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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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정치적으로는 이미 인종 차별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인도계 미국인으로서 교수 아버지를 둔 저자는 중산층으로 자라고 살아왔기 때문에 전형적인 흑인 사회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저자는 흑인 하층민의 삶을 연구하기 위해 흑인 사회로 접근하게 된다.

그 안에서 우연찮게 갱단 두목을 만나 친분을 쌓게 되고, 점차 아파트 주민들과도 친해지면서 그 사회의 일상과 내면을 목도하게 되면서 그들 사회를 이해하게 된다. 갱단은 주로 마약 거래와 이른바 주민과 상가에 대한 ‘보호세’로써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들은 갱단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갱단은 그들에게서 돈을 강탈해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그들을 보호해주기도 한다. 이들 갱단은 그 사회에서 하나의 작은 정부이며, 작은 경찰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흑인들의 마약사범율, 범죄율, 미혼모율은 매우 높다고 한다. 이 책을 보면 갱단에서 활동하는 흑인들이 모두 학력이 낮고 지식이 짧은 것만은 아니다.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거나 대학 중퇴한 자들도 많다. 우리 관점으로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 그만큼 출세하고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에 비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그 많은 부조리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비록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전혀 사회학적이지 않다. 마치 한편의 소설처럼 재미있고, 읽는 속도감이 매우 빠르다. 그러면서도 미국 흑인 사회의 차별과 부조리, 아픔 등을 고스란히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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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추억
사이 몽고메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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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호그우드는 저자가 길렀던 돼지의 이름이다. 유명한 동물학자이며 칼럼이스트인 저자 사이 몽고메리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보다는 동물과 더 잘 교감하고 어울렸던 조금은 특이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크리스)는 무녀리로 태어났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돼지는 젖꼭지가 12개가 있고, 이 중 10개에서 젖이 분비되는데, 새끼가 10마리 이상 태어났을 때 젖꼭지를 차지하지 못하는 약한 새끼를 무녀리라고 한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무녀리는 다른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로부터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




몽고메리는 이웃에게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한 무녀리 한 마리를 얻어와 유명한 지휘자의 이름을 빌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라고 이름 짓고 정성을 다해 보살펴주었다. 우려했던 거와 다르게 크리스는 무럭무럭 잘 자라게 되고, 동네의 일약 스타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도 출현하게 된다.




보통 육식용으로 쓰이는 돼지는 6개월 정도 산다고 한다. 대략 체중이 100kg 정도 이르면 도축되기 때문이다. 과연 돼지의 정상적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하고 저자도 궁금해 한다. 크리스는 300kg 이상의 몸무게를 자랑하고, 14년을 살다가 자연사했다.

크리스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크리스를 사랑했다. 크리스를 보기 위해 찾아오고, 크리스를 만지고 쓰다듬고, 크리스를 위해서 음식찌꺼기를 모아서 갖다 주었다.




“크리스의 매력은 알아보기 쉬웠다. 어렸을 때는 귀여웠고, 성장한 다음에는 커다란 체구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크리스에게 음식찌꺼기는 사람들에게 절약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크리스를 만난 일은 어린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사람들은 크리스가 행복하기 때문에 녀석을 사랑했다. 크리스가 무척 돼지답기 때문에 좋아한 것이다. 사람들은 크리스가 대단히 인간적이기 때문에 녀석을 사랑했다. 크리스의 관대함과 유머 감각을 좋아했다.”(p.288)




