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 - 조선병탄과 시선의 정치
한상일.한정선 엮음 / 일조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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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사만화는 서양의 선진산업국가가 전지구적으로 제국을 건설하면서 전파한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이들 만화는 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이 처한 운명과는 다른, 근대제국을 건설하려는 야망과 의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이들 시사만화는 조선인이나 청나라인을 왜소하고 더럽고 전근대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반면에 일본인은 당당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서양인에 가깝게 그리면서, 일본을 서양이나 문명과 동일시하고, 조선과 청나라를 야만으로 타자화했다. 나아가 시사만화는 이들 야만의 이웃들을 선도해서 문명의 길로 이끌어가는 것이 근대 일본이 아시아에 제국을 건설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시선은 만화라는 매체 특유의 재치, 익살, 유머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일본사회에 급속히 전파되었다.-286~287쪽

시사만화는 단순히 독자에게 가치중립적인 유희를 가져다준 것이 아니고, 독자로부터 웃음과 심리적 쾌락을 끌어냄으로써 근대 제국 건설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 '그림초대장'이었다. 또한 이러한 시사만화가 신문과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유통, 매매되어 어디서나 구하기 쉽고 많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대중매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일본사회는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의지'를 만들어갔다.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이 같은 의지는 당시 서양 제국주의 문명의 논리를 매개로 형성되었으며, 동시에 조선병탄이라는 역사전개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제국 건설을 향한 의지가 결코 위에서 아래로 또는 국가에서 사회로의 일방적인 주입에 따른 것만이 아니라, 익살과 재치를 통해 밑에서도 역동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의 만화가와 불특정 다수의 독자는 시사만화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는 문명의 승리이고, 조선병탄은 진보하는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 지극히 당연한 사건이라는 의식을 자연스럽게 공유했다. 이런 인식의 공유는 제국을 건설하는 데 필수적인 일반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근대일본제국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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