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계곡 모중석 스릴러 클럽 35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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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프스의 죽음과도 같은 지옥계곡의 12월. 찬 바람이 계곡 사이로 휘몰아칠때 라우라라는 여인이 투신합니다. 라우라를 구조하려던 로만은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계곡 아래로 떨어지던 그녀의 눈을 잊지 못하고 라우라의 아버지는 딸은 자살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인을 캐내려 사립탐정을 고용하려 합니다. 생전에 그녀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차가운 아버지가 그녀가 죽고 나서야 사랑을 깨달은 것인지, 딸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라우라의 친구 마라와 또 다른 친구들과 전남친은 그녀의 죽음에 각자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그녀의 죽음에는 그들이 얽혀있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자기 중심적인 마음들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행해진 스토킹. 그녀의 불행을 기회로 삼아 협박을 일삼은 남자, 친구의 서먹한 태도에 어찌할 바 몰랐던 친구등.. 각자의 사정이 조금씩 모여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는 얼마나 그녀를 두렵게 했을까요. 자신의 괴로움 때문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투신한 그녀의 마음을 생각하니 슬펐습니다.

'나만 죽으면 모든게 끝나.'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녀의 죽음은 오히려 친구들에게는 공포의 시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마치 제 자신이 쫓기는 것 같은 스릴이 느껴졌지요.

눈 앞에 눈보라 휘몰아치는 알프스의 계곡이 펼쳐지는 듯한 묘사, 독백처럼 펼쳐지는 범인의 이야기는 얼마나 그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닷없는 장면의 전환은 몰입도를 살짝 떨어뜨리곤 하더군요.

쓸데없는 장면이라고 해야할지.. 이사람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다른 장면이 툭 튀어나올때는 순간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이 작가의 특징일까요?

그런 것들만 제외한다면 스릴러 소설로서는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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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 법의학이 밝혀낸 엉뚱하고 기막힌 살인과 자살
에두아르 로네 지음, 권지현 옮김 / 궁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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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전문기자였던 - 현재는 문화부기자 에두아르 로네의 기막힌 자살과 살인 그리고 사고에 관한 책입니다.

 

법의학 논문이나 저술, 잡지등 전문지에 실린 희한한 죽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뭐 이런 일이 다 있다 싶을 정도로 기상천외합니다.

이를테면 자신의 몸을 120번 찔러 자살한 사람이나 14번 총으로 쏴서 자살한 이야기 같은 믿기지 않는 자살 이야기나 사냥개가 건드린 사냥총에 맞아 죽은 사냥꾼의 총기사고, 낙태를 시키겠다고 정부의 질에 압축펌프를 사용했다가 색전증으로 죽게 만든 사고... 결국 그 남자도 자살한 그런 이야기들이 있지요.

가장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은 성적 쾌감을 얻으려고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사용하다 사고로 죽은 사건들 사건들이라거나, 것 참 왜 그러는건지.. 시체 애호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도무지 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었죠.

무척 무겁고 소름끼치는 사건들을 법의학적 지식과 논리로 - 감정은 배제하고 - 서술하는 논문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심각한 소재를 , 게다가 만화나 영화도 아닌데 실제로 이런일이 있었나 싶은 그런 죽음을 특유의 블랙 유머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저자의 능력도 놀랍습니다.

글을 읽으면 머리속에서 상상되는지라 많은 분량도 아닌데 한번에 다 읽지 못하고 나누어 읽었습니다. 아무리 유머러스하다고 해도, 머리속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는 일만은 막을 수가 없더라구요.

오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이런 희한한 방법으로 죽은 시신들의 사인을 규명하기까지 법의학자들은 많은 수고와 연구, 그리고 추리를 하는군요.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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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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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마르고 씁니다. 왼쪽 눈 아래쪽에서 시작된 둔탁한 통증이 귀 위쪽을 지나 왼쪽 목덜미에 이르기까지 차츰 진행됩니다. 그건 아마도 분노였을겁니다. 점점 숨이 막혀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은 회색의 표지에 커다랗게 그려진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서점에서 몇번이고 들었다 놓았다를 했던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예고편을 보고서는 이 책을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렇다고 이번 재판의 핑크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표지를 읽을 것이 아니니까.

딸과 단둘이 단란하게 살아가던 나가미네. 딸은 불꽃놀이에 다녀오던 중 가이지 패거리에게 납치됩니다. 16세에 불과하던 딸은 성폭행 당한 끝에 죽고 강물에 버려졌습니다. 충격에 빠진 나가미네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습니다. 경찰은 혹시 미성년자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일단은 광범위하게 수사를 합니다. 이때 나가미네에게 한 통의 제보전화가 옵니다. 제보자는 범인의 이름과 아지트를 알려주고 그 곳을 찾아간 나가미네는 딸의 성폭행 비디오를 보게됩니다. 분노에 찬 아버지는 때마친 귀가한 아쓰야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이미 달아난 주범인 가이지를 찾아 나가노로 향합니다.

