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쓸할 때 - 가네코 미스즈 시화집
가네코 미스즈 지음, 조안빈 그림, 오하나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아득한 먼바다의 저 배는,

언제까지나항구에 닿지 않고,

바다와 하늘 맞닿은 곳으로만,

아득히 멀어져 가지요.

 

반짝이면서가지요.

-<>

 

내가 쓸쓸할 때는 일본 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동요 시집이다.

가네코 미스즈는 많은 유명 작가들이 몸담은 '동요시인회'의 최연소 회원이었고, '젊은 동요 시인 중 거성'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시는 한국 시와 영시였기에일본인이 쓴 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깔끔한 표지를 눈앞에 두고 과연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지어떤 세계를 보여 줄지 상상했다. '과연 우리 정서에 잘 맞을까'하는 염려도 들었고동요 시집이라면 내가 읽기에는 조금 유치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쓸쓸할 때는 동요 시집이기에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쓴 듯한 시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치할 것이라는 예상은 나의 오판이었다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보는 것까지 어리지는 않을 것인데.

어린아이의 관심을 끌겠다고 총천연색으로 무장한 채 평면적인 구성을 띤 작품들을 볼 때 우리는 유치하다고 느낀다그런 작품의 경우 대부분이 비슷비슷하여 상투성을 강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그러나 이 시는 따스하고 하얀 두 손으로 독자를 부드럽게 이끌어어린 시절을 회상하도록 한다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성인과 어린이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정서에 잘 맞을까 싶었던 마음도 역시 오판이었다. '부처님', '하느님등 종교적 언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불교와 기독교 모두 역사적으로 우리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고 현대에도 그 명맥을 이어 오는 중이다일러두기에 '어려운 단어에는 뜻풀이를 달았습니다'라고 되어 있는데그 각주도 두 개 남짓이 전부다타 언어를 번역할 때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리듬감과 형식 역시 잘 살아 있다무엇보다 모든 사람의 기억혹은 마음 속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을 표현하고 있기에한국 아니라 어느 국가에서 읽혀도 충분히 감동을 주리라 생각했다.

 

어머니 모르는

풀의 아기를,

수천만

풀의 아기를,

땅은 혼자서

기릅니다.

 

풀이 파릇파릇

무성해지면,

땅은 풀에

덮여 버릴 텐데.......

-땅과 풀

 

이 책은 총 1부와 2부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비슷하지만, 2부에서는 조금 더 슬프고 어두운 부분까지 내려가는 시도 수록되어 있다시가 노래하는 곱고 잔잔한 풍경을 떠올리며 읽다가, '하며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멈추게 하기도 했다아이들이라고 어찌 좋은 생각만 하리아이의 고민은 성인의 그것보다 훨씬 과소평가되기 마련이다.

가네코 작가는 이렇듯 아이보다 더 아이의 마음을 잘 표현해 냈다.

 

중간중간 들어간 조안빈 일러스트레이터의 시화도 시의 분위기를 잘 살려 준다한지에 그린 듯한 앙증맞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 되겠다.

 

가네코 미스즈 작가는 1930년 500편의 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이라니이토록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과 한 시대를 함께하기 못했다니 슬픈 일이다.

 

잠깐

물가의 조개껍질 보는 사이

그 돛단배는 어딘가로

가 버렸다.

 

이렇게

가 버린,

누군가가 있었다-

무언가가 있었다-

-<돛단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