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올 한 해 출판계를 정리하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같은 베스트셀러 목록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논리를 떠나 보면, 문학계 이슈는 단연 '정치'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대표 문예지 편집위원을 포함, 문학평론가 14인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한국문학계 대표적 이슈 2~3개를 대답한 결과 14인 모두 공통적으로 '작가선언6.9' 등 젊은 문인들의 활동과 '문학과 정치'담론이 비평 전반에 등장한 것을 가장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꼽았다. 이후 장편소설 붐, 김언 시인의 미당문학상 수상 등이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꼽혔다.

왜, 정치인가?

인터뷰에 참여한 14인의 평론가들은 촛불시위,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 사회변화를 겪으며 젊은 작가들이 거리로 나선 점이 2009년 가장 의미 있는 이슈라고 입을 모았다. 올 한 해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집을 꼽아 달라는 말에 역시 대부분의 평론가는 <이것은 사람의 말>을 꼽았다.

이 책은 젊은 작가 192인의 '한줄 성명'을 정리한 일종의 선언문 모음집이다. '작가선언 6.9'로 대표되는 젊은 문인들의 시민 활동은 6월 9일 한 줄 선언문 발표에서 시작돼 이후 용산참사 1인 시위, 인터넷 신문 릴레이 기고, 용산참사 헌정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 역입니다> 발간으로 이어졌다.

기존 문인들의 정치 참여나 운동이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것에 반해 '작가선언 6.9'는 문인들의 자발적, 수평 모임이었다. 인터넷 공간을 통한 활발한 토론, 대표자 없는 문인들의 개별적 시민운동 등 독창적 형태의 운동으로 눈길을 모았다.

또한 문학적 지향점을 달리하는 문인들이 자생적으로 공동체 행동을 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작가선언 6.9'에는 사회참여와 창작을 함께 했던 리얼리즘 진영부터 전위적 작품을 주로 쓰는 모더니스트, 자유주의 진영까지 다양한 문인이 함께 활동해왔다.

젊은 문인들의 시민으로서 행동은 문학적 고민으로 이어졌다. 시인 진은영이 지난 해 계간지 <창작과 비평> 겨울호 특집에 '감각적인 것의 분배'를 기고한 사례를 시작으로 문인들은 좌담회, 기고글 등으로 문학과 정치성을 접목시키는 방향에 대한 고민을 쏟아냈다.

이와 관련해 '문학의 정치성'이 비평의 주요 담론으로 부상했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학동네>, <세계의 문학>, <실천문학> 등 거의 모든 문예지가 올 한 해 문학과 정치에 관한 특집을 다룬 바 있다.

80년대 민중문학, 참여문학론이 비평계 담론 이후 작가들의 창작으로 이어졌다면 2000년대 문학과 정치 담론은 문학 창작자, 특히 시인들의 고민 이후 평론가들의 담론이 잇따라 출연했다는 점이 차이로 읽힌다. '문학과 정치' 담론은 그러나 담론을 이끌 만한 대표적 작품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론적, 추상적 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장편 연재 활성화

국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발표한 2009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면 상위 10위권 안에 든 문학 작품집은 거의 모두 장편소설임을 확인할 수 있다. 100만부를 돌파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해 공지영의 <도가니>, 김훈의 <공무도하> 등 중견 작가들의 장편이 활황을 보였다. 출판사와 작가 역시 기존 단편 소설집 위주의 기획, 집필에서 장편으로 추세가 변하고 있다.

장편 연재의 활성화는 단순히 출판 시장의 이윤 논리를 넘어, 2000년대 이후 문학계 변화와 맥락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올 한해 의미 있는 이슈로 꼽힌다. 한국 소설계는 지난 수십 년간 신인상, 신춘문예로 대표되는 등단제도부터 굵직한 문학상까지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문학성을 평가했고, 단편을 묶은 소설집 역시 출판계에서 효자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경장편 위주의 해외문학계에서 한국문학작품을 소개하는 데 일종의 벽으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장편위주의 작품 생산은 비평계와 번역계 모두에서 요구된 사항이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모티프로 소설이 각광을 받으며 장편의 요구는 더 절실해졌다.

