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데생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지음, 박보나 옮김 / 에디시옹 장물랭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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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에서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는 어둠과 빛의 마법을 보여준다. 이 만화 속에서 색은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데, 즉 대부분의 장면이 오직 흑백으로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흑백, 특히 그 중에서도 검은색은 너무나 다채롭다. 이 만화에서 검은색은 한 번도 밝기가 변하지 않지만,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는 그 어둠을 다르게 바꾸어내는 마법을 부린다. 작가 소개에 써 있는 '걸쭉한 어둠과 날카로운 빛'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노엘의 집>부터 <서류 가방>까지 이어지는 단편들은 이 마법을 통해서 삶의 쓸쓸한 감정들을 풀어낸 걸작들이다. <노엘의 집>에서 어둠은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동시에 지배하는, 끈적끈적한 존재이며, <생 엘루아 골목>에서 어둠은 비밀을 간직하면서 울음을 삼키는 고독한 존재이다. <하미드 아저씨>에서 극단적 당혹감과 그림자를 드러낸 어둠은 <낭트의 항구>에서는 쓸쓸함을 뒷받침해주는 환경이 되며, <서류 가방>에서는 모더니티를 드러내며 유머를 부린다. 어둠 뿐만이 아니다. <낭트의 항구>에서 어둠과 극적인 조화를 이뤄내며 정경을 연출했던 빛은 <묘지>에서 어둠을 강렬하게 덮으며 독자를 압박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작품집 최고의 걸작이라 할 만한 <최후>는 어둠을 찢어대고 쪼아대는 빛의 날카로움이 극단적인 허무의 감정과 연결된다.

 이 작품들을 앞뒤에서 감싸는 <르 데생>과 <대성당 오르기>는  이 작품집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독자를 아찔한 감동으로 이끈다. 이 둘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원저에서 따로 출간되었던 <르 데생>이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다른 만화들과는 다른 매우 온화한 스타일이라면, <대성당 오르기>는 그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메타포로 가득찬 기이한 세계이다. <르 데생>에서 에밀이 탐구했던 그림 속 작지만 거대한 세계는 <대성당 오르기>에서 정말로 거대한 세계가 되며, 예술은 세계로 확장된다. 그에 따라 반사의 모티브는 지도 그리기, 즉 삶의 궤적으로 변화하고 예술의 목적은 삶의 목적으로 변화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선 <르 데생>은 결국 예술의 의미에 대한 작품이다. 끝없이 줌아웃을 해도 한계에 다다르지 않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예술, 그것은 결국 수많은 반사이고 결정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반사이다. 비로소 그것을 깨달을 때, 예술에 색은 칠해지고 예술은 완성된다. 그렇게 예술가는 죽으면서 자신의 파편을 예술로써 남긴다. 반면 <대성당 오르기>는 삶의 의미에 대한 작품이다. 이 만화는 온갖 메타포와 처음보는 그림으로 가득한 세계인데, 그러나 그러한 메타포들은 결국 마지막에 들어 자기 자신의 반영으로써, 삶의 궤적의 반영으로써 정의된다. 생에 관한 탐구는 결국 특정한 결실보다는 걸어온 궤적만을 남길 지 모른다.

 <르 데생>으로 시작하여 <대성당 오르기>로 끝나는 이 흐름은 결국 독자를 예술에 참여하게 만든 후 삶으로 이끌면서, 독자에게 거대한 감동을 준다. 어둠과 빛이 만든 마법같은 조화로 삶과 예술을 아름답게 그리면서 성찰한 이 작품은, 오직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만이 만들 수 있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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