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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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모든 걸 인내하는 모습이었다."

 

창비만화도서관 두 번째 작품인 올해의 미숙이다저자는 만화가 정원.

 정원 작가는 단편 만화 노르웨이 고등어」 「삼점몇키로를 그렸고웹툰 플랫폼 코미코에서 만화 불성실한 관객을 연재했다청소년소설 옥수수 뺑소니에 그림을 그렸다올해의 미숙은 첫 장편 만화책이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인 '장미숙'의 평범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극히 평범해서그렇기에 서글픈 그런 삶.

 이 책은 아마 읽은 사람마다 감상과 의미가 모두 다를 것이다충분히 그럴 만한 작품이었다누군가는 더없이 지루했다 말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그 말에 장단 맞춰 주다가 남몰래 눈물 한 방울을 닦아 낼지도 모른다누군가는 미숙에게 도무지 공감이 안 간다고 할지도 모르고 누구가는 미숙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수없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작품 같기도 했다사람의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그래서 이 작품에 감상은 있을 수 있어도 비평은 별 의미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아껴 줄 거면 끝까지 아껴 주지....

...씨이발."

 

책을 읽는 내내 상처투성이 삶을 어떻게든 보듬고 핥고 끌어안은 채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부터 좋지 않았던 것과 좋은 것 같다가도 결국 나빠지는 것들에 대해서그러다 어쩌다 만나는 좋은 것들을 우리는 필사적으로 붙잡고 살아간다고.

 작중 미숙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가정적이지 못했던 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고동경했던 언니 역시 미숙을 때린다미숙의 엄마 역시 다정한 사람은 아니고학교에서는 '미숙아'라고 놀림을 받으며 못생겼다는 폭언도 서슴지 않게 듣는다.

 도저히 잔잔할 수 없는 배경 설정인데도 잔잔하다 싶었는데작품 내내 미숙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화나거나 슬프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거나 얼굴을 붉히는 일은 있어도소리 내어 우는 모습하다못해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한 번쯤은 크게 소리 내어 울거나 고함쳤어도 좋았을 텐데그럼 좀 시원해졌을 텐데그 많은 상처를 다 어떻게 안고 사나.

 후반부로 갈수록 미숙의 표정은 점점 더 고요해진다.

 

?나는 이 이야기가 '상처에 견뎌내며 사는 법을 배우는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장미숙'은 어렸을 때부터 다 자라 독립을 준비할 때까지 계속해서 상처받기만 한다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은 날도 있었지만 그것도 결국 상처로 남고 만다그런 상처들이 전부 지나가고미숙은 지금까지 그랬듯 태연하게앞으로도 상처투성이일 길로 걸어간다.

 작중 내내 미숙은 '미숙아'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는다어쩌면 저 별명은 세상이 우리 모두에게 붙인 별명이 아닐까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받는 데 미숙하다그걸 끌어안은 채 계속해서 살아가는 데는 더 미숙하다그런 우리에게 올해의 미숙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계속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좋은 일은 그날 여름의 햇볕처럼 쨍했다 겨울이 되면 사라지고여름이 되면 다시 쨍하니 인생을 비출 거라고.

 우리는 올해도 미숙하고내년도 미숙할 것이고계속해서 조금 더 나아지겠지만 언젠가 어느 순간에서 우린 분명 미숙할 것이다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럼 그 순간에 우리는 여전히 미숙한 채로조금 더 나아지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의 일들이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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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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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가능성이 타고 남은 잿속에서 사악하게 반짝이는 현실일까요그게 없으면 훨씬 더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책은 평범한 샐러리맨이 우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환한 별이 떠오른다꿈이라는 건 너무도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이라서제대로 눈을 뜨고 쳐다볼 수도 없다그래서 그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사람들도 반짝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는 달리 책 속의 주인공 이진우의 여정은 참으로 고달프기 짝이 없다내가 느끼기에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히 '꿈을 좇아라'뿐만 아니라 '원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토록 큰 노력이 필요하다'인 것 같다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진우와 다른 후보들은 책 속에서 몇 번이나 자신의 한계를 넘는다.