장편 연재가 활성화된 것은 지난해부터 인터넷 연재, 장편 전문 문예지 창간 등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하면서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교보문고, 예스 24등 인터넷 서점, 문학동네 블로그 등 출판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연재 지면이 속속 등장했고, 인터넷 연재 전문 사이트 '나비'가 올해 하반기 문을 열었다. 지난 해 인터넷을 통해 연재된 장편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올해 그 결실이 보이기 시작한 것.

현재 황석영, 이제하, 신경숙, 구효서, 윤성희, 정한아 등 중견과 신진을 포함한 10여 명의 작가들이 인터넷서점과 웹진, 출판사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인터넷 연재가 한국문단의 지형도를 바꿀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적어도 장편 연재를 활성화시키는 인프라가 구축됐다는 점에는 평론가 대부분이 합의했다.

지난 해 가을 창간된 문예지 <자음과 모음>도 장편의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통상 문예지에 많아야 한두 편의 장편이 연재되는 것과 달리 <자음과 모음>은 최대 9편의 장편소설을 한꺼번에 연재하고 있다. 현재 정영문, 하성란, 조하형, 권지예, 김인숙 등이 <자음과 모음>에 신작 장편을 연재 중이며 이승우의 <한낮의 시선>은 연재 후 단행본으로 묶였다.

자문 평론가
강계숙, 고봉준, 권혁웅, 박수연, 복도훈, 서동욱, 신형철, 오창은, 이경재, 이명원, 이수형, 정여울, 정은경, 함돈균




2009년의 시집, 소설집

예술을 보는 방식이 하나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시집과 소설집 모두 평론가마다 '단 하나'의 작품집에 합의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을 대표하는 소설은 전성태의 <늑대>와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전혀 다른 벡터의 이 두 작품집은 2000년대 한국소설의 현재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데 평론가마다 이의가 없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지난 5년간 발표한 김연수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이 기간은 작가가 국내 대표적 문학상을 휩쓸며 '김연수 시대'를 연 기간과 일치하는데, '답보상태'란 일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소설 기교의 측면, 즉 문장, 메시지 전달 방식 등 한국 단편소설의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전작 <국경을 넘는 일>에 이어 한국사회 분단과 후기자본주의 문제에 천착한 소설가 전성태는 <늑대>를 통해 미학적 완성도를 한층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이전 정통 서사에 갇힌 소설 양식이 사회철학적 담론을 결부시켜 밀도 높은 작품으로 이어졌다는 것.

평론가들에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2009년 시집은 신해욱의 <생물성>. 일종의 고백체 문법의 시집은 미학적 측면에서 가장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집은 시 쓰는 자와 생활인 사이 어떤 장애물도 없이 투명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투명성의 미학'을 갖춘 신해욱의 시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고백이 가능한 한국 문학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밖에 김언의 <소설을 쓰자>, 이근화의 <우리들의 진화>, 하종오 <입국자들> 등이 2009년을 대표하는 시집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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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 Hyazga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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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던지는 질문 같다. '경계'라는 것이 사람들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무엇보다도 처음 만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은 꺼릴 문제는 아니지만, 처자식이 있다면 달라지는 문제이다. 여전히 간음죄는 성립되니까. 그런데 그들이 스스럼없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보고난 뒤에 몽골에서는 경계라는 개념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점에서 이 영화가 베를린의 초청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엄마는(탈북자의 설정이 아니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경계를 이탈해가나 엄마를 지켜야한다는(무엇을 지켜야한다는 전제는 경계심을 자아내는가?) 과제를 부여받은 아이는 엄마의 자유에 총을 들이댄다. 이 점에 있어서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뭐, 아저씨를 너무 사랑했다면 받아들여지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결국 떠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에 그들을 옥죄는 이데올로기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남자가 비를 기다리는 마음에 달아놓은 천들을 다리에 달아놓은 부분이다. 사랑하는데 뭔 조건이 그렇게 많아. 그래 나도 사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 좀 관념적이다. 장갑차 지나가는 것이 상징하는 바가 없어도, 이 영화 충분히 뜻을 전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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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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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민규의 『카스테라』 
  읽으면서 박민규의 『카스테라』가 생각났다. 환상적인 면도 그러했지만, 박민규 풍의 마이너들이 황정은의 소설 속에도 존재한다. 그리나 박민규보다 황정은은 더 집요하게 서술하는 듯하다. 박민규의 소설이 유머스럽게 연민하게 만든다면 황정은은 건조하게 서술하면서 연민하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는 배드 섹터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는 수많은 바이트가 모인 섹터로 구성되고 그 섹터가 모여 동심원 모양의 트랙(track)이 된다. 이 트랙에 정보가 저장된다. LP 레코드판이나 마라톤 트랙을 생각해보라. 트랙의 어느 부분에 물리적인 손상이 발생하는 경우 그 구간을 배드 섹터(bad sector)라고 부른다. 배드 섹터가 생겨나면 하드디스크 내의 정보는 잘못된 트랙에서 공회전을 하게 된다. 그 하드디스크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마더」,p227) 