피해자였던 나가미네를 아쓰야 살해의 피의자로서 추적하게 된 경찰도, 사건을 알고 방송하게 된 매스컴도, 그리고 시민들의 반응도 갖가지였습니다.

가이지와 아쓰야는 성폭행 상습범입니다. 납치, 성폭행도 모자라 신고를 할 수 없도록 촬영까지 했습니다. 그것들은 전리품처럼 고스란히 증거로 남아있었지요. 그런끝에 한 여학생은 자살을 했고, 또 한 여학생은 죽고 말았지만 정작 그들은 미성년자이므로 만일 그들이 체포된다하더라도 형량이 가볍고, 마약이나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핑계댄다면 감형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자신의 눈앞에서 딸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면 어떤 부모가 돌아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개인의 복수를 해도 된다면 사회의 치안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릴겁니다. 그러니 법은 지켜야겠죠. 하지만 사랑하는 내 딸은 죽어버렸는데 죽인 놈들은 반성조차 하지 않고 히히낙락하며 잘 살고 있다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겁니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요. 체포해서 합당한 벌을 준다면 어느정도 납득하며 머리를 식힐 수 있으련만, 피의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에서 형이 지나치게 가볍다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방황하는 칼날의 칼날이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악을 베는 칼날입니다. 그런데 진정 정의란 무엇인가요. 그 정의를 알 수 없기에, 어느 쪽이 옳은 방향인지 모르기에 칼날은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은 스토리 자체의 흐름보다는 개인적 복수와 준법의 사이에서 독자들을 고뇌하게 합니다. 아쓰야의 살해이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스릴 넘치는 부분도, 대반전도 없습니다. 그러니 추리 스릴러를 원했다면 약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가미네의 마음만큼은 100퍼센트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으니까요.

암행어사 박문수였다면 아쓰야를 죽인 나가미네에게

"잘하였다. 그놈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으니 아비인 네가 도륙함이 마땅하다."

라고 칭찬을 해 주었을 텐데...

아아.. 개인의 복수, 준법, 아직까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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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 1 - 사도세자 이선, 교룡으로 지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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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당 정치를 없애고자 탕평책을 펼친 영조는 백성을 위한 왕이라는 면에서는 분명 훌륭한 왕입니다. 보통의 선한 백성 뿐만 아니라 죄수의 인권마저도 생각했을 정도였는데요. 삼복법, 사적형벌금지등이 그런것인데, 신문고 제도도 부활시켜서 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노력했습니다. 게다가 균역법도 시행했지요. 국방도 든든히 하는 한편 왕 스스로 흥미가 있어서였는지 문화도 꽃피운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역대의 조선왕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집안 사정에는 답답할 정도였는데요, 탕평을 하려는 왕이 노론의 음모라지만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다니, 이런 슬픈일이 다 있을까요.

역린이란, 용의 비늘 중 목덜미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합니다. 군주가 노여워 할 만한 약점, 혹은 군주의 노여움을 일컫지요. 그렇다면, 영조에게 있어서의 역린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에게 있어서 역린이란 '양위'라는 두글자요 '태상왕'이라는 세글자였습니다. 책에서의 왕은 천년만년 살면서 왕권을 누리길 바라지만 세자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던 것이지요. 영조와 사도세자와의 사연은 사도세자가 정말로 방탕하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설과 그런척 했다는 설, 혹은 노론파의 거짓상소로 인한 누명이라는 설등 아직까지도 개운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 노론의 입김이 작용했으며 당파 싸움에 휘말려 운명을 다한 것만은 사실일겁니다.

당파 싸움을 종식시키고 싶어했지만 결국엔 자식을 죽인 아비라는 오명을 천년만년 안고 가야만 한 왕 영조. 책의 제목은 그리하여 역린이지만, 이 책 역린 1의 주인공은 단연 세자 이선, 사도세자입니다.

영조 36년 (1760) 온천행차를 하던 세자 일행이 불어난 한강때문에 물을 건너지 못하자 백성들이 선창에 발이 묶인 왕세자를 위해 배들을 연결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돕습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용주를 따라 천세를 외치는 백성들의 긴굽이가 강변을 따라 꿈틀거리는 교룡으로 보였고, 백성들 하나하나가 용의 비늘로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 이선은 그간 억눌러왔던 자신의 마음을 펼치기로 합니다.