 

"삶은 가끔 사람을 기만하는 모양이다하지만 처음부터 가망 없는 일을 권유하진 않았겠지그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겠지."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무려 13년의 자료조사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그 노력이 책에 깊이 녹아들어 있어서우주인이 되기 위한 자격이나 과정훈련 내용이 아주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직장을 얻은 이후로도 평소에 끊임없이 우주인을 되기 위해 몸을 단련하던 이진우조차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바다에 불시착했을 때 탈출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 체감 온도 90도 속에서 겹겹이 옷을 껴입고 견디거나무중력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상공에서 빠르게 낙하하는 전투기 안에서 환복을 하는 것이 훈련 내용이다이 고된 훈련을 거치면서도 건강 상태가 무척 중요해서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탈락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는 이 생활을 하다 보면 회의감이 들 법도 한데등장인물들에게는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그저 탈락에 대한 두려움과동료이자 경쟁자인 서로를 향한 죄책감과뽑히고 싶다는 열망뿐이다.

 그 정도의 열정과 능력을 가지고서도 못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책을 읽는 내내 차갑게 다가왔다.

 

"용기는 계속할 힘이 아니다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이다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쉬었다가 다시 해보자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우주인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넷 중 단 하나나 둘만 우주로 나갈 수 있다아차하면 아무도 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나 혼자만 잘하고 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 그나마 좀 위안이 될 텐데내 손이 닿는 않는 외부적 요인 때문에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너무 크다이제 난 돌아갈 곳도 없는데.

 꿈이라는 단어가이토록 잔인하고 너저분하고 답답한 단어였던가읽는 내내 내가 그리던 꿈과는 너무도 큰 차이에 고민했던 것 같다그 과정이 언제나 즐겁거나 아무런 고난도 없으리라는 팔자 좋은 상상을 한 것은 아니지만(dream)이란 단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일 만큼 흙탕투성이일 줄은 몰랐다.

 

"언제나 그렇다모든 앞날은 지금 나한테서 출발한다."

 

하지만주인공 이진우의 행보를 마지막 장까지 지켜보고 생각해 보았다.

 꿈은 반짝일지라도 그 과정까지 빛나리라는 법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그 과정은 생각보다도 더 무덥고 힘들고 때로 아니 제법 자주 지저분하기도 한 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했다꿈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사람들의 열정이노력이어떤 것에 대한 그 애정이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그런 사람들의 용기가여정이힘겨운 결단과 지난한 고민이 너무도 귀중해서 꿈이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그 과정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겨울지도 모른다당신을 끝없이 울게 할 수도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할 수도 있다어쩌면 아무리 간절히 바라고 노력할지라도 결코 거기 가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나 역시 그렇겠지.

 하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그 모든 과정의 당신이 넘치도록 아름다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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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생활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2
조규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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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뭐랄까, 어떤 일이든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잘되지 않더라도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버텨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잘된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첫 장을 펼치고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청소년소설이 내 학창시절을 지켜 주었는데, 그런 책을 다시 만난 것 같아 기쁘고 반가웠다.

독자를 끌어들일 만한 재미도 분명 가지고 있는데, 게다가 한국 문학계에서 흔치 않은 SF소설이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를 미래 시대.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청소년 기숙사'에 맡겨져 길러지는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는 그런 청소년 중 하나인 '진진'이 가면 회사 '아이마스크'의 베타테스터로 선정되면서 시작된다.

아이마스크에서 출시하는 가면은 보통 가면이 아니다. 판게아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이 가면은 묘사된 내용을 토대로 상상해 보자면 가면보다는 팩에 가까운데, 착용하는 순간 사용자의 얼굴을 보다 아름답게 바꿔 준다.

이 가면은 신기한 만큼이나 가격이 매우 높아 소수의 경제적 부유층만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가면 사용자들을 '가면생활자'라고 부른다. 가면생활자와 가면 베타테스터들에게는 또 하나의 특전이 주어지는데, 가면생활자들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정원'이라는 부자들만의 낙원이 그것이다. 진진은 베타테스터로 선정되면서 그토록 꿈에 그리던 정원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된다.

한편 진진과는 다른 청소년 기숙사에 살고 있는 오타는 어느 날 자신의 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뜻 모를 편지를 받는다. 오타는 그 편지를 통해 '안티마스키드', 가면에 반대하는 집단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형이 아이마스크 연구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면에 뭔가 심각한 결함이 있고, 형은 아이마스크 측에 감금되어 있다고 추측한 안티마스키드는, 그 진위를 알기 위해 오타를 베타테스터로 위장시켜 정원으로 들여보내기로 한다.