  「마더」에서는 어머니에게 버린 받은 오라는 남자가 「소년」은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하는 소년이 있다. 아니면 세상과 소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군상을 그리고 있다. 「곡도와 살고 있다」와 「모기씨」 , 「문」이 그렇다. 소설 「모자」는 박민규의「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였다.  

(중략) 외삼촌은, 자기를 괴롭힌 사람의 다트를 응시하느라 자기 속의 다트를 보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외삼촌이 우리에게 한 일에 대한 몫은 완전히 외삼촌 한 사람만의, 자발적인 몫인 거야.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다트를 계속 지켜보자, 나는 생각했어.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내가 하려고만 하면 뭘 할 수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했어. 다트가 있고, 그걸 지켜보는 내가 있어. 잔혹한 방법으로 어딘가에 보복하고 싶어하는 내가 있고, 그것을 하지 않는 내가 있어. 외삼촌과 나는 바로 여기서 구별되는 거야. 나는 다트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게 바로 그것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이것은 상당히 안전하고 유리한 일이야. 있잖아. 자기 속에 그런 게 어디 있는지 모르거나 그런 걸 충분히 보려고 하지 않는 인간들은, 자기가 받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남에게 되풀이하는 거야.(중략)

   자기를 고통을 내면화했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자신은 그 고통을 자신이 만든 가공의 인물에게 부여한 꼴이 되었다. 그리고 동물원이라는 모티브를 가지고 와서 결국엔  

우리를 만들어서 동물들을 넣어두고 관람표를 받는 일 같은 것을 인간 외에 어떤 동물이 생각해내겠어. 동물을 관리하는 인간이 있고 동물을 관람하는 인간이 있고 동물을 관람하는 인간들을 관리하는 인간이 있고 그런 인간들에게 통제되고 영향받는 소수의 동물들이 있는 곳. 압도적인 인간의 영역, 그게 동물원이야. 동물원의 동물들이 어딘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야

  '내'가 만든 파씨가 자신을 대변하는 말을 하는 말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화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같기도 하다. 

 「무지개풀」은 무지개풀같은 어린아이같은 느낌을 가지게 하면서도 그것이 동성애의 느낌을 더욱 부각시키는 느낌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남녀의 관계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다가 그들이 옆집에 주목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들의 관계가 궁금해지게 된다. 

  P는 대야로 물을 떠내고 쏟아붓는 동안 자신의 팔에 탄력적인 리듬이 붙는 것을 느꼈다. 뜻밖에 그것은 물놀이보다 신났다. 등의 통증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등뼈가 무겁다고 했지. 헉헉 숨을 몰아쉬며 P는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여태껏 등뼈의 무게 따위 모르고 살아왔잖아. 이놈 탓이었던 거야. 이 거대한 물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무게를 잊게 해주는 바람에, 물 밖에 나왔을 때 새삼 등뼈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어버린 거야. 몸이 무겁다는 걸 새삼 깨달아봤자 좋을 리 없잖아. 어차피 우린 그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걸. 그렇지 않아? 

