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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당신을 위한 자존감 워크북
김기현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6월
평점 :
김기현 상담사님의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당신을 위한 자존감 워크북>은 사회초년생이 사내 관계 속에서 직면하는 자존감 저하와 번아웃에 대한 해결책을 심리학적 이론에 기초하여 제공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쓰기 위한 책이다. 텍스트힙이 사회적 현상으로 퍼져 나가며 요즘 한창 필사용 책의 발간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필사노트를 구매했을지언정, 필사용으로 출간된 책은 구매한 적이 없었던 나는 이 책의 구성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이 책은 전체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출근이 싫은 마음 이면에 있는 관계의 고통과 문제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존감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2부는 저자의 집필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파트로, 7단계에 걸쳐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실습을 워크북 형식으로 차분히 구성하였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내 안의 비판자를 만나고, 욕구의 좌절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한 뒤, 성공 경험과 자기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각 단계가 세세하게 나뉘어진 워크시트로 제공된다.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될 법한 실습 위주의 책을 눈앞에 두고,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책을 독자로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그러다가 저자의 말처럼 처음은 읽고, 그 다음에는 쓰는 책으로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존감이 무너지거나 상처 받는 일은 다반사인데, 일회성으로 쓰고 말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워크시트의 각 단계마다 커다란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고 하루에 한 단계씩, 퇴근 후 하루를 돌아보면서 적어보기로 했다. 쓰다 보니 한 단계씩 진행해도, 평균적으로 20-30분은 꼬박 걸려서 하루에 여러 단계씩 진행하는 건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루에 한 단계씩 분량을 줄이되, 대신 글을 쓰면서 내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것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의식을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나면 다이어리에 칭찬과 격려의 짤막한 글을 남기곤 했다. 그렇게 하나씩 진행하여 오늘이 벌써 4일째이다.
여태까지 진행한 단계 중에서는 내면의 비판자를 관찰하는 어제의 워크시트가 내게 가장 유용했던 것 같아서 잠시 그 내용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나는 굉장히 욕심이 많다. 욕심은 많은 반면, 체력과 정리력은 부족한 편이라 물건도 넘쳐나고, 일거리도 늘 넘쳐서 툭하면 밤을 새며 가뜩이나 위태로운 건강을 해치기 다반사다. 관심 분야도 넓고, 올해는 이사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상반기를 몇 번이나 집을 옮겨다니는 와중에 비루해진 체력을 다 깎아 먹어서, 원래 계획했던 장기 계획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꿈을 버리지는 못해서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계속 나를 몰아치다가 상반기 내내 누적된 피로로 감기 몸살과 번아웃에 시달리던 터라, 나는 내심 이 책의 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받자마자 즐거운 마음으로 펼쳐들어 읽으며 하루에 한 장씩 워크북의 내용을 적어내려가다가, 나는 3단계 내면의 비판자 앞에서 한참 주저했다. 원하는 바를 다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과, 더이상은 무리라고 속삭이는 자아의 충돌을 줄곧 외면해왔으나, 더이상은 그럴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욕심 사납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내면의 비판자와 마주 섰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자꾸 만들어내는 나를, 내면의 비판자는 한심하게 여기고 있었다. 욕심부리고, 체력과 시간, 능력이 부족해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자의 말에 반론의 여지는 없었지만, 마음 속에 가득찬 꿈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워크북의 질문에 하나씩 답하면서 나는 이 비판이, 내 능력을 섣불리 재단했던 내 유년 시절과 지금의 가까운 이들 때문에 형성된 내 상처입은 반발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면의 비판자는, 계속 내가 무리하며 건강을 해치고 삶의 질을 낮추다가 그들의 예단이 진실이 되어, 내가 또다시 상처입고 주저앉을까 봐 걱정해서 나를 적당선에서 만류하고 싶어 했던 고마운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내 안의 적이라고 여긴 비판의 목소리를 깊이 있게 통찰하며, 나는 말은 험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친구 한 명을 얻은 기분이었다. 워크북을 작성하는 동안 나는 내게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고 느꼈다. 긍정과 자기 돌봄의 감각을 체험하고 나니 오늘 밤, 내일 밤, 그리고 내가 또 상처받는 어떤 밤에 써내려갈 나머지 돌봄의 워크북이 몹시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워크북을 작성하면서 나는 자존감 회복은 결심만으로 해결되는 영역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는 습관이 되어야 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직장이 싫고 힘든 모든 현대인에게, 일이 버거운 게 아니라 사람이 힘겨운 이들에게, 나처럼 오랜 번아웃에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지쳐가는 이들에게, 그리고 좀처럼 자신 안에 있는 냉혹한 비판자와 화해할 수 없는 이들에게 이 짧고 강한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읽기 위한 책에서 쓰기 위한 책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 책은 독자의 건강한 자존감 형성에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