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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을 용기 - 일해야 산다는 강요에 맞서는 사람들
데이비드 프레인 지음, 장상미 옮김 / 끌리는책 / 2025년 5월
평점 :
데이비드 프레인의 <일하지 않을 용기>는 현대의 일 중심 사회 구조를 분석하여 현대인이 일에 대해 갖게 된 노동 윤리의 맹점을 파헤치고, 우리가 바라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제공하는 사회과학서이다.
이 책은 총 8장의 목차로 되어 있다. 하지만 더 건강한 삶, 자율적인 자기 계발을 통한 행복감 획득을 위하여 소모적 노동을 줄이는 대안적 삶의 방향을 고찰해보자는 주장 아래, 이 책의 목차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분류 가능하다. 첫번째 부분은 일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의 도덕화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주류 사회에 대항하여 탈 노동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사례 연구이다. 마지막 부분은 덜 벌고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한 사회적 연대와 전략 검토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인생의 80%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과 직업에 대해 정말 굉장히 많은 편견들이 깨지는 걸 느꼈다. 내게 일은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삶의 일부이며, 자아실현의 도구이고, 자원 획득을 위한 수단이다. 당연히 일을 통해서 스트레스도 받지만, 보람도 느끼기에, 일을 관둔다는 선택지는 애당초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이들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저자는 제자들에게 '로또에 당첨되면 일을 할 거냐'고 묻고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렇다'라고 답한 것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충격을 받았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의 책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이란 용어는 저자가 서장을 통해 길게 설명했듯이, 맥락에 따라 다채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실제로 직업을 통해서 자아를 구현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저자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자아실현 및 자기계발의 도구이자 금전적 대가를 동시에 안겨주로, 인간적이며 좋은 환경의 일자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개인을 거대한 소비형 자본주의의 거대한 시스템의 미미한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래서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7-8시간을 참고 견뎌야 탈출할 수 있는, 여가조차 다음 날의 생산성을 위해서 소모적 휴식으로 저당잡히는, 나쁜 일자리를 말한다. 저자는 독자에게 묻는다. 이렇게 나쁜 일자리를, 왜 박차고 나오면 안되는가.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실직자는, 실패자나 사회부적응자 내지는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인격과 동의어가 되었느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답을 하기 전에, 우리가 소위 청교도적 질서에서 기원한 노동 윤리에 오랜 세월 지배당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종교 개혁에서 기원한 청교도적 입장에서는 직업을 하느님의 소명, 소위 calling이라고 부르며 노동을 신성시하였다. 당연히 일을 하지 않는 잉여 인력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한 저주 받은 종족이 되는 건 이와 같은 논리 구조하에서는 자명하다. 현대로 들어오며 종교적 색채는 자본주의의 탈을 쓰고 인간을 세뇌한다. 케인즈를 비롯한 저명한 사회경제학자들은 인류의 생산성 증대가 노동시간의 감축을 불러 올 것이라 예측하였다. 하지만 현대의 비대한 자본주의는 기존 소비의 영역이 아닌 지대까지 세력을 확장해 가며, 노동의 대가로 여가가 아닌 더 다채롭고 더 편리한 소비 기회를 제공한다. SNS와 미디어는 이러한 소비를 삶의 질 향상이란 명분 아래 한층 더 부추긴다. 그 결과 우리는 꼭 필요하지 않은 소모품으로 집을 가득 채우고, 기업은, 부당한, 심지어 저자의 비판으로라면 불필요하기까지 한 소모품을 생산하기 위한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노동을 대가로 물건을 사고, 불쾌한 소비 경험에 좌절하며, 또 카드값을 메꾸기 위해 개인의 시간을 돈으로 바꾸게 된다는 통찰은 매우 날카롭고도 설득력 있어서 글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노동이 과연 내 인생의 중심이어야만 하는가. 노동을 당연시 하고, 이 거대한 소비 시스템에 매몰되는 노동구조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비생산적 인력이 어찌하여 부도덕하고 형편 없는 계급으로 매도되어야만 하는가. 아침 8시 출근, 저녁 8시 퇴근 후 지쳐서 집에 오면 유튜브나 하다가 언제 잠드는지도 모르는 채 잠들었다가 같은 일과를 반복하고, 주말에는 사회적 활동을 할 여력도 없어서 종일 침대에 뒹굴며 게임과 SNS 따위에 빠져 사는 삶이, 과연 내가 내 삶을 살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그렇게 쉬는 퇴근 후의 시간과 주말이, 회사에, 직장에 저당잡힌 삶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책을 통해 저자가 묻는 목소리에, 나는 당당히 답할 수가 없었다. 과연 이 책을 읽는 수많은 유급 노동자들은 얼마나 많이 일이 있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고 답할 것인가.
딸냥이의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입원 시킨 후 일을 하다가 수술대에서 아이를 떠나보낸 일이 작년에 있었다. 그 날이 내 딸의 마지막 날이었을 줄 알았다면, 나는 과연 일 따위를 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 점이 너무 괴로웠고, 죄스러웠으며, 속상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울컥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일 이후 느끼는 바가 컸던 나는 오랜 결심 끝에 올해부터는 차라리 덜 먹고 덜 쓰더라도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일념 하에 주말과, 평일 하루를 온전히 비웠다. 이 책에 나오는 탈노동을 선택한 수많은 이들처럼 확실히 금전적으로는 쪼들리는 느낌이 있지만, 삶의 만족도는 올라갔다.
만족스러울 만큼은 아니어도, 아이들과 교감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투자할 최소한의 내 시간과 기력을 확보한 나는 내가 내 인생을 갈아서 맞바꾼 것들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목도할 수 있었다. 소위 내 또래의 평균적인 삶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내가 밤에 들어가 잠만 자는 집을 위해 쓰던 막대한 주택자금, 일할 시간 확보를 위해서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 위주의 부실한 식단으로 인한 건강 악화, 산더미 같이 쌓인 포장도 뜯지 못한 온갖 소비재들. 내 인생은 고작 그런 것들을 위해 공중분해되고 있었다. 저자가 말했듯, 삶의 만족은 소비에 있지 않고, 통제 가능한 시간이 많아질수록 소비지출은 감소한다. 나는 그걸 바뀐 내 삶, 탈노동까지는 아니어도 노동 감소를 통해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노동은 선택가능한 삶의 한 요소이지, 노동이 우리 존재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노동을 삶의 가치 척도로 삼고 있는 현대의 일중심 사회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덜 일하고 더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부족한 인간의 일탈적 선택이 아니라, 정당한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사회적 담론은 꼭 필요하다. 우리 삶에는 노동 이외에도 가치 있는 순간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으며,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일 필요는 없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사회의 구조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최소로 일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보장해줌으로써, 적은 노동으로도 개인이 자유롭고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 외 노동시간의 단축, 탈노동 연대의 네트워크 구축을 저자는 시스템적 개선책으로 주장한다. 나는 이에 더해 공공 돌봄 및 평생교육 및 문화 예술 활동 지원 같은 사회적 서비스의 확대,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기업에 일부 환수하는 조세 개혁과 돌봄과 자원봉사, 창작과 체험농장 같은 비노동 영역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일 외에도 의미 있는 삶이 있을 수 있음을 공감하는 열린 사회를 위해서 우리는 한번쯤 저자와 더불어 일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끊임없이 일해야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기존의 가치관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이다. 실업을 개인의 실패로 간주하는 사회적 편견에 회의를 느끼거나, 생산성 외의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 싶다면, 이 책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