 아, 그래. 대답하며 P는 어쩐지 K와의 관계가 재미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잘못 나온 말을 바로 교정해서 알아듣는다. 예전엔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몇 번이고 묻다가 둘이서 배를 잡으며 웃곤 했는데

  이들이 세상에 눈치를 보고 산다고 생각하면 왠지 마음 한 구석이 뻑쩍지근 해온다. 

2. 역사 의식  
  모 비평가는 황정은의 특징으로 역사의식이 있다고 했다. 이 세상이 만들어낸 인물들을 그러내는 것, 그러나 마냥 연민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무덤하게 그려내는 것이 그녀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여작가들이 가족들 간의 관계에 매몰된 것에 비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황정은이 역사의식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3. 독특한 문체
 
하드보일드한 문체를 쓰다보니 가독성이 높고 대화들도 간략하고 반복되고 있어서 리듬감이 느껴진다. 그 반복감에서 이 사람과 나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곤 한다.  
  무지개풀에서 '풉'이 한장을 넘게 차지하면서 재미와 청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그리고 오뚝이와 지빠귀에서는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리듬감을 주고 있다. 
  인물들의 이름도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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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 바리에테 5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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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근대란?   <역사> 역사의 시대 구분의 하나. 근고와 현대의 중간 시대를 이르는 말이다.    
 → 그가 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근대 문학에 어떠한 비중을 두었는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즉, 그에게 문학이란 어떠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는가?

2.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으로서의 번역 (제1장)

일본문학 속의 아이러니 

 그는 주코프스키의 방법("원문을 완전히 부수어, 자기 나름의 시형으로 단지 의미만을 번역한다)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능력이 없었던 그는 축어적인 번역(벤야민은 그것이 순수언어로의 회귀라고 한다.)을 하게 된다.  그는 투르게네프의 「밀회」와 고골,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 젊은 층에게 영향을 준 작품은 투르게네프의 「밀회」이다. 

(중략) 청년들에게 청신한 인상을 주었고, 종래의 문장 감각에 익숙한 눈에는 어색하고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 문체가 그들 젊은 감수성에는 새로운 표현의 도를 보여주었다.(근대문학의 종언, p.19)

   그러나 투르게네프는 리얼리즘 소설이 유행하고 있었다. 리얼리즘 문학이란 화자가 있음에도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법의 고안에 있다. 이에 반해서 고골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바흐친이 강조한 '카니발적인 세계감각'이 유지되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카니발적인 세계감각'이란 게사쿠(에도시대의 통속 오락소설)라기 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 하이카이(익살, 농담, 해학. '하이카이렌가'의 준말이기도 함)라는 일본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p.27)

  이렇게 리얼리즘 문학으로 갔던 일본은 미술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 사진기의 도입으로 일본회화의 도음으로 인상파 미술로 변화했던 서양과는 달리 일본은 본격적으로 인상파 이전의 서양미술을 규범삼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 『뜬구름』은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지만, 후타바테이는 고골의 선성에 있었다. (고진의 견해인 듯) 

  → 언문일치를 꾀했던 그의 글쓰기가 우리나라에 준 영향(우리나라의 최초의 근대소설을 이광수에게 초점을 둘 때, 언문일치를 시도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3. 문학의 쇠퇴
  바흐친이 중요시한 것이 '카니발적 세계감각'이었다. 소셰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같은 문장이야말로 전형적인 사생문이라고 한다.   

소세키는 에세이에서 사생문의 특징 중 하나를 어떤 '정신태도'에서 찾고 있다. "사상문 작가가 타인의 일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귀한 사람이 천한 사람을 보는 태도도 아니다. (중략) 남자가 여자를 보고, 여자가 남자를 보는 태도도 아니다. 즉 어른이 아이를 보는 태도이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이다."(「사생문」) .

 프로이트는 유머가 괴로워하는 자아(아이)에 대해 초자아(부모)가 그런 것은 별 것 아니라고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루쉰 혹은 마르케스와  고골과 소세키를 동등선에서 보고 있다. 소세키의 『문학론』은 당시 근대문학의 완전히 비주류에 놓여있던 것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었다. 근대의 종언은 나카가미 겐지의 죽음으로서 그 상징성을 지녔다. 나카가미 겐지, 쓰시마 유코(다자이 오사무의 딸),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다카하시 겐이치로 등이 등장했으며 이들을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르네상스적 문학을 회복한 것으로 보았다. 

