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뭐지?모두가 아는 '돼지와 늑대'라는 등장인물만으로, 늑대의 눈빛을 의심하고 돼지의 어리석음을 걱정하며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을때...뒷장이 더 있을거야, 내가 못보고 지나친 문장이나 그림이 있을 수 있어.아니, 없다.고착되고 뻔한 삶은 아무 일도 없거나 편견으로 멋대로 상상한 일이 이어지지 않을때 오히려 당황한다.이 얼마나 평화로운가!책을 읽으면 뭔가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지식을 습득하거나 마지막 장을 덮을때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와야 할까?오랜만에 뻔하지 않은 책을 만났다.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진다.
나는 언제 꽃의 세계에 빠져 들었을까?김 군이 가을 국화 향기를 맡는 그림에서는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시며 함께 향을 맡았다.조선 후기 실존 화가였던 김덕형이 김 군으로 등장한다. '김 군' 하면 요즘은 낮춰 부르는 것으로 아는데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는 김덕형의 책 《백화보》의 서문에서 김덕형을 '김 군'이라 부르며 꽃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칭송했다고 한다.꽃이 풍성한 계절에 이 책은 책상에 앉는 것만으로도 꽃을 상상하게 한다.
제주에서 '해녀'라는 소재는 더이상 특별하거나 독특하지 않다. 그만큼 미술.문학.연극 등 예술 전분야에서 다양하게 다뤄진다.이제는 평범하다 할 소재가 끊임없이 변주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걸까?"...그래, 나는 사람이 아니라 바다를 기다린 거다." -작가의 말中에서이 그림책은 먹빛 평면에 화려한 색도 글도 없다.오히려 책이라기보다 한편의 파노라마 영화를 보는듯 하다.말이 없어 그림에 더 집중하고 세심하게 눈치챌 수 있다.'해녀'는 자연을 바라보는 가장 겸손한 인간이다.
역사의 큰 아픔은 그냥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당시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상처가 모조리 하나도 빼놓지말고 모두 어루만져져야 한다.치유되지 못한 절규는 대물림되고 시간의 층만큼 배가 된다.그때 힘없이 떨어진 목숨들이 시간을 돌아 지금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그것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고 미래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