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내가 겪은 6.25 전쟁
김원일 외 글, 박도 사진편집 / 눈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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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하여 3년 후 7월 27일에 휴전을 하게 된 한국전쟁과 관련해서는 해마다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쟁의 전개 과정이라든지, 한국전쟁이 과연 냉전의 연장선상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러한 연구성과의 내용들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끊임없이 접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정보를 접하고, 한국전쟁이라는 과거의 사실이 과연 오늘날에 있어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의 끈을 놓아버리기 쉬운 게 또 현실의 단면이다.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가 아닌 이상은 한국전쟁이란 역사적 사건 혹은 화두에 대해서 자신이 현재를 살아가면서 가지는 수많은 고민들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위에 언급한대로 각종 연구성과물-각종 논문 및 전사 기술서적 혹은 회고담-들을 찾아서 읽는 것이 제일 좋겠으나 여기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존재한다. 연구라는 것의 성격상 어느 정도 일반화와 추상화의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국전쟁을 겪은 개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을 추적해 가면서 가질 수 있는 공감(이해를 토대로 한 감정의 공유)이라는 요소가 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그 시간을 공유하며 살아간 수많은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수많은 개인적인 경험이 산재해 있는 것인데, 한국전쟁의 발발 및 전개과정 그리고 전후의 처리 및 전쟁이 끼친 영향과 같은 거대한 주제에 집착하다보면 정작 그 시기를 살아간 수많은 이들의 삶을 놓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숲을 멀리서 조망하는데에는 익숙해졌으나 정작 그 숲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그 숲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외면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그 숲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에 실린 각종 사진과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회고담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전쟁에 대해서 가지기 쉬운 추상적 이미지나 생각을 보완해 주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 도판으로 수록되어 있는 수많은 사진들은 한국전쟁 당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간략하면서도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장 한장에 담긴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 전쟁의 와중에 자행된 학살 및 폭격의 참담한 흔적,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등을 통해서 전쟁의 끔찍함과 더불어 그 속에서도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생명력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경우에는 대중에게 간추려서 한국전쟁의 모습을 알리는 차원에서 기획된 감이 없지 않기 때문에 너무 간략한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래도 부족하게 느껴진 부분들은 이 책 이전에 출간된 <지울 수 없는 이미지>1, 2권이라든지 전쟁을 경험했고 그러한 것들을 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잘 형상해 놓은 각종 소설들(이 책에 간략하게 글을 실은 소설가들의 작품이 대표적일 것이다.)을 추후에 읽음으로써 보완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종류의 책을 읽으면서 좀더 고민해야 할 부분은 단지 과거의 사진을 보는 가운데 과거 전쟁의 참상을 이해하고 과거 세대들의 참담한 생활에 대해서 동정을 구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아니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50여년 전에 있었던 한국전쟁은 아직 끝난 전쟁이 아니라 단지 정전협정이 체결된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러있다는 사실,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공표로 인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전쟁의 참극이 단지 과거의 일로만 국한된다고는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땅에서 한 번 더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이 발생한다면 한국전쟁 당시 원산이 폭격으로 인해서 폐허가 된 것 이상의 풍경을 사진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목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최악의 상황이 다시금 이땅에서 전개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한국전쟁으로부터 우리가 역사적 경험으로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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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연대와 일본제국주의
한상일 지음 / 오름 / 2002년 3월
품절


일본이 그 세력을 대륙으로 팽창하여 아시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는 후쿠자와 개인이나 팽창주의자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지배계급에 공통된 것으로서 근대 일본사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하고 있는 불변의 대원칙이었다. 차이가 있었다면 팽창주의자는 공개적으로 아시아와의 단절과 침략정책을 지지했고, 연대주의자는 대륙팽창정책을 아시아와의 긴밀한 연대라는 미명으로 위장했고, 정책결정자는 이 두 주장을 교묘히 조화하여 대륙정책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론적으로 상반되는 자유주의적 팽창주의자와 연대주의자가 같은 목표를 지향한 동질성은, 일본 근대사에서 팽창주의자와 연대주의자의 구별과 자유민권론자와 국권론자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는 특성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므로 연대주의에 속하든 팽창주의에 속하든, 또는 '속아'(屬亞)를 주장하든 '탈아(脫亞)'를 주장하든 그들이 공유한 신념과 추구한 목표는 일본의 만세독립과 번영을 위하여 대륙으로 영토를 뻗어야 한다는 소에지마의 침략주의와, 아시아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도쿠토미의 동아시아 맹주론의 현실화에 있었다.-46쪽

