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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희망은 가능성이 타고 남은 잿속에서 사악하게 반짝이는 현실일까요? 그게 없으면 훨씬 더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평범한 샐러리맨이 우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환한 별이 떠오른다. 꿈이라는 건 너무도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이라서, 제대로 눈을 뜨고 쳐다볼 수도 없다. 그래서 그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사람들도 반짝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는 달리 책 속의 주인공 이진우의 여정은 참으로 고달프기 짝이 없다. 내가 느끼기에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히 '꿈을 좇아라'뿐만 아니라 '원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토록 큰 노력이 필요하다'인 것 같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진우와 다른 후보들은 책 속에서 몇 번이나 자신의 한계를 넘는다.
"삶은 가끔 사람을 기만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가망 없는 일을 권유하진 않았겠지. 그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겠지."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무려 13년의 자료조사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 노력이 책에 깊이 녹아들어 있어서, 우주인이 되기 위한 자격이나 과정, 훈련 내용이 아주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직장을 얻은 이후로도 평소에 끊임없이 우주인을 되기 위해 몸을 단련하던 이진우조차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바다에 불시착했을 때 탈출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 체감 온도 90도 속에서 겹겹이 옷을 껴입고 견디거나, 무중력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상공에서 빠르게 낙하하는 전투기 안에서 환복을 하는 것이 훈련 내용이다. 이 고된 훈련을 거치면서도 건강 상태가 무척 중요해서,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탈락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는 이 생활을 하다 보면 회의감이 들 법도 한데, 등장인물들에게는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탈락에 대한 두려움과, 동료이자 경쟁자인 서로를 향한 죄책감과, 뽑히고 싶다는 열망뿐이다.
그 정도의 열정과 능력을 가지고서도 못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책을 읽는 내내 차갑게 다가왔다.
"용기는 계속할 힘이 아니다. 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이다. 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우주인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넷 중 단 하나나 둘만 우주로 나갈 수 있다. 아차하면 아무도 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나 혼자만 잘하고 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 그나마 좀 위안이 될 텐데, 내 손이 닿는 않는 외부적 요인 때문에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너무 크다. 이제 난 돌아갈 곳도 없는데.
꿈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잔인하고 너저분하고 답답한 단어였던가? 읽는 내내 내가 그리던 꿈과는 너무도 큰 차이에 고민했던 것 같다. 그 과정이 언제나 즐겁거나 아무런 고난도 없으리라는 팔자 좋은 상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꿈(dream)이란 단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일 만큼 흙탕투성이일 줄은 몰랐다.
"언제나 그렇다. 모든 앞날은 지금 나한테서 출발한다."
하지만, 주인공 이진우의 행보를 마지막 장까지 지켜보고 생각해 보았다.
꿈은 반짝일지라도 그 과정까지 빛나리라는 법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도 더 무덥고 힘들고 때로 아니 제법 자주 지저분하기도 한 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했다. 꿈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사람들의 열정이, 노력이, 어떤 것에 대한 그 애정이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사람들의 용기가, 여정이, 힘겨운 결단과 지난한 고민이 너무도 귀중해서 꿈이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겨울지도 모른다. 당신을 끝없이 울게 할 수도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아무리 간절히 바라고 노력할지라도 결코 거기 가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렇겠지.
하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그 모든 과정의 당신이 넘치도록 아름다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