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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줘, 밥해줄게
김현학 지음 / 문학수첩 / 2007년 2월
평점 :
무뚝뚝한 홍명보 선수가 프로포즈로 한 말이 "된장찌게 끓일 줄 아니?"였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일화가 떠올랐는데, 특이하게도 이 책의 저자는 남자다. 한동안 유행했던 '나물이'시리즈처럼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특징이라면 제목처럼 저자의 프로포즈용 요리모임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이란 것은 신기하게 사람을 가깝게도 멀게도 만든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친근감을, 같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초반에 잘 보이기 위해서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하며 싫어하는 음식도 먹어주지만 그게 반복되면 헤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군것질을 아주 좋아하는 언니가 있는데, 길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빼먹지 않고 다 사먹곤 했다. 물론 남자친구는 언니가 좋아하니까 그 때마다 먹어주었다. 근데, 언니는 단지 먹고 싶을 뿐이라서 한두개 맛만 보고 말지만 남자친구는 그 언니가 남긴 것을 매번 다 먹어야 했다. 결국은 오빠가 "너랑 만나다간 배 터져서 죽을 것 같다"고 헤어지자고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나 역시 계란을 먹지 않는 사람을 사귄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먹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계란 먹는 사람을 냄새난다면서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보다는게 헤어진 원인 중에 하나가 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소한 음식을 대하는 행동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요리를 하다는 저자. 네이버 블로거로서 유명했나 보던데, 책에 있는 요리들은 보니 과히 그럴만했다. 첫만남, 기념일, 싸움 그리고 마지막 프로포즈까지 테마가 있는 요리들은 각 장에 여자친구에게 쓴 닭살 편지와 함께 시작한다.
요리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사연을 갖고 있는 요리는 마음으로 한번 더 먹기때문에 소화되어 몸 속에 남는 것 외에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머리 속에도 남게 된다. 혼자 부산 출장을 갔다와서 서운해할 그녀를 위해 부산의 유명한 동네파전을 만들어준다던지, 아픈 그녀는 위해서 직접 죽을 만들어준다던지, 샐러드에 자주 사용하는 석류즙이 여자에게 얼마나 좋은지 알콩달콩 얘기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 참 섬세한 사람이라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는 받는 것보다는 해주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 저자의 요리들을 보면서 여자친구는 좋겠다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들어주고 같이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취향에는 좀 낯간지러운 저자의 편지와 그녀에 대한 마음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어리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냥 귀엽기도 했다. 지금은 그녀가 없다는 저자. 이런 남자라면 곧 좋은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해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이 책에서 다양한 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책에 손이 갔으리라. 간단한 기본 재료만 있으면 쉽게 그럴 듯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저자를 보면서 '요리는 상상력'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고, 바빠서 잊고 있었던 요리의 즐거움을 되새기게 되었다. 직접 해보면 요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단지 귀찮을 뿐이다. 같은 재료로도 다른 맛을 내는 것은 요리를 대하는 마음의 차이일 뿐이다. 이번 주말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