이런 굵은 역사의 흐름- 정치적인 흐름 중에도 백성들의 역사도 흐르는 법이지요.

황율이라는 무관은 살수 광백의 검에 부상을 당하고 아비의 칼을 뺏기고 의녀 개울의 정성스러운 간병을 받으며 사랑을 키우게 됩니다.

광백은 내관 안국래의 분부로 고아 아이들을 주워다가 산중에서 아주 잔인한 방법을 사용해 살수로 키워가고 안국래는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청부 살수 청탁을 받습니다.

광백이 주워다가 살수로 육성하는 아이 중 칠십칠노미 갑수는 산채에서의 첫날 동생 을수를 잃고 독하게 살아 남습니다. 그러다가 죽은 동생과 꼭 닮은 아이 쥐똥이에게 을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동생처럼 아낍니다. 한편 황율은 평양에서 세자를 구하다 결국 광백에게 죽고, 하룻밤의 정으로 임신한 개울은 딸을 낳고 죽습니다.

책은 교룡을 꿈꾸었지만, 승천하지 못하고 뒤주안에 갖혀죽은 세자의 죽음까지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권의 이야기는 영화 <역린>을 보기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할 것입니다. 영화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스토리를 풀어 낼 줄지는 모르겠지만, 화려한 액션과 현빈의 사극 변신만으로도 마음이 혹합니다. 영화의 카피에는 '24시간의 싸움'이라고 되어있는데요. 아마도 실패로 끝난 정조암살 시도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24시간의 싸움이기에 등장인물들의 인과 관계를 잘 알고서 영화를 본다면 영화의 맛이 더 살아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듭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고서 영화를 본다면 더 맛깔나겠죠.

소설은 마치 강물과 같았습니다. 평탄하게 흐르기도 하고, 샛강으로 빠지기도 하는가하면, 어디선가 시냇물이 흘러들어와 큰물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급류를 만날때도 있지만 빠르게 흘러가다가 다시 전환되기도 했습니다. 역사, 상황, 액션 묘사등 하나도 빠질 것이 없는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아아, 너무나 초조합니다. 원래 1권만 읽고 리뷰하는 법이 없는데, 여러권으로 된 책은 본디 다 읽고 한번에 리뷰하는데, 안타깝게도 2권은 5월에 나온다고 하네요. 앞으로 그들의 시간은 어떻제 흘러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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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후드티 소년 북멘토 가치동화 6
이병승 지음, 이담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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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후드티 소년은 동화입니다. 읽고서 괜찮다면 딸에게 권하려고 읽었지요. 하지만, 이 책은 동화 이상이었습니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초반에는 마틴과 주변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가 우리나라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주인공은 제이라는 한국계 입양아였지요. 책의 초반은 금새 지나가고 마틴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단지 후드티를 입고 밤길을 걸었을 뿐인 그 아이의 죽음 말이지요. 사건 이후엔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마틴의 친구였던 아이들은 마틴의 억울한 죽음과 가해자인 짐머만을 처벌해 달라는 후드티 시위를 합니다. 결국 백만 후디스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을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트레이본 마틴 사건은 오래전 사건이 아닙니다. 2012년에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지요.

당시 후드티를 입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길을 걷던 마틴은 자경단원인 짐머만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그러나, 짐머만은 그대로 풀려나고, 이를 탄원하고자 백만 후디스 운동이 벌어집니다. 책에서는 가상의 아이 세명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아이들 이외엔 거의 모두가 실제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화가납니다. 뿌리깊은 인종차별. 마틴이 죽어야했던 이유는 흑인 소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에서는 백만 후디스 운동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만, 실제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짐머만이 작년 무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조지 짐머만 무죄 평결에 미국 100여곳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지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중 백화점에서 쇼핑하다가 보안 요원들이 뒤따라 오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레이본 마틴은 자신의 35년전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고, 자신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이 아이를 닮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짐머만은 당당하게 거리를 쏘다니며 또 다른 사건을 치지요. 이혼 소송중인 자신의 아내를 찾아가 총기 난동을 벌였음에도 아내가 고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려나고, 동거중인 애인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총기난동을 벌여 현재는 수감중인모양입니다.

흑인 소년을 살해하고도 무죄평결을 받았기에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걸까요? 이런 시한폭탄 같은 인간을 거리에 풀어놓은 미국사회가 이해가지 않습니다. 비무장 흑인소년을 권총살해한 짐머만이 정당방위로 무죄가 되는 그런 사회. 인종차별이 아직도 이렇게 심각하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종차별 국가입니다. 언제쯤이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그런 일이 없는 세상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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