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지옥 1~2 - 전2권 (완결)
연상호.최규석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일식이라는 초자연적 현상에 제사장은 신의 분노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이에 현혹된 대중들은 종교를 형성한다. 이 종교는 도덕을 더욱 강조하고 창조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도덕을 짓밟기도 한다.


2.

<지옥>은 일식과 제사장의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와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그려낸다. 새진리회의 교리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제사장의 이야기가 현재에도 일어날 법한 사건이라고 느끼게 된다. 끊임없는 저항 끝에 굴복하게 되는 진경훈의 심리를 우리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3.

진경훈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가슴에 품은 깊은 상처 때문이다. 그 상처 때문에 그는 더욱 강하게 저항하지만 동시에 그 상처로 인해 나약해졌기 때문에 그는 손쉽게 굴복한다. 이 작품에서 진경훈은 현대인들에 대한 은유이다. 겉으로는 강하지만 속에 상처를 품고 있는 외강내유형 인간. 그런 현대인들을 종교는 쉽게 파고든다. 또한 이 작품 속의 종교는 단순히 종교를 넘어서 사회의 모든 이데올로기를 뜻한다. 살아남기 힘든 사회에서 나약해진 인간들을 지배하고 혹세무민하는 이데올로기들. 이는 익숙한 현대 사회의 모습이다.


4.

1부가 종교의 기원부터 종교가 퍼져나가기까지, 즉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다룬다면 2부는 현재부터 미래까지를 다룬다. 1부에서 진경훈이 맡았던 현대인의 역할은 2부에서 배영재가 맡게 된다. 우리는 이제 배영재 가족의 심리를 따라가게 된다.


5.

1부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시작했듯이, 2부도 그 종교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시작한다. 태어난지 이틀 된 튼튼이는 고지를 받고, 소도는 새진회를 파멸시킬 열쇠를 쥐게 된다. 그러나 송소현이 튼튼이를 들고 간 곳은 소도가 아닌 새진리회였다. 여전히 종교에 의지하려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 그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6.

새진리회는 튼튼이와 이동욱의 사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종교를 유지하려 한다. 정녕 저 사례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은 타개되지 않는 것인가?


7.

그것을 깨뜨린 것은 소도의 활동이 아닌 배영재의 결심이었다. 배영재가 소도에게 생중계를 동의하지 않았다면 새진리회는 끝없이 위세를 떨쳤을 것이다. 최규석과 연상호는 이 장면을 통해 시민들에게 의지와 자율성을 가지라고 역설한다.


8.

마침내 찾아온 시연의 순간. 저승사자가 다가온다. 그러나 송소현은 가만히 튼튼이를 놓아두지 않는다. 배영재도 마찬가지다. 튼튼이를 지키려 한다. 그러나 신의 힘은 강력하다. 시연이 끝났다......... 그러나 튼튼이는 죽지 않았다! 힘차게 울고 있다. 마침내 신에 저항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1부에서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던 신에 저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송소현과 배영재는 원래 튼튼이의 고지를 본 후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연의 순간, 그들은 튼튼이에 대한 애정을 통해 초인으로 거듭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지옥>은 우리가 신에게 저항할 수 있으며, 저항해야 하고, 더 이상의 종교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9.

이 장면 이후 유지 사제의 체포를 통해 우리는 새진리회가 파멸됨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괴물들을, 아니 재난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했으며 심지어 그것들의 정체도 모른다. 그러나 <지옥>은 거기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에 아직 깔려 있는 검문과 택시를 타고 도망가는 튼튼이를 통해 그것을 완전히 물리치지는 못했지만 그것과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된다고 전달한다. 마지막 진경훈(택시기사)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자율성이 있으며, 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해야 한다.


10.

지금껏 최규석의 만화는 뒤틀린 풍자와 익살스러움을 통해 웃픈 감정을전달했다거나(습지생태보고서) 리얼리즘적이고 사회적이며 투쟁적이었다(송곳).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파멸, 인간의 자율성과 반신론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하는 이 작품은, 단언컨대 최규석의 만화 중 가장 철학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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