이러한 설정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듯이, 빈부 격차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경제적 부유층이 빈곤층을 배척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이러한 모습은 미성년자인 진진에게도 여과 없이 드러나는데, 이로 인해 진진의 열등감은 두려움으로 바뀌어 버린다. 상대적 박탈감과 배척감이 청소년인 진진에게도 고스란히 얹혀지는 것이다.

기존의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부조리가 미래 세대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편 같은 정원에서 베타테스터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데도 진진과 오타의 행동이나 생각은 사뭇 다르다.

진진은 어떻게든 더 오래, 자주 정원에 머물고 싶어하며 가면생활자들 사이에 섞이기 위해 룸메이트의 구두나 옷을 훔쳐서 착용하고 나오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타는 따로 목적의식이 있어서였을까. 정원의 화려함에 크게 현혹되지도 않고 자신의 본 목적을 잊지 않는다.

정원과 가면에 집착하는 진진을 보면서는 조금 씁쓸했다. 아무리 애써도 결코 가면생활자들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여기서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친구에게서 값비싼 목걸이를 빌렸다가 그것을 잃어버린 르와젤 부인은, 목걸이 값을 갚기 위해 온 생을 바쳐 돈을 벌었지만, 그녀가 빌린 목걸이는 사실 몇 푼 안 하는 가짜였더라.

가면을 단단히 붙잡은 채 기숙사로 도망치는 진진의 뒤를 쫓아가며 계속 생각했다. 정말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바라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만, 딱 한 번만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을.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은 좋은 청소년소설 중 하나였지만, 이야기가 조금 더 길었으면 했다.

등장인물 각자가 마주한 사건은 얼추 마무리되었지만, 정원과 아이마스크와 가면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건재하다. 소설은 이제 막 무언가 시작하려 할 때 끝나 버린다.

그 점이 아쉬웠다. 계속해서 사회의 도구로만 이용당해 온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무언가 바꾸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거기까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진진과 오타는 분명 한 단계 성장했지만, 그 성장한 날개를 마음껏 펼치는 전개까지 갔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현재의 결말도 깔끔하니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기 마련이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것은 추악한 형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면에 먹힐 수는 없다. 거기에 지배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번 잘 생각해 보자.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말 바라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은 조금만 방심해도 잊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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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쓸쓸할 때 - 가네코 미스즈 시화집
가네코 미스즈 지음, 조안빈 그림, 오하나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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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득한 먼바다의 저 배는,

언제까지나항구에 닿지 않고,

바다와 하늘 맞닿은 곳으로만,

아득히 멀어져 가지요.

 

반짝이면서가지요.

-<>

 

내가 쓸쓸할 때는 일본 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동요 시집이다.

가네코 미스즈는 많은 유명 작가들이 몸담은 '동요시인회'의 최연소 회원이었고, '젊은 동요 시인 중 거성'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시는 한국 시와 영시였기에일본인이 쓴 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깔끔한 표지를 눈앞에 두고 과연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지어떤 세계를 보여 줄지 상상했다. '과연 우리 정서에 잘 맞을까'하는 염려도 들었고동요 시집이라면 내가 읽기에는 조금 유치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쓸쓸할 때는 동요 시집이기에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쓴 듯한 시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치할 것이라는 예상은 나의 오판이었다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보는 것까지 어리지는 않을 것인데.

어린아이의 관심을 끌겠다고 총천연색으로 무장한 채 평면적인 구성을 띤 작품들을 볼 때 우리는 유치하다고 느낀다그런 작품의 경우 대부분이 비슷비슷하여 상투성을 강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그러나 이 시는 따스하고 하얀 두 손으로 독자를 부드럽게 이끌어어린 시절을 회상하도록 한다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성인과 어린이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정서에 잘 맞을까 싶었던 마음도 역시 오판이었다. '부처님', '하느님등 종교적 언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불교와 기독교 모두 역사적으로 우리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고 현대에도 그 명맥을 이어 오는 중이다일러두기에 '어려운 단어에는 뜻풀이를 달았습니다'라고 되어 있는데그 각주도 두 개 남짓이 전부다타 언어를 번역할 때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리듬감과 형식 역시 잘 살아 있다무엇보다 모든 사람의 기억혹은 마음 속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을 표현하고 있기에한국 아니라 어느 국가에서 읽혀도 충분히 감동을 주리라 생각했다.

 

어머니 모르는

풀의 아기를,

수천만

풀의 아기를,

땅은 혼자서

기릅니다.

