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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르테미시아 -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
메리 D. 개러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평점 :
아르테미시아가 살았던 17세기 유럽은 견고한 가부장제 그늘 아래서 여성 억압이 팽배한 사회였다. 당시 여성은 그저 집안 남자들의 소유물이자 재산으로 분류되어 물질적 재산은 물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조차 갖지 못했고, 중매결혼이나 수녀원의 경제적 볼모였다. 그러한 시대였음에도 아르테미시아는 뛰어난 재능으로 일찍이 화가 아버지 오라치오의 공방에서 도제생활을 시작했고, 예술가로서 경험을 쌓아간다. 그러던 중 아르테미시아의 미술수업을 맡은 아버지의 동료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가 수업을 빙자해 어린 아르테미시아에게 접근, 거칠게 저항하는 그를 강간한 사건으로 아르테미시아의 삶은 전환기를 맞는다. 하지만 결코 수동적 피해자로 머물기를 거부한 아르테미시아는 로마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간 재판을 견디고 살아남아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 화가로서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잉글랜드 등에서 활동하며 당대 여성 지도자들과 교유했다. 또한 그가 남긴 여러 유의미한 작품은 재발견되고 연구되면서 현대에 전해지고 있다.
대학시절 매 학기 미술사를 교양과목으로 수강했고 지금도 미술 관련 책을 꾸준히 읽는데도 불구하고 아르테미시아라는 이름이 너무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림은 어디선가 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름은 처음들어보는데라고 생각하며 <여기, 아르테미시아>를 펼쳤는데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왠지 이 책을 시작으로 미술을 좀더 폭넓게 이해하게 될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아르테미시아의 묘비에는 그저 "여기, 아르테미시아 (Haec Artemisia)"라고만 새겨져있다고 한다. 그 시대에도 아르테미시아라는 이름만으로 그의 명성을 증언한 것이다.
아르테미시아를 안다는 것은 미술에 새롭게 눈뜨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이해했던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