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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 ㅣ 바리에테 5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근대란? <역사> 역사의 시대 구분의 하나. 근고와 현대의 중간 시대를 이르는 말이다.
→ 그가 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근대 문학에 어떠한 비중을 두었는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즉, 그에게 문학이란 어떠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는가?
2.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으로서의 번역 (제1장)
* 일본문학 속의 아이러니
그는 주코프스키의 방법("원문을 완전히 부수어, 자기 나름의 시형으로 단지 의미만을 번역한다)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능력이 없었던 그는 축어적인 번역(벤야민은 그것이 순수언어로의 회귀라고 한다.)을 하게 된다. 그는 투르게네프의 「밀회」와 고골,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 젊은 층에게 영향을 준 작품은 투르게네프의 「밀회」이다.
(중략) 청년들에게 청신한 인상을 주었고, 종래의 문장 감각에 익숙한 눈에는 어색하고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 문체가 그들 젊은 감수성에는 새로운 표현의 도를 보여주었다.(근대문학의 종언, p.19)
그러나 투르게네프는 리얼리즘 소설이 유행하고 있었다. 리얼리즘 문학이란 화자가 있음에도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법의 고안에 있다. 이에 반해서 고골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바흐친이 강조한 '카니발적인 세계감각'이 유지되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카니발적인 세계감각'이란 게사쿠(에도시대의 통속 오락소설)라기 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 하이카이(익살, 농담, 해학. '하이카이렌가'의 준말이기도 함)라는 일본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p.27)
이렇게 리얼리즘 문학으로 갔던 일본은 미술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 사진기의 도입으로 일본회화의 도음으로 인상파 미술로 변화했던 서양과는 달리 일본은 본격적으로 인상파 이전의 서양미술을 규범삼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 『뜬구름』은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지만, 후타바테이는 고골의 선성에 있었다. (고진의 견해인 듯)
→ 언문일치를 꾀했던 그의 글쓰기가 우리나라에 준 영향(우리나라의 최초의 근대소설을 이광수에게 초점을 둘 때, 언문일치를 시도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3. 문학의 쇠퇴
바흐친이 중요시한 것이 '카니발적 세계감각'이었다. 소셰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같은 문장이야말로 전형적인 사생문이라고 한다.
소세키는 에세이에서 사생문의 특징 중 하나를 어떤 '정신태도'에서 찾고 있다. "사상문 작가가 타인의 일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귀한 사람이 천한 사람을 보는 태도도 아니다. (중략) 남자가 여자를 보고, 여자가 남자를 보는 태도도 아니다. 즉 어른이 아이를 보는 태도이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이다."(「사생문」) .
프로이트는 유머가 괴로워하는 자아(아이)에 대해 초자아(부모)가 그런 것은 별 것 아니라고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루쉰 혹은 마르케스와 고골과 소세키를 동등선에서 보고 있다. 소세키의 『문학론』은 당시 근대문학의 완전히 비주류에 놓여있던 것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었다. 근대의 종언은 나카가미 겐지의 죽음으로서 그 상징성을 지녔다. 나카가미 겐지, 쓰시마 유코(다자이 오사무의 딸),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다카하시 겐이치로 등이 등장했으며 이들을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르네상스적 문학을 회복한 것으로 보았다.
→ 가라타니 고진은 바흐친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있는 느낌이다. 그 점에서 소세키와도 대비점에 놓인다.
4. 근대문학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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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 것은 근대문학이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말은 소설 또는 소설가가 중요했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앙가주망을 주창했던 사르트르의 위치에 주목한다. 1960년대부터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이 보급되었는데 그것은 로망도 아니고 철학도 아닌 저작을 의미한다.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은 이미 근대문학로서의 소설(앙티로망을 포함하여)이 끝났다는 의미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어떤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착오라고 한다.
