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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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돌아가지 마.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얘기한다. 상황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기억하는 것과 다를 거라고.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물론 맨 마지막 충고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는 자꾸 되살아나는 경향이 있다. 꼭 맛없는 카레처럼.”

 

어느 시골 마을 안힐에서 살인 사건과 자살 사건이 벌어진다. 한 여성이 자기 아들의 얼굴을 뭉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방에는 기묘한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이 사건은 끝내 해결되지 못하고 미제로 남고 만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사건이 벌어진 집에 조 손이 이사를 온다.

그는 안힐 출신으로, 끔찍한 경험을 한 후 안힐을 떠났다가 기묘한 이메일을 받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조가 아직 학생이었던 1992, 그의 여동생 애니가 실종되었다. 그리고 48시간 후에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돌아온 애니를 마주하는 순간, 조는 무언가가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안힐, 여기에서 과거와 현재가 휘몰아치며 충돌하게 된다.

 

사람들이 말하길 시간은 치유의 힘이 엄청나다고 한다. 이 말은 틀렸다. 시간은 지우는 힘이 엄청날 따름이다. 무심하게 흐르고 또 흘러서 우리의 기억을 갉아먹고,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고 뾰족한 조각들만 남을 때까지 불행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조금씩 깎아낸다.

무너진 가슴은 다시 맞출 수 없다. 시간은 그 조각들을 거두어 곱게 갈 뿐이다.”

 

이 책은 초크맨의 저자 C.J. 튜더의 두 번째 책으로, 튜더가 제2의 스티븐 킹이라는 찬사를 받게 한 책이다.

다만, 튜더는 이 책이 호러소설이 아닌 스릴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내 생각엔 호러소설에 더 가까운 것 같지만.

2의 스티븐 킹이라는 별명답게, 이 책은 음산하고 불쾌한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정말 뛰어나다. 마치 공포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처럼 대놓고 초현실적인 존재를 등장시키며 독자를 공포에 빠트리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독자를 불안하게 한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튀어나오기 직전 같다. 과거든 현재든 처음부터 끝까지 음산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정말 잘 조성되어 있다. 당장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숨을 졸였던가. 불가사의한 사건이 발생하며 전개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함께 과거의 사건을 보여주며 거기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가며 서술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현재를 서술할 때는 현재형을, 과거를 서술할 때는 과거형을 사용한다.

 

그게 인생의 문제다. 절대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이게 중요한 순간일지 모른다고 손톱만 한 단서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 당신은 여유를 두고 그 순간을 흡수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다음이라야 붙잡을 만한 순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다만 서사적인 면에서는 아쉬움이 조금 크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사건의 전말과 클라이맥스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이 커지던 만큼 실망도 조금 컸다.

현재의 사건을 끝마치는 방아쇠가 되는 인물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은 인물이었던 데다가 뜬금없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고, 내가 가장 궁금해하던 부분도 명쾌히 밝혀지지 않았다. 정말 재미있는 책이지만,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결말부에 신경을 좀 더 많이 써 줬다면 좋았을 것을.

 

이 세상의 어떤 것들-아름답고 완벽한 것들-은 다시 만들면 반드시 망가지게 되어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호러소설이었다고 생각하고, 내 저녁 시간을 온통 앗아간 작품이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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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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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문득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

토실토실 말랑말랑,

그 어떤 거친 바닥에서도 뼈와 장기를 푹신푹신하게 받쳐주는 엉덩이.

심한 말못된 말독한 말을 들은 하루

몽실몽실 내 마음을 감싸그 어떤 명사와 동사도

경동맥을 찌르지 못하게 지켜주는

그런 마음의 엉덩이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엉뚱한 제목에 사랑스러운 표지의 어피치 에세이이다.

저자는 서귤책날개의 저자소개에 따르면 고양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회사에 다니며귤을 좋아해서 손이 노란 작가라고 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프롤로그 내가 너의 엉덩이가 되어줘도 되겠니?

part 1 내일은 더 대충 살자

part 2 너무 많이 사랑하는 습관

part 3 치킨코인 발명가 혹은 다이어터

part 4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

part 5 외계인의 직장 표류기

part 6 터키식 아이스크림 같은 인생

에필로그 이 간지러움을 당신에게

 

제목과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 힐링 에세이로앞서 출간되었던 라이언 에세이와 한 시리즈로 보인다.

