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자본주의자 선언 - 99%의 풍요를 위한 자본주의 경제를 열다
요한 노르베리 지음, 김종현 옮김 / 유노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본주의자 선언과 한국경제>

 

요한 노르베리의 자본주의자 선언은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회과학서로, 통계와 여러 역사적 사례를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빈곤을 줄이고 물질적 번영을 확산한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유 시장 경제의 가장 큰 강점을 "자발적 교환과 협력"에서 찾는다. 물론, 이러한 경제 시스템이 불평등을 초래할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유 시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창의성과 혁신을 북돋우며, 결과적으로 더 큰 경제적 효용을 창출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 흔히 간과되는 사실들을 드러내고, 번영의 제도적 기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자유 시장의 작동 원리를 밝히는 데 있어, 저자는 세계 각국의 경제 성장 데이터와 빈곤 감소 추세를 제시하면서 개방, 무역, 시장 경쟁이 경제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논증한다. 이러한 주장의 설득력은 제시된 수치와 사례의 적절성에서 비롯된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경제적 풍요와 절대적 빈곤의 축소가 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힘입은 결과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주장을 한국 경제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질서 정연하게 대입해 볼 수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가 경험한 급격한 변화와 성장은 바로 노르베리가 제시한 '자유 시장의 동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자유 시장의 기본 원리를 수용하면서도 이를 자국의 상황에 맞게 독창적으로 적용해 온 바, 자본주의의 성공과 한계를 동시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역사적 발전과 자유 시장>

 

한국 경제는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 주도형 경제 모델을 채택하여 중공업과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였다. 당시의 정책은 정부 주도의 계획 경제에 가까웠으나, 시장 개방과 무역 확대라는 방향성만큼은 분명히 자유 시장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 산업화는 한국 경제의 기반을 다지는 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독점적 재벌들의 형성과 이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초래했다.

 

특히, 1970년대 통일벼의 개발과 같은 농업 혁신은 한국 경제 발전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통일벼는 국가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으며, 국민의 기본적 생계가 안정되자 경제 성장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분식을 강요하며 외화를 아껴야 할 정도로 극심한 빈곤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GATTWTO를 비롯한 국제 자유무역 체제에 편승하며 빠르게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게 된다.

 

1997년 외환 위기는 한국 경제가 또 한 번 구조적 전환을 맞는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IMF 체제하에서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시장 개방을 추진하며 경제 위기 극복에 나섰다. 이는 현재 한국이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반도체, 모바일 산업, 인터넷 기반 기술 등은 바로 이 시기에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렇게 한국 경제는 오일쇼크, 외환위기,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 속에서도 개방성과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적응하며 번영을 이루어냈다. 이는 저자가 책에서 주장한 "개방 시장이 혁신과 번영을 촉진한다"는 메시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여전히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현재 한국은 1인당 GDP 3만 달러 수준에 머물며,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경제적 성장은 둔화되고 국민들은 점차 더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자본주의 시장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개혁의 한계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노르베리가 제시한 자유 시장의 지속적 개혁과 발전이라는 방향성을 한국적 맥락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현대 한국 경제의 과제와 방향성>

 

현재 한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자유 시장 원리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선, 시장 개방을 더욱 확대하고, 무역의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이는 중국의 수출 규제나 혐한 정책 등이 시행될 때마다 한국 경제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새로운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신흥시장으로의 진출을 전략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는 노르베리가 강조했던 "시장 확장은 국가의 생존 전략"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둘째,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확대와 노동 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산업 구조는 특정 분야(반도체, 자동차, 2차 전지)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분야조차도 국제적 경쟁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AI), 바이오 기술, 디지털 콘텐츠와 같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아직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더해 창업 친화적 환경의 부족과 과도한 노동 규제 또한 산업의 다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창의적인 신산업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노동 교육 시스템을 통해 장기적인 기술 유망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로, 한국 특유의 만성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의 불가피한 결과인 분배 왜곡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만으로는 빈부 격차, 세대 간 불평등, 그리고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 부문이 협력하여, 경제 성장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기회의 재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미래, 균형의 추구>

 

한국 경제는 이미 자유 시장 원리의 성공적인 모델을 보여 주었다. 20세기 중후반 동안 개방과 무역, 혁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룬 눈부신 성장은 노르베리가 강조하는 자본주의적 가치의 힘을 입증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에게는 더 큰 도전과 과제가 주어져 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산업 구조를 다변화하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노르베리가 말하는 "창의적이고 포용적인 경제 체제"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본주의자 선언은 단지 과거 자본주의의 성취를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성공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통찰은 이 점이다. 자본주의는 단일한 해답이 아니라, 꾸준히 조율하고 개혁해야만 작동할 수 있는 "동적 체제"라는 사실 말이다.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개방의 확장과 공정한 경쟁,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사회적 합의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이다.