요즘에는 베트남 원산의 꽃돼지라고 해서 애완용으로 기르는 돼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돼지라고 하면 애완동물보다는 가축에 훨씬 가깝다. 내가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당시 시골에는 거의 집집마다 마당 한켠에 돼지우리가 있어서 음식찌꺼기를 모아서 먹였었다. 아이들은 들이나 강에서 개구리나 물고기를 잡아 돼지우리에 던져주면 돼지가 게걸스럽게 우적우적 먹어댔다. 그러다가 애경사가 있으면 그 돼지를 잡아서 음식재료로 썼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돼지는 더럽고 미련하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돼지는 개보다 훨씬 더 후각이 발달해 있고, 기억력이 좋으며, 깨끗한 동물이라고 한다. 크리스는 한 번 본 사람은 수년이 지나도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돼지에 대해 생각했던 편견이 많이 사라지고, 돼지를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책의 앞뒤 속표지에 있는 크리스의 유머스러운 사진들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저녁 식탁에 오른 돼지고기 반찬에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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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포인트 경제학 - 글로벌 경제 위기의 해법을 제시한다
알프레드 박 지음 / 팜파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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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를 들으니 금년 2/4분기 경제 실적이 전보다 나아졌다고 하면서 경기가 바닥을 치고 점차 회복세에 들어왔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도 많이 회복했고, 주식 시장을 보아도 주가가 많이 올랐다. 사람들이 다시 주식과 펀드로 몰린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하지만 우리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론에서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적인 불황을 몰고 온 경제 사태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해보아야 할 것 같다.

<오메가 포인트 경제학>은 이 물음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책임에 분명하다.




인간 문명사회를 유지하는 요소를 들자면 무수하겠지만, 그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돈’이다. 돈은 마치 물이나 공기와 같아서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물욕이 없는 청빈한 삶을 산 사람이나 관리로서 가난을 감수한 청백리들을 외경하고, 안분지족이라는 말을 지향해야할 가치로 여겨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돈이란 우리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반드시 가져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것을 인정한 후에 이 책을 펼쳐보자.




저자는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경제체제’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다.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경쟁자본주의>가 아니라 ‘보이는 손’에 의한 <통제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보이는 손’은 극소수에 의해 전 세계의 대부분의 부를 차지하는 ‘소수협력체계’와 ‘소수협력자’를 지칭한다. 그렇다고 해서 ‘음모론’에서 말하는 특정한 민족으로 구성된 특정한 단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생산과 소비를 담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들이 경제  성과의 열매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들과 다투고 있기 때문이며, 그들에게 우리가 마땅히 차지해야할 열매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들의 출현은 ‘인간 본성에 근거하여 장기간에 걸쳐 생성된 사회 조류의 결과물’(p.228)이라고 진단하고, 앞으로 경체 체제는 그들이 더 유리하게 세계 경제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저자는 그들이 출현하게 된 원인과 과정을 20세기 ‘세계 경제의 4대 혁신’을 거론하면서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은 현재 세계 경제 체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부분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소수의 거대한 금융 자본이 전 세계적 규모로 실물 자본을 종속시키고 좌지우지하게 된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케인스가 주창하였고 그 후 엄청나게 돈을 찍어내었던 ‘수요 위주의 경제 체제’라고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땅히 차지해야 할 경제성과를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여론과 언론을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고, 우리들 대부분은 감정적 오류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불리한 위치에 있다. 언뜻 보면 백전백패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저자가 쓰고 있는 이 책의 핵심은 ‘이성과 지식에 근거한 분석과 분별력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가장 경계하는 것은 맹목적인 감정적 오류이다. 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분명한 논리와 이성을 필요로 하는데, 이 논리와 이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 이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통섭’이다.




우리 대중과 그들 소수협력자와의 대결을 ‘게임이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겉으로 보아서는 주도권을 잡고 있는 그들이 반드시 이길 것 같지만, 우리 대중은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우선권’이라는 것이다. 상호간 대결에서 먼저 공격할 수 있는 우선권을 우리가 갖고 있으며, 선제공격의 양상에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게임의 전체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 경제 체제가 ‘금융자본주의’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 체제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이 체제를 비난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체제를 인정하고 이 흐름 속에서 최대한 그 성과물을 차지하는 방도를 구하는 것에 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정상적인 생산과 알뜰한 소비를 통해서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들에게 이용만 당할 뿐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투자’를 해야 하며, 투자를 통해서 그들과 대결하고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한 제일 요소는 바로 ‘미래 예측’이다. 정확한 미래 예측은 100%의 투자 성공을 가져올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일정한 법칙으로 수렴된다고 한다. 경제 역시 마찬가지인데, 저자는 경제 원리를 자연법칙을 이용하여 해석하고 있다. 이 점이 다른 경제학자와 다른 저자만의 매우 독특한 점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이 책에서 이른바 ‘카오스이론’으로 알려진 ‘혼돈이론’을 가지고서 경제를 해석하고 예측한 부분은 우리가 매우 주목해야 할 곳이다. 혼돈이론에 따르면 일정한 계수가 증가하면 한 점에 수렴되던 것이 분할하기 시작하다가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완전한 불규칙으로 흔들리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관절하다 보면 그 불규칙한 흔들림이 어느 일정한 범위 내에 수렴하게 되고, 그 범위 내에서도 특히 집중되는 부분이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렇게 궁극적으로 수렴되는 부분을 일컬어 ‘오메가 포인트’라고 한다.

