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마르고 씁니다. 왼쪽 눈 아래쪽에서 시작된 둔탁한 통증이 귀 위쪽을 지나 왼쪽 목덜미에 이르기까지 차츰 진행됩니다. 그건 아마도 분노였을겁니다. 점점 숨이 막혀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은 회색의 표지에 커다랗게 그려진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서점에서 몇번이고 들었다 놓았다를 했던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예고편을 보고서는 이 책을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렇다고 이번 재판의 핑크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표지를 읽을 것이 아니니까.
딸과 단둘이 단란하게 살아가던 나가미네. 딸은 불꽃놀이에 다녀오던 중 가이지 패거리에게 납치됩니다. 16세에 불과하던 딸은 성폭행 당한 끝에 죽고 강물에 버려졌습니다. 충격에 빠진 나가미네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습니다. 경찰은 혹시 미성년자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일단은 광범위하게 수사를 합니다. 이때 나가미네에게 한 통의 제보전화가 옵니다. 제보자는 범인의 이름과 아지트를 알려주고 그 곳을 찾아간 나가미네는 딸의 성폭행 비디오를 보게됩니다. 분노에 찬 아버지는 때마친 귀가한 아쓰야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이미 달아난 주범인 가이지를 찾아 나가노로 향합니다.
피해자였던 나가미네를 아쓰야 살해의 피의자로서 추적하게 된 경찰도, 사건을 알고 방송하게 된 매스컴도, 그리고 시민들의 반응도 갖가지였습니다.
가이지와 아쓰야는 성폭행 상습범입니다. 납치, 성폭행도 모자라 신고를 할 수 없도록 촬영까지 했습니다. 그것들은 전리품처럼 고스란히 증거로 남아있었지요. 그런끝에 한 여학생은 자살을 했고, 또 한 여학생은 죽고 말았지만 정작 그들은 미성년자이므로 만일 그들이 체포된다하더라도 형량이 가볍고, 마약이나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핑계댄다면 감형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자신의 눈앞에서 딸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면 어떤 부모가 돌아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개인의 복수를 해도 된다면 사회의 치안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릴겁니다. 그러니 법은 지켜야겠죠. 하지만 사랑하는 내 딸은 죽어버렸는데 죽인 놈들은 반성조차 하지 않고 히히낙락하며 잘 살고 있다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겁니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요. 체포해서 합당한 벌을 준다면 어느정도 납득하며 머리를 식힐 수 있으련만, 피의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에서 형이 지나치게 가볍다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방황하는 칼날의 칼날이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악을 베는 칼날입니다. 그런데 진정 정의란 무엇인가요. 그 정의를 알 수 없기에, 어느 쪽이 옳은 방향인지 모르기에 칼날은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은 스토리 자체의 흐름보다는 개인적 복수와 준법의 사이에서 독자들을 고뇌하게 합니다. 아쓰야의 살해이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스릴 넘치는 부분도, 대반전도 없습니다. 그러니 추리 스릴러를 원했다면 약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가미네의 마음만큼은 100퍼센트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으니까요.
암행어사 박문수였다면 아쓰야를 죽인 나가미네에게
"잘하였다. 그놈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으니 아비인 네가 도륙함이 마땅하다."
라고 칭찬을 해 주었을 텐데...
아아.. 개인의 복수, 준법, 아직까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