 →  가라타니 고진은 바흐친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있는 느낌이다. 그 점에서 소세키와도 대비점에 놓인다. 

4. 근대문학의 종언

4-1
   소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 것은 근대문학이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말은 소설 또는 소설가가 중요했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앙가주망을 주창했던 사르트르의 위치에 주목한다. 1960년대부터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이 보급되었는데 그것은 로망도 아니고 철학도 아닌 저작을 의미한다.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은 이미 근대문학로서의 소설(앙티로망을 포함하여)이 끝났다는 의미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어떤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착오라고 한다. 

(의문이 가는 점은 그가 『구토』를 최초의 앙티로망이라고 본 점, 사르트르 자신은 앙티로망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 그럼 그가 실존철학 자체를 부정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좀 더 공부해봐야할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앙가주망(로쟈는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의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다.)과 근대문학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시절의 소설가들의 계층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4-2
  대중문화가 발전 하면서 마이너리티 문학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에는 흑인여성작가, 그리고 아시아계 여성작가 나왔다고 한다.(요즘도 혼혈세대들이나 이주3세대의 문학이 유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잡지를 통해서 들었다.) 활력을 주나, 사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한국에서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정치)운동이 불가능하던 시대에 학생운동이 활발했는데,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 가능하게 되면서 학생운동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생운동은 대리적표현이었는데, 그것과 문학이 닮아 있다고 한다.(이점에서 그가 근대문학에게 부여하는 위치가 드러나는 듯하다.) 그와 친한 김종철은  

자신이 문학을 했던 것은 문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조차도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렸다.(p.49)

다고 말하는 것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문장이 그의 문학관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그건 정치성과 관련이 되어있어보이는데, 정치적 발언의 자유가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는 말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과 정치의 관련성을 계속 언급하고 있다. 일전에 한 비평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난 용산참사와 관련되어서 소설가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고 하는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요시다슈이치를 비난한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그와 고진과의 연관성을 진작하게 되었다. 강의를 듣던 대부분의 문학도들이 께름찍한 표정을 지었는데, 현재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거시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는 역설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세대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 시대 작가들이 시대를 리얼리즘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재학중인 교수님들이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는 점에서 그들도 이들과의 견해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4-3
  미학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칸트에 의해서다. 칸트가 감성과 감정이 지적·도덕적 능력(오성이나 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매개하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사고가 등장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감성이나 감정을 긍정하는 태도는 상공업에 종하사는 시민계급의 우위에서 나온 것이다. 소설은 '공감'의 공동체, 즉 상상의 공동체인 네이션의 기반이 된다고 한다.(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서 생각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설이 지식인과 대중 또는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공감'을 통해 하나로 만들어 네이션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베네딕트는  국민주의의 출현과 상상의 공동체의 창출의 주 원인을 특정 문자 언어(예를 들어 라틴어)에 대한 접근이 특권층에 제한되던 양상의 감퇴, "신의 지배(divine rule)"와 왕정 등의 정치개념을 폐지하려는 운동,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아래 인쇄기(printing press)의 출현(앤더슨은 이를 "인쇄자본주의(print-capitalism)"라고 불렀다.)을 꼽았다(위키백과)  

  옛날에는 종교, 도덕에 대하여 '시의 옹호'가 이뤄졌다면, 현대로 말하자면(근대) 정치적인 도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은 지적이고 도덕적인 것이다라고 한다.


4-4
  근대국가는 한문이나 라틴어와 같은 보편적인 지적 언어를 속어로 번역하면서 새로운 문어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언문일치는 감성적, 감정적, 구체적인 것과 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연결하는 도구다. 현 전 세계의 네이션은 자본주의적인 세계화(globalization) 에 의해서 진행중이지만, 이것에 반발하는 것은 내셔널리즘(민족주의)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종교의 원리주의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이 지점에서 자꾸만 김규항이 생각난다.)

