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리엔트 이산의 책 24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 이산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흔히들 유럽에서 산업혁명을 시발로 하여 성립된 것으로 알고 있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의 시기, 즉 1400년대부터 1800년대 초반까지의 시간동안 세계경제 및 체제가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이 책은 거시적 시각에서 접근하여 유럽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및 패권이라는 것이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이전부터도 연속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이 시기 유럽은 생산력에 있어서 인도나 중국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한 채 부족한 것들-면직물, 비단, 차, 도자기 등-을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끌어온 은과 금을 토대로 소비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고 각종 연구 성과를 토대로 논증하고 있다. 근대 시기 유럽이 인도나 중국 등의 아시아 국가들을 제치고 자본주의의 선발주자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로는 자신들의 재화를 그다지 소모하지 않은 채 아메리카로부터 끌어온 은, 그리고 아프리카의 노예 노동력을 무제한적으로 끌어다 사용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그 이전까지 생산력에 있어서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아시아 국가들이 장기적인 경기 하강 국면을 맞이했던 점을 저자는 들고 있다.

  유럽이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를 형성하여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은 결코 원래부터 그네들의 능력이나 저력이 뛰어나서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로부터 유입된 재화들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막스 베버가 유럽 지역이 먼저 자본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던 이유로 꼽았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라는 것은 서구의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토대로 과거까지 소급하여 모든 것을 합리화하려 했던 서구인들의 편견과 오만에 지나지 않음을 저자는 거듭 밝히고 있다. 서구가 덧씌우고 합리화한 자본주의 발달의 역사 및 논리라는 것도 그 이전에 전개된 세계 각 국의 교역 및 세계 경제의 흐름을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서 살펴보면 어디까지나 서구 중심의 "만들어진 전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그릇된 인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논의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유럽 특히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발전론으로부터 탈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들어서기 이전부터도 유럽과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경제 교류와 화폐의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거기에서 유럽은 결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그동안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서구, 특히 유럽중심주의적인 편협한 시각에 젖어 있었는가에 대해서 반성해볼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지독하게 그 인식틀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그 해독을 일깨워주는 저자의 논의를 접하면서도 반신반의를 하게 되는 게 현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기존의 논의를 뒤엎고 있는 이러한 발상 자체마저도 서구인의 시각 및 연구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세계사를 이해하는 우리네의 인식이 우물 안 개구리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 볼 노릇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