 


#자본주의자선언 #유노북스 #일론머스크 #요한노르베리 #책추천 #서평단 #자본주의 #경제경영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혜진 변호사님의 법정 밖의 이름들서평

 

 

1. 들어가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마주하다

 

서혜진 변호사님의 법정 밖의 이름들은 단순히 피해자의 고통을 나열하거나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책이 아니다. 이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면서 법의 한계를 고발하고,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인간의 고통을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경향이 커져버린 시대에, 이 책은 피해자들의 불완전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법적·사회적 치유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노력한다.

 

책은 피해자의 말하기와 그 말이 처한 법 제도적·사회적 장애물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저자는 피해자가 법정 안에서조차 자신의 목소리에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형식적인 절차에 머물러야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동시에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질문하며, 피해와 가해가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는다.

 

 

2. 피해자 말하기의 본질과 사회적 침묵

 

저자가 가장 강렬하게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우리는 피해자의 말을 믿는다 하면서도 과연 제대로 듣고 있는가? 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는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만큼 듣는 능력을 상실했다. 각자의 목소리가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다채롭게 확산되는 시대지만, 정제된 말조차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상처받은 자의 발언은 더더욱 무시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디지털 성범죄, 데이트 폭력, 스토킹 사건 등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발화하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의심받거나 공적 담론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다움이라는 틀에 갇힌 사회는 피해자의 말에서 감정의 격렬함을 문제 삼거나, 피해자의 신체적 증거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심리적 고통은 법적 가치 판단 영역에서 배제되며, 입증되지 않은 고통은 가해자 처벌이나 피해자 치유에서 무력해진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기술적 환경과 피해자 말하기의 충돌을 강조한다. 말은 많지만, 듣는 귀는 없는 시대에서 피해자의 발언은 단순한 증언이나 고발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개인적이고 연약한 요청이며, 우리의 공감과 행동을 요구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피해자의 말하기가 단순히 법적 절차를 위한 증거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연대의 출발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3. 보수적 법제도의 한계와 피해자의 이중적 고통

 

우리나라의 법 제도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은 증거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리적 증거 없이 고통을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은 법적 절차에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책은 디지털 성범죄인 딥페이크 사건,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 친밀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다루며 법과 제도의 문제를 지적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는 자신의 영상이 유포되는 과정과 그것이 사회적 차별로 연결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경험한다.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에서도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한 피해는 가족적 혹은 개인적 문제로 치부되며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저자는 특히 판사들이 자의적 작량감경을 통해 가해자에게 유리한 형량을 부여하고, 피해자에게는 거의 아무런 실질적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가해자가 구속 수감되지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피해자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법적 처벌을 기다린 피해자는 수치심과 불안에 휩싸인 채 자신의 삶과 안전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법의 미흡함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의학적 영역이나 심리 상담으로 밀어내고, 본질적으로 법이 보호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피해의 증폭과 피해자 고립을 낳으며, 법적 정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고착화한다.

 

 

 

4. 해외 입법례와 우리가 꿈꾸는 정의

 

서혜진 변호사는 법적 제도와 한계를 논하는 과정에서 해외 입법례에 주목한다. 특히 가해자가 자살했을 때 사건이 종료되지 않고 심리가 계속되는 입법례는 피해자 보호와 사회적 정의를 유지하기 위한 혁신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법제도는 대개 가해자의 죽음을 사건 종료의 이유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비난을 받으며, 분명히 정당한 권리 행사를 했음에도 이중적인 사회적 고통에 시달린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과 사회 정의 구현이 가해자의 생존 여부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례의 도입은 우리나라가 법적 책임과 정의의 원칙을 재정립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가해자가 죽음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법적 틀은 피해자의 심리적 치유를 돕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책임 윤리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살아서 반성과 책임을 다하는 가해자들을 늘리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5. 책임 윤리와 연대가 필요한 이유

 

책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책임 윤리'를 강조한다. 법정에서 감정의 격렬함이 배제되고, 피해자의 고통이 공적 논의의 장에서 왜곡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분노나 임시적인 정의 구현이 아니다. 대신 피해자 곁에 조용히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끝까지 듣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연대가 필요하다.

