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무너져내리는 시간에 대한 보고서다. 주인공 김병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 기억들이 점점 왜곡되고 모순되는 것을 발견한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킬러가 기억의 미로 속에 빠졌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김병수의 시간은 원래부터 무너져내렸는데, 김병수는 그것을 '살인'이라는 행위로 메꾸었던 것은 아닐까. 살인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살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를 죽였을 떄,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한 감각으로 느낀다. 요컨대 살인은 삶(시간)의 고무줄을 더욱 팽팽하게 만든다. 김병수는 그렇게 끝없는 살인을 통해서 균열이 가득한 본인의 삶에 접착제를 바 것이 아닐까.

 이것은 그의 첫 번째 살인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는 아버지를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으면 본인이 맞아 죽을 테니까. 시작부터 그의 살인은 살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그는 은희라는 존재를 통해서 살인을 멈춘다. 시간을 지속시킬 하나의 이유를 찾은 것이다. 그렇게 그는 25년이란 시간을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끝에 반전이 하나 있었다. 은희라는 인물, 그러니까 의 입양한 딸의 존재 또한 불확실하다는 것! 그는 살인 없이도 삶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25년 전부터 그의 시간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면서부터 급격하게 폭발하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김병수의 마음과 책의 호흡도 질주한다. 이런 질주의 한가운데에는 공포라는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다. 상술했듯이 김병수는 삶을 위해 살인자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죽음과 공허에 대한 두려움은 그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감정 중 하나일 것이다. 그 감정이 우리를 재빠른 속도로 소설의 끝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공허가 일으킨 공포는 공허에 다다랐을 때 허공에 흩어져 버린다. 단지 무(無)일 뿐이다. 이 무(無)는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요람으로, 누군가에게는 감옥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 소설은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단지 묵묵히 그려낼 뿐이다.

 사실 이 소설은 모든 것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보고서다.

 시간과 죽음, 그리고 두려움을 이 소설은 보고한다. 이 소설은 그에 대해 옹호도, 비방도 없지만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소설은 너무 빨리 읽히는 탓에, 그 생각의 통로를 막는다. 분석을 해 보면, 이 책이 질문을 던진 다는 것을 알겠지만, 그 소설을 읽고서는 전혀 사유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점만 빼면 이 소설은 완벽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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