 

풀이 파릇파릇

무성해지면,

땅은 풀에

덮여 버릴 텐데.......

-땅과 풀

 

이 책은 총 1부와 2부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비슷하지만, 2부에서는 조금 더 슬프고 어두운 부분까지 내려가는 시도 수록되어 있다시가 노래하는 곱고 잔잔한 풍경을 떠올리며 읽다가, '하며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멈추게 하기도 했다아이들이라고 어찌 좋은 생각만 하리아이의 고민은 성인의 그것보다 훨씬 과소평가되기 마련이다.

가네코 작가는 이렇듯 아이보다 더 아이의 마음을 잘 표현해 냈다.

 

중간중간 들어간 조안빈 일러스트레이터의 시화도 시의 분위기를 잘 살려 준다한지에 그린 듯한 앙증맞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 되겠다.

 

가네코 미스즈 작가는 1930년 500편의 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이라니이토록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과 한 시대를 함께하기 못했다니 슬픈 일이다.

 

잠깐

물가의 조개껍질 보는 사이

그 돛단배는 어딘가로

가 버렸다.

 

이렇게

가 버린,

누군가가 있었다-

무언가가 있었다-

-<돛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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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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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뉴스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버릇을 들이게 되었어.

신문도 거짓말을 하고 역사학자들도 거짓말을 해.

오늘날에는 텔레비전도 거짓말을 해."


움베르트 에코 작가의 유작이자,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소설이기도 하다.

저자 움베르트 에코는 기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이자 교수였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데, '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이름답게 책 속 인물들은 예시를 들어도 매우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지식이 담긴 일화를 사용한다. 무솔리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거짓이고 허풍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너무나도 자세하고 설득력 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고 보니, 수도꼭지에서 물이 흐르지 않았다."

책이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 대충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의아했다.

뒤표지에 가짜 뉴스를 다룬다고 되어 있으면서 갑자기 웬 수도꼭지?

다음 전개를 궁금해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이 첫 문장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독백으로 넘어가고, 이야기에 빠르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대필 작가로 일하는 '콜론나'는 어느 날 '시메이'로부터 대필 의뢰를 받는다.

콜론나가 대필해야 할 것은 어느 회상록. 어떤 정체불명의 신문에 대한 회상록이다.

의뢰자는 말한다. 그 신문은 창간되지 않을 신문이라고.

이 신문은 정계 인사들의 비리를 까발리는 신문이 될 것이고, 신문의 존재가 알려지면 그들은 불안에 떨며 자신의 주인에게 뇌물을 바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의 주인은 그것을 이용해 상류사회로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 신문은 발간되기도 전에 폐기될 것이고, 대중들에게는 어떤 비판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줄거리부터가 매우 흥미로웠다. 어디에서 이런 내용을 찾을 수 있겠는가. 흥미를 확 끌어당기면서도 앞으로의 전개를 궁금하게 만드는, 훌륭한 도입부였다.

신문이 창간되지 않는다는 것은 콜론나와 의뢰인만의 비밀. 본격적으로 신문을 위한 기자단을 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모인 기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시메이의 주도 아래 신문에 실을 기사를 어떻게 꾸밀지 회의를 벌인다.

 

나는 이 회의에서, 이들이 결코 진실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그대로'라는 기자 정신은 여기에서 언급해봤자 시메이가 보기 좋게 퇴짜를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진실을 말하면서 진실을 숨기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사용된 비열한 방법으로 신문을 꾸미려 한다.

진지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을 원했던 '마이어'는 이런 작태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독자들은 여기서 물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목적이 따로 있는 신문이라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기사 하나로 누군가를 매장하려는 일을 시메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시하고, 지시받은 자는 그것을 따른다.

글의 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펜을 잡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작가는 우리에게 경고하는 듯했다.

글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펜을 잡은 사람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이들은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고민하지 않는다. 기자를 표명하지만 이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읽는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읽어야 하는가?

신문과 뉴스를 읽고,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있는가?

나는 기자가 아니고, 실제로 기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우리는 '직업윤리 의식'이라는 얄팍하기 짝이 없고 구속력도 없는 그것에 절실히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쥔 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저버린다.

 

저자는 매혹적인 플롯을 가지고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이것은 내가 나에게 질문했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이에 답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보려 한다.

'가짜뉴스'가 물위로 본격적으로 떠오른 지금, 그들이 윤리의식을 저버렸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대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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