 

저자는 피해자를 구조해내는 드라마틱한 법정 싸움이 아니라, 무력하고 외로운 피해자 곁에 서서 책임 있는 윤리를 다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법적 정의를 확장하려면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폭력을 끝내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치유와 안전을 제공하는 구조적 대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6. 나가며: 함께 서는 책임의 시작

 

서혜진 변호사의 법정 밖의 이름들은 피해자의 말을 드러내고, 법과 제도에 이를 정당하게 반영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고통에 책임과 연대로 답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정의의 시작이다.

 

이 책은 단순한 고발에 머물지 않는다. 피해자와 사회의 관계, 법의 책임과 공동체 윤리를 고민하며, 법정 밖에서도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근본적인 태도를 일깨운다. 피해자와 함께 서고, 법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책임 윤리가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아 있음을 책은 말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주하는 남성성 - 폭력과 가해, 격분과 괴롭힘, 임계점을 넘은 해로운 남성성들의 등장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권김현영 외 지음 / 동녘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기획한 <폭주하는 남성성>은 최근 사회적 이슈를 바탕으로 남성성에 내재된 구조적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칼부림 사건, 강간치상 혹은 강간살해 사건, 사이버레커와 딥페이크 등의 범죄를 다루며, 문제가 여러 소수의 ‘괴물’들에게만 국한되었다는 프레임을 비판한다. 대신, 문제적 남성성을 만들어낸 정치, 교육, 언론, 온라인 시스템 등 사회 구조를 파헤치고, 그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촉구한다.


책에서 다뤄진 수많은 논리 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안티페미니즘과 혐오 정치가 어떻게 남성들로 하여금 성적 폭력을 정당화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안티페미니즘은 단순한 개인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우익 정치 노선은 이 정서를 정치적 무기로 삼아 정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대한민국 정치 속에서 분열과 혐오를 더욱 심화시켰다. 특히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남성혐오로 왜곡되고,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역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반박받는 2020년대의 흐름은 우려할 만하다. 이러한 흐름은 스토킹, 딥페이크, 레커 콘텐츠, 벗방 시장의 확대로 이어져 여성 폭력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심화시켰다.


그렇다면 남성의 폭력성은 어떻게 정치화되는가? 저자들은 지난 정권과 선거 과정에서 안티페미니즘이 기회주의적 방식으로 활용된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은 단순한 정책 제안이 아니라 안티페미니즘 정서를 자극해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정치 전략이었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정치화된 남성성은 현실 속 여성들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억압하며, 나아가 혐오를 부추기는 도구로 작용한다. 이는 남성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확장된다.


저자들은 현재의 젊은 남성들이 전통적 가부장적 능력을 획득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소위 ‘루저 그룹’이라 불리는 일부 남성들은 강하고 성공적인 남성성 구축에 실패한 자신들의 좌절을 여성 탓으로 돌리기 쉽다. 국가와 경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타인을 탓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은 일종의 희생양이 된다.


더 나아가 여혐의 구조를 분석할 때, 이 사회는 여성들을 성녀와 창녀로 나누어 타자화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전통적 모성에 충실한 여성은 성녀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거나 자유로운 성적 표현을 지지하는 여성은 창녀로 구분되며, 후자를 공격하는 폭력은 정당화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몸과 정신은 채널 조회 수나 수익을 유발하는 도구로 소비된다. 플랫폼 자본주의 속에서 여성 폭력은 소비 취향이 되고, 성적 착취는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자리 잡는다. 여성의 동의는 강요된 명분으로 사용되며, 남성의 욕망은 타인의 고통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 책은 성폭력을 단순히 몇몇 소수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저자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통해 남성들이 여성을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페미니즘을 역차별로 간주하게 되는 학습 과정 또한 설득력 있게 소개한다. 피해자 서사는 남성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자극하며, 그 결과 여혐 범죄는 단순한 범법 행위를 넘어 정치화되고, 감정적 폭력으로 자리잡는다.


<폭주하는 남성성>은 독자들에게 성폭력을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닌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이해할 것을 촉구한다. 극단적인 범죄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왜 이 사회에는 여혐 범죄가 만연한가?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하며, 잘못된 남성적 구조를 해체해야 할 책임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변화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성을 뛰어넘은 공감과 연대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정치적 장기말로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움직이는 10가지 방정식
데이비드 섬프터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이비드 셤프터의 <세상을 움직이는 열 가지 방정식>은 스웨덴의 응용 수학자인 저자가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중요한 결정들에 대해 다양한 방정식으로 설명을 시도한 대중 교양서이다. 




