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잼있었어요!!! 이야기 내용도 잼있었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을 매우 영리하게 운용하여 그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네요. 수려한 문체, 영화 내지 문학 작품을 모티브로 나뉘어진 챕터들, 현재와 과거의 자연스러운 교차 그리고 시점 전환 같은 것들 말이죠. 특히 시점 전환이 아주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거의 중반부까지 여주와 남주가 본격적인 관계에 돌입하지 않고 잠깐씩 스쳐지나가기만 하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남주 중심의 에피소드, 과거 사연과 여주 중심의 에피소드, 과거 사연이 교차 편집되고 있구요. 그 에피소드들에서는 남주와 여주가 반드시 만나야만 할 필연성이 차근차근 빌드업되고 있죠. 그래서 이야기의 거의 중반부까지 대체 두 주인공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될지 궁금해서 열심히 달리게 되는 거죠. 남주의 과거에서 두드러지는 사연은 남주 아버지에 대한 것인데요. 남주가 불안정한 유년시절을 보냈음에도 어떻게 어른의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캐릭터이죠.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제일 애착이 가는 인물이었답니다. 그리고 여주는…ㅠㅜㅠㅜ 여주가 얼마나 끔찍한 20대 초반을 지나왔는지, 여주의 마음을 주변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했는지 보여주네요. 이 시기를 이겨냄으로써 한 인간으로, 여자로 성장하여 남주를 만나게 된 것이지만 그 과정은 악몽같은 것이었네요.그래도 여주의 대학시절 악몽의 큰 한 축을 담당했던 후회섭남(?)은 여주에게 남자 보는 눈을 뜨게 한 반면교사 같은 것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이 섭남은요 과거의 업보는 모른 척 한 채 지금은 지 내킬 때 여주 집에 쳐들어와서 밥 해달라고 조르는 약간 알딸딸한 캐릭입니다. 그리고 여주가 해주는 밥에 맛있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돈을 주네요??? 우리의 남주도 당연히 여주가 해주는 음식에 반하지만 맛있다 고맙다는 표현을 아주 다양하게 한답니다. 친해지지 않았을 때는 물론 물질로 표현했지만 레시피를 물어보는 단계를 지나 여주에게 직접 음식을 해주기까지 합니다. 짐승이 아닌 인간의 마음 따스해지는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남주. 우리의 여주가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ㅠㅜㅜㅜㅜ 이렇게 이 이야기는 두 사람 감정의 개연성을 아기자기하고 꼼꼼하게 빌드업 해나갑니다. 그래서 뜬금없는 비약이나 폭발 없이 덤덤하게 전개되지만 끝까지 몰입력을 잃지 않는 러브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었네요.
로판에서 여주들이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뒤 회귀하면 대체로 전생의 연인에게 복수하려고 하잖아요. 아니면 아예 전생의 악연을 피하려고 하거나요. 하지만 우리의 여주는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아니 질주합니다. 전생의 그 새X가 이번 생에서는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게 처음부터 차근차근 옭아매서 완벽하게 낚아채려고 하죠. 이 무시무시한 여주의 집념이야말로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인데요. 3권에 나오는 이 문장들로 똬악! 축약될 수 있을 것 같네요. < "와봐."눈빛이 형형하게 어둠 속의 짐승처럼 빛났다."다 씹어 먹어버릴 테니까."내 남자는 아무도 못 데려가. > 크윽… 넘나 근사하게 돌아버린 여주인 겁니다ㅠㅜㅠㅜ 죽음에서 돌아온 여주는 이제 제 남자를 절대, 절대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그게 비록 신이라도요. 여주의 감정과 행동이 남주에게로만 강하게 치우치다 보면 뭔가 억지스러운 전개가 될 수도 있을텐데요. 하지만 여주의 불행한 성장 배경은 왜 여주가 신도 이겨 먹고 죽음까지도 불사하며 남주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 개연성 넘치게 보여주고 있네요. 또한 회귀 후 남주를 확보(!)하기 위해 여주가 시도한 모든 일들은 회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 관계를 결과하는데요. 회귀 전 여주 주변인들은 남주 외에는 모두 여주의 존재를 짓밟다시피 했습니다. 여주에게 그들은 마치 빌런과 같았지요. 그러나 회귀 후 여주가 남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여주의 주변도 따라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주변인들이 여주의 진가를 발견하고 여주의 편이 된 것이죠. 이 점에서 작가님이 우리에게 삶의 진실을 말씀해주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요? 인생엔 선인도 빌런도 딱히 없다, 내 편이냐 내 편이 아니냐의 문제다,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내 편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그리고 우리의 남주. 여주가 독특하게 돌아버려 너무 튀는 바람에 묻혀버린 점이 없지는 않네요. 하지만 이 사람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주는 회귀 전과 달리 2회차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남주의 상황을 통제하여 제 손아귀에 넣고자 다양한 작업을 합니다. 그럼으로써 남주의 생활 환경과 감정 그리고 사고 방식까지 회귀 전과 완전 달라져버렸죠.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한 남주는 회귀 전 여주가 사랑했던 남주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정체성은 그가 가진 기억으로 구축되는 것인데 여주 2회차의 남주는 1회차의 자신과 여주를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는데요? 여주가 사랑했던 회귀전의 남주와 회귀 후 여주가 만들어낸(?!) 남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으며 그때마다 여주는 그 위화감에 당황하게 되지요. 그리고 남주는 둔하지 않습니다. 여주가 느끼는 위화감을 날카롭게 포착해내지요. 그리고 깨닫습니다. 여주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남주가 진짜 대단한 이유는 이 사실에 아프게 고민할지언정 여주에게 분노하거나 환멸의 감정을 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여주에게 완전 어울리는 대단한 남주 그 자체인 거죠. 그런데 회귀 전에는 대체 왜 그랬답니까??? 작가님의 수려한 문체와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묘사 덕분에 이 매력 넘치는 이야기를 몇 배는 더 잼나게 읽었… 아니 달렸더랬습니다ㅠㅜㅠㅜ 로판의 클리셰-회귀와 인간 존재의 정체성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도 있었구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작가님의 냉정하지만 따스한 시선에서 배울 점이 많았네요. 개인적으로 흔히 접해 볼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