 4-5
  소설은 인쇄기술과 함께 발전을 해왔다. 근대소설은 묵독되는 것이다. 내면적이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그러나 소세키의 소설이나 후타바테이의 『뜬구름』,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낭독함으로써 그 진가가 발휘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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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시청각적 미디어가 들어오면서 그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얼리즘의 성격이 '3인칭 객관적 묘사'라면 화자가 존재하게 되면 현전성이랄까 '깊이'같은 것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일본작가가 '사소설'에 집착하는 것은 3인칭 객관묘사라는 '상징형식'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3인칭 소설을 의심하면서 사르트르의 소설이 생겨났고,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도 1인칭으로 말한다고 한다. 모더니즘 소설은 영화에 대항하여 이루어진 소설의 소설성 실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근대소설이 네이션 형성의 기반이 되었지만 현재 소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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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착증후군 2010-01-04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벤야민는 순수언어로의 회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번역이라고 했으며, 그래서 복제를 중요시했다.

안착증후군 2010-01-05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네딕트/ 로쟈의 문학에 대한 견해(러시아문학에 대한 단상들)를 대입해서 생각

안착증후군 2010-01-0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짓말하지마 - 너도 요즘 시집을 읽으면서 좌절하고 있잖아

안착증후군 2010-01-06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은 근대 개념의 차이성을 지적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70
김민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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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를 평가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교수님의 말을 충분히 존중한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작가를 평가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그 모순을 말해준다.

  한 친구와 술자리에서 김민정의 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실망조로 그녀의 시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했다. 아마도 계간지에 실렸던 그녀의 시집을 보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친구는 반박조로 김민정 스스로가 예전 시에 비해 훨씬 더 좋아졌다고 했단다. 

  권혁웅의 문제적 발언의 중심에 있는 이가 바로 김민정, 김경주다. 미당문학상 심사평에서는 김경주의 필연성없는 글쓰기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언어의 질서에 대한 장난스런 일탈들은 때로 지나쳐보이기도 하고 때로 필연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렵고 알 수 없는 시라는 의견도 있었다. 2009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앙일보>

  이렇듯 김경주가 더 극단적으로 자신의 시를 실험했다면, 왠지 김민정은 우회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전히 그녀의 발랄한 환유적 이미지들이 좋다. 그러나 예전에 느낄 수 있었던 극단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아쉬움을 자아내었다. 

  김민정의 첫 시집『날으는 고슴도치아가씨』에서의 아가씨가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의 그녀라는 모호한 호칭으로 바뀐 듯한 느낌이다. 아가씨는 고정된 호칭이었다면 그녀는 누구에게나 붙여질 수 있는 단어로 좀 더 보편성을 지닌 듯한 느낌이다.

  예전에 어느 분이 양익준이 <똥파리>를 만들고 난 뒤부터는 가벼운 몸짓을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왠지 이 말이 김민정에게 드러맞다는 생각을 생각을 해본다. 

   그녀의 첫 시집이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뤄져 있다면 - 이장욱은 '아니,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도 자기 자신을 견뎌낼 수가 없다는 투다.'라고 한다. - 이번 시집에서는 자신에 대한 가혹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의 첫 시집에서는 음부, 음모에 대한 혐오성을 띄고 있었는데, 이장욱은 이것을 전래의 살부 욕망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것이 그녀의 중요한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 시집을 읽어보면 그녀의 그러한 성격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세상과 타협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큰 변화라면 큰 변화다. 그녀는 세상과 섹스를 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아가씨에서 그녀라는 대전제의 여자로 변화는 과정의 표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녀의 시 속에서 읽힐 수 있는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면 환상적 자유가 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 필연성을 고려하려는 그녀의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서 가독성이 더 높아졌는지도 모른다. 리듬감의 생성도 그와 무간하지 않을 것 같다.

  특히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의 제4부 <뛰는 여자 위에 나는 詩> 부분에서 그녀의 시작적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시는 이런 것이다는 그녀의 생각이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녀의 시집에서 들 수 있는 성격을 '유머'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시집에서의 유머는 상스러운 말들에서 왔다면 이번 시집에서의 유머들은 제시된 이미지들의 간극에서 온다고 해야될까, 아무튼 그녀의 시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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