이 책은 인생의 비밀 코드를 해석하는 열 개의 열쇠란 부제 아래, 베팅 방정식, 판단 방정식, 신뢰 방정식, 기술 방정식, 인플루언서 방정식, 광고 방정식, 보상 방정식, 학습 방정식, 보편 방정식 등, 열 개의 챕터로 나누어 독자로 하여금 수학적 사고로 연실을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이와 같은 방정식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개인 수준에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정식의 변수들을 스포츠 배팅, 금융 트레이딩, SNS 추천시스템, 곤충의 행태 조사까지 전방위적인 예시를 통해 설명, 증명해내는 논리적인 구조가 몹시 흥미진진하였을 뿐더러, 방정식으로 삶의 판단 근거를 수식으로 정량화 가능하다는 점을 책을 통해서 보여주려는 시도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간 파트는 단연 보상 방정식이었다.  




 나는 올해로 12년차 사교육 수학 강사이다. 매년 많게는 수 백명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적게는 수십 명의 학생들을 보곤 한다. 그 가운데에는 재수생도, 검정고시생도, 외고 과고의 수재들이나 소위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시대가 바뀌며 공부와 입시의 성공이 인생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수학 공부의 중요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작금이지만, 내가 매년 공통적으로 절감하게 되는 깨달음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수학은 보상이 보이지 않으면 반복하기 유난히 어려운 과목이라는 점'과 아이들이 수포자의 길로 접어드는 까닭은 '수학이 어렵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점이다. 상위권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대형 학원에서 이례적으로 하위권 반을 맡아 재수 없이 몇 년 연속으로 소위 서울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에 성공적으로 진학시키는 이례적인 커리어로 사교육계에서는 수포자의 동앗줄이 되어온 내가 오랜 회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직업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저 깨달음 때문이기도 하다. 




강화 학습에서 말하는 보상 방정식을 줄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얻으면, 그 행동을 다시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저자는 이 간단 명료한 진리를 Qt+1=(1-α)Qt+αRt 이런 방정식으로 표시한다. 저자는 책에서 게임과 곤충의 생태를 중심으로 이 방정식에 접근했지만, 나는 이를 수험생의 학습과 관련하여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입시 수학을 다루는 내 입장에서 이 방정식의 변수는 다음처럼 치환할 수 있다. Qt는 현시점의 공부상태, Qt+1은 미래시점의 기대(즉 학생이 오늘 풀었던 문제 상태에서 내일 또 문제를 시도할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R은 학습자가 받을 보상으로, 점수 향상, 내지는 교사의 칭찬, 성공체험 등이 될 것이고, 미지수 알파는 보상의 질을 좌우하는 매개변수이다. 사람의 만족도에 관여하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은, 예측보다 더 나은 보상 사건이 발생할 때만 활성화되는 까다로운 특징이 있기 때문에, 저자는 방정식에서 만족의 질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감가상각되는 빌딩처럼 조절하는 매개변수 알파가 필요함을 설파한다. 




나는 직업 특성 상 자동으로 방정식을 치환하여 읽었지만, 물론 학생들은 본인의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이렇게 복잡하게 계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떤 문제를 접근하여 스스로 풀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고 학습 루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초 학력이 낮은 학생일수록 본인에 대한 기대치가 낮거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때의 보상을 크게 느끼는 경향이 많았고 이 방정식의 흐름이 내가 수많은 수포자를 더이상 수학이 무섭지 않은 과목으로 이끌게 된 가장 강력한 유인책이 되었음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든 케이스가 이렇게 간단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학습 결손이 발생한 수많은 학생들은 문제에 도전해도 풀지 못한다. 교재의 개념을 정리해도 전혀 문제에 적용할 수가 없다. 그들 스스로는 열심히 했노라 주장하나, 모의고사 성적은 변화가 없다. 방정식 상의 종속 변수인 보상기대치 Qt+1가 점점 하락한다. 이 상태가 위험한 까닭은 이와 같은 시점이 반복 시행될 때, 우리의 뇌는 해당 학습을 '비효율적인 선택'으로 간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수학 숙제, 수학 문제풀이를 기피하게 되고, 그 결과는 절망적이게도 또 한 명의 수포자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방비하기 위해 내가 설정한 강사로서의 나의 역할은 보상 설계자였다. 개념설명 과정에서도, 문제풀이 과정에서도 내가 가장 집중하여 노력하는 바는 '수학 학습으로부터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단계별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언제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전부리를 제공하여 수학학원에 오는 것 자체의 진입장벽을 낮춘다. 개념 이해 단계에서 본인의 말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무비판적인 암기가 아닌 이해를 유도하고, 즉각적인 칭찬 피드백으로 응한다. 가장 쉬운 문제부터 풀게 하고, 문제의 정답과 무관하게 풀이의 논리성을 강조하며, 아이의 긍정 강화를 위한 섬세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숙제의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숙제 완성도와 수업 참여도에 따라 칭찬 스티커를 발급하여 성취도에 따라 스터디 플래너를 포함한 각종 학습 도구를 선물로 제공하여 수학 학습과 보상 간의 시간 간극을 최대한 좁힌다. 그렇게 것 봐, 너도 할 수 있잖아! 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심어주는 것, 그렇게 공식 암기와 기본 예제 풀이부터 유형 학습을 거쳐 최종적인 모의고사와 기출 문제 확장까지, 촘촘히 보상 루트를 설계하여 끊임없이 작은 성공 체험을 경험하게 만든다. 




