는 잊고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는 글을 읽고선 경악했습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가라앉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타인은 알지 못합니다. 너무나 담담해도,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도 손가락질하고 남들처럼 살아보려 미소 지으면 그 웃음마저 욕하는 일이 다분합니다. 호기심을 거두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걸 모릅니다.

도움을 주고 싶다면

만일 주변에 성범죄를 포함한 강력 범죄에 노출된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226페이지서부터 그들에게 어떻게 대하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지 잘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인한 STS 간접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는 가족뿐만 아니라 상담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연민 피로나 공감 피로라고도 불리며 피해자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적당한 지지라는 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아직까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마냥 슬프기만 합니다.


사건의 단면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이해하는 마음을 키워야겠습니다. 오롯이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위로할 수는 없기에 적어도 흥미 본위로 사건을 대하는 일만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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