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민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평점 :
“우리 주변에 펼쳐진 세계를 즐거운 눈으로 보려고 할 때 우리는 어린이의 눈이 된다.
물론 우리는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린이의 눈을 질끈 감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인상적인 표지의 책이다.(어쩐지 하찮게 귀여운데...)
띠지의 캐치프레이즈도 눈에 확 띄는 데다 귀엽다.
(너무 안심되는 문구여서 저 말대로 했더니, 분명 낮에 잤는데 밤에 일어났다... 안돼 이러다가 이 책 평생 못 읽을지도 모른다...!)
아직 한국 작가의 에세이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외국 작가의 에세이부터 읽어보게 되었다. 역시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는 소설은 정말 좋아하지만 에세이는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이 책이 내 첫 에세이인 셈인데,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참 묘하다. 누군가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듯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이 책은 내게도 첫 에세이지만 작가에게도 첫 에세이이다.
그동안 작가가 다양한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놓은 책인데, 그 주제가 영화, 소설, 등산, 일상 등 다양하다. 잡지에 실린 글만 모았는데도 책 한 권 분량이라니, 작가가 얼마나 글을 열심히 쓰는 사람인지 알겠다.
“우리 집 근처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 어떤 계기 하나로 문득 내가 다른 세상에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감각, 부지불식간의 행방불명이 내게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감각만이 나의 '판타지'인 것이다.”
작가는 책의 제작 의도를 '자기 전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줄거리가 너무 흥미진진한 책을 읽으면 눈을 떼지 못한 채 밤을 새고, 그렇다고 지루한 책을 읽고 싶지는 않은, 딱 자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을 쓰고 싶었다고.
이 책은 어느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작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책이기에 각 챕터의 주제만 비슷할 뿐 내용이 이어지지도 않는다. 딱 자기 전에 읽고 졸릴 때 덮고 잘 만한 책이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소설만 읽어버릇 해서 그럴까, 뭔가 이어질 것 같은데 끊기고, 한두 장 만에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이어지니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나는 금방 작가의 일상과 생각에 녹아들었다. 작가가 묘사하는 세상을 보고, 작가가 상상하는 풍경을 따라 생각했다. 마치 저자와 오솔길을 함께 걸으며 길고 잔잔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편안한 책이기도 했다. 작가는 세상이나 사회에 대해 어떠한 예찬도 늘어놓지 않았다. 그래도 작가가 세상과 사람을 얼마나 귀엽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느껴진다.
정말 작가와 언제 한번 만나서 차 한 잔 하고 싶다.
“어쨌든 내가 잃어버린 추억이 나를 소설가로 만들어준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