연대주의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그 기초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서력동점으로 조성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아시아는 긴밀한 제휴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아시아 연대주의의 대의명분이다. 동종동문(同種同門) 또는 운명공동체론은 이와 같은 대의명분을 더욱 효과적으로 꾸미는 작용을 했다. 그러나 연대사상의 대의명분의 심층에 깔려있는 아시아관은 지배자-피지배자, 지도자-추종자 관계의 의식이었고, 서양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아시아 대륙을 지배, 통치해야 한다는 데 귀착했다. 아시아 연대주의는 이와 같은 자기 중심적 아시아관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나타났고 발전됐다. 둘째는 초기 연대주의자의 사상에는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요소가 있었으나, 대륙의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면서부터 이러한 빛깔은 점차로 바래졌다. 셋째는 연대주의와 자유주의적 팽창주의는 표면적으로는 그 이론을 달리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었다. 넷째는 연대주의자들과 팽창주의자들은 일본은 반드시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끝으로 일본의 독립보전과 아시아 지배는 연대주의의 '궁극의 목표'이고, 따라서 연대주의는 이 목적을 이룩하고 아시아를 향한 일본 제국주의와 침략주의를 숨기고 정당화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46 ~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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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
최호근 지음 / 책세상 / 2005년 7월
구판절판


우리에게 홀로코스트Holocaust에 버금가는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우리 민족이 유달리 평화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다른 문화를 지닌 민족이나 종족과 한 땅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제노사이드의 가능성은 우리와 타자 사이에 경계를 긋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14 ~ 15쪽

제노사이드 범죄는 국가와 같은 막강한 물리력을 지닌 조직과 그 대리인이 자신이 공존하기 원하지 않는 집단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말살하기 위해 저지르는 20세기형 범죄다.-92 ~ 93쪽

제노사이드 범죄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소수 집단을 절멸하려는 국가나 그에 준하는 권력체 대표자들의 의도가 확고하게 존재했고, 그 의도가 잘 짜인 계획에 따라, 군, 경찰과 그 밖의 관료 기구들 사이의 유기적 협조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그 소수집단 전체 혹은 상당한 부분 이상의 파괴를 가져왔는지 여부에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집단 대표성, 의도의 근본성, 계획의 철저성, 범죄 참여자의 포괄성, 결과의 심각성이야말로 제노사이드 범죄를 반인도 범죄는 물론 전쟁 범죄와도 구분해주는 결정적인 지표들이라고 하겠다.-94 ~ 95쪽

진솔한 역사 교육은 건실한 정치 교육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 교육은 어떤 특정한 가치관을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생명이 관련된 문제에서 상황 논리와 조직 논리에 숨지 않고 개인의 양심에 따라 결단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과거의 경험에 대한 교육을 통해 길러져야 한다. 우리가 자꾸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사람이 사람 대접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발적인 사고로 사람이 죽어도 '호들갑'을 떠는 사회,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공권력에 의해 누군가가 살해되었을 때 공분하는 사회, 국가 범죄의 기미가 조금만 보여도 시민들이 곧바로 저지에 나서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역사 교육과 정치 교육의 목표가 있다.-438 ~ 4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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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 - 조선병탄과 시선의 정치
한상일.한정선 엮음 / 일조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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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사만화는 서양의 선진산업국가가 전지구적으로 제국을 건설하면서 전파한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이들 만화는 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이 처한 운명과는 다른, 근대제국을 건설하려는 야망과 의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이들 시사만화는 조선인이나 청나라인을 왜소하고 더럽고 전근대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반면에 일본인은 당당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서양인에 가깝게 그리면서, 일본을 서양이나 문명과 동일시하고, 조선과 청나라를 야만으로 타자화했다. 나아가 시사만화는 이들 야만의 이웃들을 선도해서 문명의 길로 이끌어가는 것이 근대 일본이 아시아에 제국을 건설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시선은 만화라는 매체 특유의 재치, 익살, 유머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일본사회에 급속히 전파되었다.-286~287쪽

