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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 인생의 파도를 대하는 마흔의 유연한 시선
제인 수 지음, 임정아 옮김 / 라이프앤페이지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십대 때는 빨리 20대가 되고 싶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독서실에서 보내던 그땐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여행도 가고 술도 마실 수 있는 자유가 신기루같이 느껴지곤 했다.
20살이 됐을 땐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대단한 게 아니었음을 실감하고 적잖이 실망했었다. 그리고 그 자유에는 대가가 따름을 알았고 또 그때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남의 돈 벌어먹고 살기가 더럽고 치사해도 다음 달 카드값을 위해 참으면서 약육강식의 세계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 때, 나는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다.
경제적 자유가 첫 번째 이유이고, 직장에서의 입지를 단단히 해 대내외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대는 아직 부모님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므로 진정한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30대가 되고 나니 안정적인 부분도 만족스러운 부분도 분명 컸다, 진짜 인생은 30부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생에서 아주 중대한 이벤트가 (결혼과 출산 등) 이 시기에 몰려 있다. 그래서 30대의 나는 그저 하루하루 살기 바쁘고 정신없다. 예전처럼 ‘빨리 나이를 더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 ‘나이 들면 어떻게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같은 걱정이 더 큰 것도 같다.
책을 읽으며 나의 40대 때 모습을 그려봤다. 40대가 되면 분명 흰머리도 많아질 것이고 주름도 늘어나겠지.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고 육아와 살림, 일에 지쳐 금방 폭삭 늙을 것 같은데.. 40대의 좋은 점이라곤 생각이 나질 않는다. 50대는 그나마 아이도 크고 여유도 많이 생길 것 같아 조금은 기다려지지만 40대는 정말이지..
그러다가도 <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의 에피소드를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일이 있으면 40대도 그리 나쁘진 않겠다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흰머리와 주름과 푸석푸석한 피부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지만.
사람 사는 던 다 비슷비슷하다. 40대쯤, 인생의 노잼시기가 오면 나이가 비슷한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렇게 기대하던 20대도, 30대도 겪고 나니 별거 아니었던 것처럼 40대도 그렇겠지,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