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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 상 ㅣ 대한민국 스토리DNA 7
김성종 지음 / 새움 / 2015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후의
증인>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지향점이 다르다. 물론 이 둘의 주제는 모두 '사회적 비극'이다. 그러나 전반부와 후반부는 같은
주제를 도착점으로 놓느냐 출발점으로 놓느냐하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다. 전반부는 (이 소설이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추리적 기법을 통해 한국전쟁의 비극을 형상화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전반부만 볼 때 김성종은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일상의 사건들에도 깊은 사회적 비극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 독자가 알게 되는 것은 이 소설의 목적이 비극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니, 좀 더
확실히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김성종은 오병호, 황바우, 손지혜, 엄창규, 한동주,
양달수, 강만호 등 각 인물들이 한국전쟁의 비극을 배경으로 어떤 정서를 가지고, 어떤 윤리적 태도를 취하며, 어떻게 책임을
지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그러나 이 탐구는 결론을 도출하고자 하는 탐구가 아니다. 이 탐구는 정해놓은 결론을 얻기 위해 간절히 뻗는 손짓에 가깝다. 이 소설의 최종적 테마가 있다면 그것은 '인류애' 혹은 '휴머니즘'일 것이다. 과연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이 질문은 황바우부터 오병호, 심지어 정만섭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물을 관통한다. 이 인간
탐구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손지혜를 둘러싼 공비와 황바우의 태도 차이다. 이 둘은 인간의 가장 본성적인 부분을
각각(전자는 성욕, 후자는 인류애) 대표하고 있고, 김성종은 이 둘 가운데 무엇이 맞는지 묻는다.
그리고
김성종은 황바우를 믿고, 인류애를 믿는다. 그는 오직 이것만이 비극을 근본적으로 '증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대한
비극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방법, 인류애 혹은 양심. 오병호와 엄창규가 '이 사회가 살아있는지'를 그토록 부르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짊어진 황바우는 끝내, 그리스도의 길을 택한다. 그는 이 모든 비극을 안고 하늘로 간다.
여기서 그를 추동한 것은 어떤 사명감이 아니다. 단지 가족을 걱정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인류애일 뿐이였다. 그를 뒤따른 손지혜와
오병호 또한 마찬가지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최후의 증인은 그렇게 쓰러진다. 그러나 이들의 증언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를 없애벌미으로써, 이 사회의 죄악과 비극을 영원히 박제한다. 그들은 마침내 '최후의 증인'이 된다. 그들은 무엇을
증언하는가. 그들은 단순히 사건만을 증언하지 않는다. 인류애가 말살되고 양달수와 한동주와 같은 이들이 설치는, 이 세상 자체를
증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