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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단의 비밀 - 방정환의 탐정소설 ㅣ 사계절 아동문고 34
방정환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희한하게도 책에 실린 두 소설(<동생을 찾으러>와 <칠칠단의 비밀>) 모두 기억이 초중반부에 멈춰 있었다. <동생을 찾으러>에 나오는 기차역 장면, <칠칠단의 비밀>에서 중국 봉천으로 건너간 뒤의 이야기 등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튼, 다시 읽으면서 이 소설들이 민족주의에 매우 단단히 기반되어 있음에 먼저 놀랐다. <동생을 찾으러>와 <칠칠단의 비밀> 모두에서 동생(순희, 순자)을 찾는 주인공(창호, 상호)들은 모두 나라를 빼앗긴 한민족의 은유이다. 이 두 작품 모두에서 남매 사이는 매우 단단히 결속되어 있고, 주인공들은 공권력의 힘을 거의 빌리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의 힘을 빌려 일을 해결한다. 특히 주인공들이 혼자서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 중요한데, 방정환은 소설 내에서 끊임없이 주인공의 한계 상황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으로 새로운 동료들을 등장시킨다. <칠칠단의 비밀>에서는 보다 더 노골적인데, <동생을 찾으러>와 달리 태생부터 잃어버린 곡마단 남매의 등장이나 후반부 한인 협회의 등장 등은 명백히 정치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한국 미스터리, 혹은 첩보 소설의 시초와 같은 장르적 평가도 이 책엔 충분히 가능하다. <동생을 찾으러>에서는 아직 그 면모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2년 뒤 발표된 <칠칠단의 비밀>은 상당히 감탄스럽다. 일개(?) 곡마단을 대륙의 아편 밀수업체로 확장시키는 설정부터, 이 설정과 남매의 비밀을 엮어 깔아놓은 복선, 칠칠단의 암호나 소굴의 비밀 등까지 첩보물의 클리셰를 동양적으로 훌륭히 변용한 사례들이 많다. 특히 상호가 펼치는 각종 계교들은, 흡사 셜록 홈즈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것 같은 느낌까지 있다.
그러나 두 소설 모두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은 결말부이다. <칠칠단의 비밀>의 경우 <동생을 찾으러>보다는 서사 안배가 잘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 역시 결말부가 급히 마무리되었으며 허술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동생을 찾으러>는 전체적인 서사의 균형조차 조금 기우뚱하다. 장르물의 초창기 작품들에게 이 정도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그럼에도 이 책을 읽다보면 방정환의 타고난 재능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장점들도 분명히 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읽히게 하는 방정환의 필력이다. 그러니 나는 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장르 소설이 꽤나 기분좋게 출발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