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생활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2
조규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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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뭐랄까, 어떤 일이든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잘되지 않더라도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버텨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잘된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첫 장을 펼치고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청소년소설이 내 학창시절을 지켜 주었는데, 그런 책을 다시 만난 것 같아 기쁘고 반가웠다.

독자를 끌어들일 만한 재미도 분명 가지고 있는데, 게다가 한국 문학계에서 흔치 않은 SF소설이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를 미래 시대.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청소년 기숙사'에 맡겨져 길러지는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는 그런 청소년 중 하나인 '진진'이 가면 회사 '아이마스크'의 베타테스터로 선정되면서 시작된다.

아이마스크에서 출시하는 가면은 보통 가면이 아니다. 판게아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이 가면은 묘사된 내용을 토대로 상상해 보자면 가면보다는 팩에 가까운데, 착용하는 순간 사용자의 얼굴을 보다 아름답게 바꿔 준다.

이 가면은 신기한 만큼이나 가격이 매우 높아 소수의 경제적 부유층만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가면 사용자들을 '가면생활자'라고 부른다. 가면생활자와 가면 베타테스터들에게는 또 하나의 특전이 주어지는데, 가면생활자들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정원'이라는 부자들만의 낙원이 그것이다. 진진은 베타테스터로 선정되면서 그토록 꿈에 그리던 정원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된다.

한편 진진과는 다른 청소년 기숙사에 살고 있는 오타는 어느 날 자신의 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뜻 모를 편지를 받는다. 오타는 그 편지를 통해 '안티마스키드', 가면에 반대하는 집단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형이 아이마스크 연구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면에 뭔가 심각한 결함이 있고, 형은 아이마스크 측에 감금되어 있다고 추측한 안티마스키드는, 그 진위를 알기 위해 오타를 베타테스터로 위장시켜 정원으로 들여보내기로 한다.

이러한 설정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듯이, 빈부 격차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경제적 부유층이 빈곤층을 배척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이러한 모습은 미성년자인 진진에게도 여과 없이 드러나는데, 이로 인해 진진의 열등감은 두려움으로 바뀌어 버린다. 상대적 박탈감과 배척감이 청소년인 진진에게도 고스란히 얹혀지는 것이다.

기존의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부조리가 미래 세대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편 같은 정원에서 베타테스터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데도 진진과 오타의 행동이나 생각은 사뭇 다르다.

진진은 어떻게든 더 오래, 자주 정원에 머물고 싶어하며 가면생활자들 사이에 섞이기 위해 룸메이트의 구두나 옷을 훔쳐서 착용하고 나오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타는 따로 목적의식이 있어서였을까. 정원의 화려함에 크게 현혹되지도 않고 자신의 본 목적을 잊지 않는다.

정원과 가면에 집착하는 진진을 보면서는 조금 씁쓸했다. 아무리 애써도 결코 가면생활자들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여기서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친구에게서 값비싼 목걸이를 빌렸다가 그것을 잃어버린 르와젤 부인은, 목걸이 값을 갚기 위해 온 생을 바쳐 돈을 벌었지만, 그녀가 빌린 목걸이는 사실 몇 푼 안 하는 가짜였더라.

가면을 단단히 붙잡은 채 기숙사로 도망치는 진진의 뒤를 쫓아가며 계속 생각했다. 정말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바라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만, 딱 한 번만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을.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은 좋은 청소년소설 중 하나였지만, 이야기가 조금 더 길었으면 했다.

등장인물 각자가 마주한 사건은 얼추 마무리되었지만, 정원과 아이마스크와 가면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건재하다. 소설은 이제 막 무언가 시작하려 할 때 끝나 버린다.

그 점이 아쉬웠다. 계속해서 사회의 도구로만 이용당해 온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무언가 바꾸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거기까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진진과 오타는 분명 한 단계 성장했지만, 그 성장한 날개를 마음껏 펼치는 전개까지 갔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현재의 결말도 깔끔하니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기 마련이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것은 추악한 형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면에 먹힐 수는 없다. 거기에 지배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번 잘 생각해 보자.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말 바라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은 조금만 방심해도 잊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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