다른 에세이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비주얼적 측면이 아주 크다는 것어피치 일러스트가 아주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책 반 그림 반이다.

분홍분홍한 어피치가 마구마구 아낌없이 팍팍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어피치 덕후들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

 

말투는 이 글의 화자가 어피치인지서귤 작가인지 모를 정도로 귀엽고 정감 있는 말투이다.

재잘거리는 듯한 말투로 우리가 살면서 들을 일이 별로 없을 말을 들려준다.

'내일은 더 대충 살자', '내 귀여움을 뽐내 는 일을 게을리한 건 아닌지등 다소 당황스러운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심지어 방귀(!) 이야기도 거리낌없이 등장한다아무런 내숭 없이 일상 이야기를 그대로 털어놓으며 힐링을 전달한다.

 

행복한 이야기가 좋아상처로 가득한 다른 사람의 삶 같은 거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이렇게 오래도록 닫혀 있을 것이고슬프지만 아마 쉽게 변하지 않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은하에 머물러주는 너에게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

고마워정말 고마워.

우리의 은하에 공기가 없어서 이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아주 큰 소리로.”

 

'힐링'을 주제로 하고 있는 데다 '발랄함'이 특징이기 때문에 내용은 무척 가벼운 편이다.

평소 어피치를 좋아하거나 가벼운 책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추천할 만 하지만무게감 있는 산문집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비추천하고 싶다.

 

초반에는 조금 당황스럽다이미 말했듯 방귀 얘기가슴 애기 가리지 않고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적나라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고줄거리가 있는 글이 아니라 내용과 내용 사이에 맥락이 없다.

그래도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가 세상을 많이 사랑스럽게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괴로울 게 뻔한데도 좋아하는 것은 습관인가 봐.

그렇게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도 당시이 좋아.

정말 어쩔 수 없어좋아서.”

 

아직도 비틀거리고헤매고상처가 많은 우리지만그래도 사랑하고 기대하길 포기하지 말라고 어피치가 말하는 것 같았다.

 

살아남는 건 우리의 찬란한 재능마르지 말자바스러지지 말자.

이 긴 밤이 긴 인생너와 나의 조촐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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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민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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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펼쳐진 세계를 즐거운 눈으로 보려고 할 때 우리는 어린이의 눈이 된다.

물론 우리는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린이의 눈을 질끈 감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인상적인 표지의 책이다.(어쩐지 하찮게 귀여운데...)

띠지의 캐치프레이즈도 눈에 확 띄는 데다 귀엽다.

(너무 안심되는 문구여서 저 말대로 했더니분명 낮에 잤는데 밤에 일어났다... 안돼 이러다가 이 책 평생 못 읽을지도 모른다...!)

 

아직 한국 작가의 에세이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외국 작가의 에세이부터 읽어보게 되었다역시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는 소설은 정말 좋아하지만 에세이는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이 책이 내 첫 에세이인 셈인데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참 묘하다누군가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듯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이 책은 내게도 첫 에세이지만 작가에게도 첫 에세이이다.

그동안 작가가 다양한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놓은 책인데그 주제가 영화소설등산일상 등 다양하다잡지에 실린 글만 모았는데도 책 한 권 분량이라니작가가 얼마나 글을 열심히 쓰는 사람인지 알겠다.

 

우리 집 근처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어떤 계기 하나로 문득 내가 다른 세상에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감각부지불식간의 행방불명이 내게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감각만이 나의 '판타지'인 것이다.”

 

작가는 책의 제작 의도를 '자기 전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라고 밝혔다줄거리가 너무 흥미진진한 책을 읽으면 눈을 떼지 못한 채 밤을 새고그렇다고 지루한 책을 읽고 싶지는 않은딱 자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을 쓰고 싶었다고.