시사만화는 단순히 독자에게 가치중립적인 유희를 가져다준 것이 아니고, 독자로부터 웃음과 심리적 쾌락을 끌어냄으로써 근대 제국 건설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 '그림초대장'이었다. 또한 이러한 시사만화가 신문과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유통, 매매되어 어디서나 구하기 쉽고 많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대중매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일본사회는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의지'를 만들어갔다.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이 같은 의지는 당시 서양 제국주의 문명의 논리를 매개로 형성되었으며, 동시에 조선병탄이라는 역사전개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제국 건설을 향한 의지가 결코 위에서 아래로 또는 국가에서 사회로의 일방적인 주입에 따른 것만이 아니라, 익살과 재치를 통해 밑에서도 역동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의 만화가와 불특정 다수의 독자는 시사만화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는 문명의 승리이고, 조선병탄은 진보하는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 지극히 당연한 사건이라는 의식을 자연스럽게 공유했다. 이런 인식의 공유는 제국을 건설하는 데 필수적인 일반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근대일본제국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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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리엔트 이산의 책 24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 이산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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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유럽에서 산업혁명을 시발로 하여 성립된 것으로 알고 있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의 시기, 즉 1400년대부터 1800년대 초반까지의 시간동안 세계경제 및 체제가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이 책은 거시적 시각에서 접근하여 유럽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및 패권이라는 것이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이전부터도 연속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이 시기 유럽은 생산력에 있어서 인도나 중국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한 채 부족한 것들-면직물, 비단, 차, 도자기 등-을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끌어온 은과 금을 토대로 소비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고 각종 연구 성과를 토대로 논증하고 있다. 근대 시기 유럽이 인도나 중국 등의 아시아 국가들을 제치고 자본주의의 선발주자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로는 자신들의 재화를 그다지 소모하지 않은 채 아메리카로부터 끌어온 은, 그리고 아프리카의 노예 노동력을 무제한적으로 끌어다 사용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그 이전까지 생산력에 있어서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아시아 국가들이 장기적인 경기 하강 국면을 맞이했던 점을 저자는 들고 있다.

  유럽이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를 형성하여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은 결코 원래부터 그네들의 능력이나 저력이 뛰어나서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로부터 유입된 재화들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막스 베버가 유럽 지역이 먼저 자본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던 이유로 꼽았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라는 것은 서구의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토대로 과거까지 소급하여 모든 것을 합리화하려 했던 서구인들의 편견과 오만에 지나지 않음을 저자는 거듭 밝히고 있다. 서구가 덧씌우고 합리화한 자본주의 발달의 역사 및 논리라는 것도 그 이전에 전개된 세계 각 국의 교역 및 세계 경제의 흐름을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서 살펴보면 어디까지나 서구 중심의 "만들어진 전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그릇된 인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논의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유럽 특히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발전론으로부터 탈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들어서기 이전부터도 유럽과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경제 교류와 화폐의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거기에서 유럽은 결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그동안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서구, 특히 유럽중심주의적인 편협한 시각에 젖어 있었는가에 대해서 반성해볼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지독하게 그 인식틀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그 해독을 일깨워주는 저자의 논의를 접하면서도 반신반의를 하게 되는 게 현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기존의 논의를 뒤엎고 있는 이러한 발상 자체마저도 서구인의 시각 및 연구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세계사를 이해하는 우리네의 인식이 우물 안 개구리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 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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