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남성성 - 폭력과 가해, 격분과 괴롭힘, 임계점을 넘은 해로운 남성성들의 등장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권김현영 외 지음 / 동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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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가 기획한 <폭주하는 남성성>은 최근 사회적 이슈를 바탕으로 남성성에 내재된 구조적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칼부림 사건, 강간치상 혹은 강간살해 사건, 사이버레커와 딥페이크 등의 범죄를 다루며, 문제가 여러 소수의 ‘괴물’들에게만 국한되었다는 프레임을 비판한다. 대신, 문제적 남성성을 만들어낸 정치, 교육, 언론, 온라인 시스템 등 사회 구조를 파헤치고, 그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촉구한다.


책에서 다뤄진 수많은 논리 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안티페미니즘과 혐오 정치가 어떻게 남성들로 하여금 성적 폭력을 정당화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안티페미니즘은 단순한 개인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우익 정치 노선은 이 정서를 정치적 무기로 삼아 정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대한민국 정치 속에서 분열과 혐오를 더욱 심화시켰다. 특히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남성혐오로 왜곡되고,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역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반박받는 2020년대의 흐름은 우려할 만하다. 이러한 흐름은 스토킹, 딥페이크, 레커 콘텐츠, 벗방 시장의 확대로 이어져 여성 폭력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심화시켰다.


그렇다면 남성의 폭력성은 어떻게 정치화되는가? 저자들은 지난 정권과 선거 과정에서 안티페미니즘이 기회주의적 방식으로 활용된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은 단순한 정책 제안이 아니라 안티페미니즘 정서를 자극해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정치 전략이었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정치화된 남성성은 현실 속 여성들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억압하며, 나아가 혐오를 부추기는 도구로 작용한다. 이는 남성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확장된다.


저자들은 현재의 젊은 남성들이 전통적 가부장적 능력을 획득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소위 ‘루저 그룹’이라 불리는 일부 남성들은 강하고 성공적인 남성성 구축에 실패한 자신들의 좌절을 여성 탓으로 돌리기 쉽다. 국가와 경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타인을 탓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은 일종의 희생양이 된다.


더 나아가 여혐의 구조를 분석할 때, 이 사회는 여성들을 성녀와 창녀로 나누어 타자화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전통적 모성에 충실한 여성은 성녀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거나 자유로운 성적 표현을 지지하는 여성은 창녀로 구분되며, 후자를 공격하는 폭력은 정당화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몸과 정신은 채널 조회 수나 수익을 유발하는 도구로 소비된다. 플랫폼 자본주의 속에서 여성 폭력은 소비 취향이 되고, 성적 착취는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자리 잡는다. 여성의 동의는 강요된 명분으로 사용되며, 남성의 욕망은 타인의 고통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 책은 성폭력을 단순히 몇몇 소수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저자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통해 남성들이 여성을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페미니즘을 역차별로 간주하게 되는 학습 과정 또한 설득력 있게 소개한다. 피해자 서사는 남성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자극하며, 그 결과 여혐 범죄는 단순한 범법 행위를 넘어 정치화되고, 감정적 폭력으로 자리잡는다.


<폭주하는 남성성>은 독자들에게 성폭력을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닌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이해할 것을 촉구한다. 극단적인 범죄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왜 이 사회에는 여혐 범죄가 만연한가?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하며, 잘못된 남성적 구조를 해체해야 할 책임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변화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성을 뛰어넘은 공감과 연대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정치적 장기말로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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