이 책은 어느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작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책이기에 각 챕터의 주제만 비슷할 뿐 내용이 이어지지도 않는다딱 자기 전에 읽고 졸릴 때 덮고 잘 만한 책이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소설만 읽어버릇 해서 그럴까뭔가 이어질 것 같은데 끊기고한두 장 만에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이어지니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나는 금방 작가의 일상과 생각에 녹아들었다작가가 묘사하는 세상을 보고작가가 상상하는 풍경을 따라 생각했다마치 저자와 오솔길을 함께 걸으며 길고 잔잔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편안한 책이기도 했다작가는 세상이나 사회에 대해 어떠한 예찬도 늘어놓지 않았다그래도 작가가 세상과 사람을 얼마나 귀엽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느껴진다.

정말 작가와 언제 한번 만나서 차 한 잔 하고 싶다.

 

어쨌든 내가 잃어버린 추억이 나를 소설가로 만들어준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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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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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시 데려가너무 늦기 전에.”

 

사랑하는 여자친구 레일라와 여행을 다녀오던 핀은 도중에 잠시 화장실에 들른다.

그런데 차로 다시 돌아와 보니 레일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근처를 샅샅이 뒤지고 경찰에 신고를 한 뒤에도 레일라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레일라가 사라진 지 12년이 흐르고그 사이 핀은 레일라의 언니인 엘런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레일라가 사라진 지 12년이 지난 현재핀의 집 담장에서 레일라가 가지고 있던 마트료시카 인형이 나타난다.

마트료시카 인형은 그 뒤에도 핀의 눈길이 닿는 곳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며 레일라의 흔적을 드러내고레일라의 귀환이 점점 더 확실시되어 가던 그때핀에게 메일이 한 통 도착한다.

 

그토록 핀을 사랑하면서도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다는 게 아직도 놀랍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핀이 망가지길 바란다.

그래야 그를 내가 원하는 대로 다시 조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링 미 백은 비하인드 도어의 작가 B.A. 패리스의 신작이다전작과 마찬가지로 눈을 떼기 어려운 스릴러이다.

전작 비하인드 도어가 독자를 쉴틈없이 몰아붙이는 작품이었다면 브링 미 백은 천천히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심리적 갈등과 고뇌에 대한 묘사의 비중을 더욱 높였고주인공의 움직임이 더 많다는 점도 차이점이다전작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에게 행동을 통제받았는데이번에는 그 반대다.

주인공의 독백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는 점은 전작과 동일하지만이번에는 또 한 명의 화자가 존재한다이 또 다른 화자의 독백도 제법 흥미로웠지만이 독백이 없었으면 긴장감과 불안을 훨씬 높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전작처럼 책에 사로잡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휩쓸린다는 느낌은 없지만 이야기 전개에 있어 눈을 뗄 수 없고핀의 동향을 따라가며 그에게 깊이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불안해하고신경은 갈수록 날카로워지며 주변 사람들 모두를 의심하게 되며 절벽으로 몰리는 핀의 심리가 정말 잘 서술되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핀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이 이야기는 어떤 결과로 치달을지 계속해서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지금쯤이면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신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을 모조리 의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딱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다.“

 

결말은 전작만큼이나 깔끔하다여운조차도 별로 남지 않을 만큼 깔끔했는데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았다오히려 스릴러인 만큼 흐지부지 끝내면 그동안의 재미가 반감된다.

여운은 별로 남지 않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길 만한 부분은 남았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그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내가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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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린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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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주 조용한 리더입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고함을 치는 사람도 아니지요.

...그렇게 차분하고 침착하지만 질문 공세로 상대방을 조각낼 수는 있습니다.

그의 부하직원이라면 자기 일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여지없이 당하거든요.“

 

2011년 10월 5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혹시 그렇게 믿고 싶었던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다.

그리고 잡스가 살아생전 자신의 후계로 지목한 사람은 그의 오른팔이자 애플의 COO였던 티머시 도널드 쿡이었다.