보상 강화 학습은 인공지능에 쓰이는 학습 모델이라고 듣기도 했지만, 이 단순한 방정식은 뇌가 특정 행동을 반복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뼈대이기도 하다. 입시 수학 강사로서 내 사명은, 아이들이 수학에 배신을 당한 채 수학을 외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수학이 힘든 이유는 보상이 지연되는 대표적인 과목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수학 학습은 결국은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수학 학습의 성공 경험은 문제 해결 결과를 뇌가 보상으로 인식하게 하여, 이를 학습에 대한 긍정적 감정으로 치환하고, 지속적인 학습 동기를 유도하는 매커니즘으로 작용한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접한 한 문제의 성공 체험이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서 문제풀이라는 선택을 지속하게 한다면, 어찌 감정이 공식보다 먼저 학습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지 보상 방정식, 한 파트만이라도 모든 교육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수학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교육 현장에서 본 방정식은, 내 방식에 대한 확신을 더해주었다.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수학화 시키는 이 교양서는, 다만 수치의 정량화 뿐만 아니라 수학 도구가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윤리적 책임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짚고 간다. 과도한 정보와 편향에 기댄 알고리즘으로 인하여 사고의 편협한 강화가 보편화된 분열의 시대에 편견 없는 판단을 위한 필수 사고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현대인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도의 가격 - 기후변화는 어떻게 경제를 바꾸는가
박지성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도의 가격: 기후변화는 어떻게 경제를 바꾸는가'

 

기후 위기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한 사회과학 도서인 '1도의 가격'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 변화의 문제를 비관적인 경고나 낙관적인 희망이 아닌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적응 전략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기후 변화의 피해는 단순히 수치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기후 위기가 우리 사회 전반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전 세계가 이에 대해 정책적, 제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기후 변화를 '느린 연소'에 빗대어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폭염이나 연기와 같은 덜 극단적인 방식으로 기후 위기가 드러난다고 해서 그 파괴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변화는 인적·물적 자본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한편, 저자는 기후 변화의 충격이 단지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특히 교육, 노동, 안전에 직결된 문제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의 여러 내용 중에서도 기후 위기와 교육 인프라 간의 상관관계를 다룬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다. 폭염과 학습 성과 저하의 관계를 다룬 저자의 설명은 정말 놀라웠다. 저자는 1도 상승이 아이들의 학습 능력과 인지 기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학업 성과, 집중도, 시험 성적 등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더운 날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문제 풀이 능력이나 학습 효율이 확연히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더위가 반복될수록 누적 학습 성과가 하락하고, 진학률과 미래 소득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은 뜻밖이었다.

 

저자는 기후 변화로 인해 교육 불평등이 심화하고, 결국 경제적 불평등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특히 폭염으로 인한 일상적인 피해의 충격이 노후화된 교육 인프라, 열악한 냉방 시스템, 돌봄 공백 같은 문제를 겪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로 다가간다는 저자의 분석은 매우 날카로웠다.

 

실제로 많은 교육 단체에서 지역별 냉방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예컨대 냉방 시스템이 부족한 학교를 지원하기 위한 캠페인, 폭염 대비 시간표 조정,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후원하기 위한 펀드 조성 같은 노력들은 기후 변화 대응의 일환이면서도 사회적 불평등 완화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으로 보인다. 저자는 책을 통해 1도 상승이 단순한 날씨 변화가 아니라, 기회 구조의 고착화를 불러오는 심각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메시지를 준다. 기후 변화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히는 곳은 아이들의 교실이라는 사실이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시험을 보는 우리가, 더위 속에서 기회의 평등조차 박탈당하는 소외 계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우리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학습 환경을 개선하고, 평등한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모두가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말한다. 시원한 교실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며, 공정한 경쟁을 위한 출발점이다.

 

기후 변화의 사회적 비용을 경제, 교육, 불평등 등 다양한 관점에서 날카롭게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1도의 가격'은 우리가 기후 변화 앞에서 생각해야 할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중요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