(의문이 가는 점은 그가 『구토』를 최초의 앙티로망이라고 본 점, 사르트르 자신은 앙티로망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 그럼 그가 실존철학 자체를 부정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좀 더 공부해봐야할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앙가주망(로쟈는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의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다.)과 근대문학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시절의 소설가들의 계층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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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가 발전 하면서 마이너리티 문학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에는 흑인여성작가, 그리고 아시아계 여성작가 나왔다고 한다.(요즘도 혼혈세대들이나 이주3세대의 문학이 유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잡지를 통해서 들었다.) 활력을 주나, 사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한국에서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정치)운동이 불가능하던 시대에 학생운동이 활발했는데,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 가능하게 되면서 학생운동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생운동은 대리적표현이었는데, 그것과 문학이 닮아 있다고 한다.(이점에서 그가 근대문학에게 부여하는 위치가 드러나는 듯하다.) 그와 친한 김종철은
자신이 문학을 했던 것은 문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조차도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렸다.(p.49)
다고 말하는 것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문장이 그의 문학관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그건 정치성과 관련이 되어있어보이는데, 정치적 발언의 자유가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는 말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과 정치의 관련성을 계속 언급하고 있다. 일전에 한 비평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난 용산참사와 관련되어서 소설가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고 하는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요시다슈이치를 비난한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그와 고진과의 연관성을 진작하게 되었다. 강의를 듣던 대부분의 문학도들이 께름찍한 표정을 지었는데, 현재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거시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는 역설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세대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 시대 작가들이 시대를 리얼리즘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재학중인 교수님들이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는 점에서 그들도 이들과의 견해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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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칸트에 의해서다. 칸트가 감성과 감정이 지적·도덕적 능력(오성이나 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매개하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사고가 등장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감성이나 감정을 긍정하는 태도는 상공업에 종하사는 시민계급의 우위에서 나온 것이다. 소설은 '공감'의 공동체, 즉 상상의 공동체인 네이션의 기반이 된다고 한다.(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서 생각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설이 지식인과 대중 또는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공감'을 통해 하나로 만들어 네이션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베네딕트는 국민주의의 출현과 상상의 공동체의 창출의 주 원인을 특정 문자 언어(예를 들어 라틴어)에 대한 접근이 특권층에 제한되던 양상의 감퇴, "신의 지배(divine rule)"와 왕정 등의 정치개념을 폐지하려는 운동,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아래 인쇄기(printing press)의 출현(앤더슨은 이를 "인쇄자본주의(print-capitalism)"라고 불렀다.)을 꼽았다(위키백과)
옛날에는 종교, 도덕에 대하여 '시의 옹호'가 이뤄졌다면, 현대로 말하자면(근대) 정치적인 도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은 지적이고 도덕적인 것이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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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국가는 한문이나 라틴어와 같은 보편적인 지적 언어를 속어로 번역하면서 새로운 문어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언문일치는 감성적, 감정적, 구체적인 것과 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연결하는 도구다. 현 전 세계의 네이션은 자본주의적인 세계화(globalization) 에 의해서 진행중이지만, 이것에 반발하는 것은 내셔널리즘(민족주의)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종교의 원리주의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이 지점에서 자꾸만 김규항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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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인쇄기술과 함께 발전을 해왔다. 근대소설은 묵독되는 것이다. 내면적이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그러나 소세키의 소설이나 후타바테이의 『뜬구름』,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낭독함으로써 그 진가가 발휘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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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시청각적 미디어가 들어오면서 그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얼리즘의 성격이 '3인칭 객관적 묘사'라면 화자가 존재하게 되면 현전성이랄까 '깊이'같은 것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일본작가가 '사소설'에 집착하는 것은 3인칭 객관묘사라는 '상징형식'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3인칭 소설을 의심하면서 사르트르의 소설이 생겨났고,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도 1인칭으로 말한다고 한다. 모더니즘 소설은 영화에 대항하여 이루어진 소설의 소설성 실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근대소설이 네이션 형성의 기반이 되었지만 현재 소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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