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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 디플롯 / 2023년 4월
평점 :
부끄러운 역사 속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힘없는 약자, 그 중에서도 여성이었다. 조선시대 청나라로 끌려갔다 다시 돌아온 여인들을 칭한 '환향녀'는 정숙하지 못한 여성,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판 여성을 칭하는 욕인 화냥년이 되었다.
grace는 우아함, 품위라는 뜻이자 여자에게 많이 붙여지는 이름이지만 여기에 반대, 부정의 뜻을 지닌 접두사 dis가 붙여지면 망신, 수치, 불명예가 된다.
언어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유독 여성에게 가혹하고 냉정하단 생각이 든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하게 되니 자연스레 역사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게 취급 된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이 뒤따른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괴롭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전쟁은 특히 여성들을 더욱 위험에 빠뜨린다. 한 지역을 파괴하는데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부인, 누군가의 자식인 여성을 범하는 일이라 분쟁 지역에서 강간이나 납치는 흔한 일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죄책감 없이 자행되고 있고 전 세계 여성의 5명 중 한 명 꼴로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는 언제나 피해자의 몫이었다.
<수치(disgrace)>는 폭력적인 강간의 역사와 이 악습을 파괴할 유대와 사랑의 힘에 관한 책이다. 이런 책이 끊임없이 나와야 하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와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 독서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세상은 수치라는 감정을 피해자에게 심어 주며 성폭력 당사자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지워왔다. 그러나 이들이 점점 목소리를 내면서 제도를 바꾸고 법을 바꾸고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여 앞으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약자들을 위한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유대와 연대가 만들어내는 기적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