전세계에 애도의 물결이 흐르는 가운데전문가들은 모두 애플의 하락세를 예측했다최고경영자가 바뀐 후 하나같이 내리막길을 걸었던 다른 모든 회사들이 그렇듯그 천재를 그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느냐고.

쿡의 취임 초창기에는 그 예측대로 되어 가는 듯했다.

그러나 현재쿡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애플은 자사가 세운 매출기록을 자신이 몇 번이나 갈아치웠으며여러 서비스가 향상세를 이루었고더욱 사회와 환경에 친숙한 기업으로 변모하며 마침내 잡스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애플워치를 내놓기에 이른다.

 

저는 모든 것을 접했을 때보다 더 낫게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이 기업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특별히 꺼리는 책은 없다.(좋아하는 분야와 별로 그렇지 못한 분야가 있을 뿐)

그런 내가 특별히 조심하거나 멀리하는 책이 있다면정치 관련 서적들과 정치인 혹은 기업인들의 자서전또는 그들에 관한 전기이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먼저 책은 고정적이므로 한 번 출간되면 수정은 거의 불가능하다.(종이책의 경우 특히 더)

그런 책에 비해 사람과 사회와 정치는 너무도 가변적이다초 단위로 시끄러운 곳이 정치계 아니던가사람은 또 어떠한가사람은 시간이 지나며 크고 작은 변화를 겪는다그리고 슬프게도 좋은 쪽보다는 안 좋은 쪽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책을 쓸 당시에는 그 사람이 정말 모범적이고 타인이 귀감이 될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내가 책을 읽을 때는 더이상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어느 한쪽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자서전의 경우에는 당연히 자신에게 유리하게 서술될 것이고 타인이 쓴다고 하더라도 그가 책의 대상에게 호의적인 입장이라면 책도 그렇게 쓰일 것이다정치 서적은 저자의 성향에 따라 한쪽으로 기울기 십상이다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법인데그런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이 쓰는 책이라면 어떻겠는가.

그래서 이 책을 앞에 뒀을 때 생각이 많았다나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생각했다책 내용을 숙지하되신봉하지는 말자고책의 주인공은 이후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고 내가 예상한 사람과 전혀 다를 수 있다고그러니 이 책을 읽은 다음에도 주의깊게 지켜봐서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그러니 이 리뷰를 읽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먼저 책의 만듦새를 보자면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저자 린더 카니는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닷컴>에서 뉴스 편집장으로 일했고현재는 애플 블로그 '컬트 오브 맥'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애플을 20년간 취재했다는데편집장 경험 덕분인지 문장이 깔끔하고 길이도 딱 적당하다나는 경영사업통계 등에 지식이 정말 없는 사람인데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구성도 제법 훌륭하다잡스의 죽음부터 시작하여 팀의 어린 시절그동안의 행보애플을 어떻게 성장시켰는가를 한눈에 알기 쉽게 나누어 서술한다아마 이쪽 분야에 관심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나보다 더 빠르게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에서 배우고 과거와 다른 미래를 창조할 수는 있지요.”

 

팀 쿡이 이끄는 애플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고 싶은 점은애플이 사회와 환경에 기여하는 기업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팀은 억 단위의 달러를 기부에 사용하였고전세계에 퍼져 있는 애플의 공장에서 노동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기 시작했으며기기에서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부품들을 전부 제거했다.

건강과 환경을 중요시하며 운동을 좋아하는 팀 쿡은, 100%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약속했으며, 100% 재활용 부품으로만 이루어지는 폐쇄 루프 공급망 구축을 위해 힘쓰고 있다.

잡스는 환경과 사회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리더였던 듯하다나는 이러한 발전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애플의 이러한 노력은 다른 많은 기업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고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며결국 애플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것이다쿡의 이러한 노력은 내가 애플의 미래를 기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옳은 일이니까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팀이 항상 하는 말입니다.

옳기 때문에 옳은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책을 읽고 느낀 점은천재는 타고나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가 이해한 팀은 많은 것을 배우려 노력했고오랫동안 경험을 쌓았으며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팀에게 잡스처럼 강렬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가진 그만의 장점은 애플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 기대해야 할 것이 더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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