저자는 경제 역시 ‘혼돈이론’으로 설명 가능하고, 오메가 포인트로 수렴하는 특성을 이용해서 미래 경제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예측에 따라서 투자를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기도 하다.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직접적으로 내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그 동안 여러 가지 경제학 서적을 읽어보았다. 어떤 책은 1930년대의 공황에 비견하면서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불황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써 놓기도 했고, 어떤 책은 앞으로 슈퍼인플레이가 올 것이므로 이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또는 여전히 케인스식으로 급격하게 유동성을 공급해야 이 불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 책도 있었고, 아예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책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처럼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 경제 흐름과 그 문제점을 설명하고 미시적으로 투자 방향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책은 별로 없었던 듯 싶다. 물론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이 모두 옳은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그것을 판단할만한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비판서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그만큼 이 책을 전문가나 비전문가, 정책당국자 모두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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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 - 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
임윤수 지음 / 불광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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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의 윤회설에 의하면 태어남과 죽음은 계속 반복된다고 한다. 이것이 실제적인지, 관념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나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한번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은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이다. 또한 영원한 이별을 뜻하기에 누군가를 그 길로 떠나보내야 하는 살아있는 사람들도 죽음 앞에서는 아프고 슬플 수밖에 없다.

전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강원용 목사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분이 질병으로 아들을 여의면서 그때의 슬픔을 써놓은 부분이 생각난다. ‘아들이 주님의 곁으로 간 것이 결코 슬퍼할 게 아니고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건만 왜 슬프고 눈물이 그치질 않는 것일까? 나의 신심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하고 자신을 의심하고 책망하다가 죽음이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간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에 슬플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윤회를 하여 다시 태어날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지도 모르지만, 죽음이란 적어도 이승에서만큼은 영원한 이별을 뜻하고 영원한 단절을 가져오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 책은 깨달음을 얻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모범과 가르침을 남기신 열일곱 분 스님들의 ‘다비식’에 관한 풍경을 사진을 곁들여 써 놓은 책이다. 장례식을 불가에서는 다비식이라고 부른다.




양면으로 되어 있는 책의 앞표지에 다비식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열반한 스님의 몸을 태울 연화대가 준비되어 있고, 그곳를 향하여 여러 깃발과 만장을 든 스님들의 행렬과 상여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하는 스님들과 맨 뒤에 꽃으로 장식된 상여를 맨 스님들의 행렬까지 다비식을 직접 본 적이 없어도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불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사승의 계보나 절에 따라서 여러 문중이 나뉘는 듯하다. 열일곱 차례의 다비식이 대체로 비슷하면서도 상여의 모양이나 연화대를 채우는 땔감이나 화장시키는 방법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땔감으로 생나무를 쓰는 곳, 마른 장작을 쓰는 곳, 볏짚을 쓰는 곳, 새끼줄을 쓰는 곳 등등 다양하다.




이 책에 올라있는 다비식이 2003년부터인데, 전에는 죽은 스님의 법신이 다 탈 때까지 목탁을 두드리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외쳤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독경을 앰프로 대신하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없어졌고, 심지어는 사찰에서 직접 장례식을 치루지 않고 전문 장례업체에 맡기는 경우까지 있어서 불가의 인심이 전과 같지 않음을 저자는 아쉬워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는 것에 따라 풍속도 달라지는 것이 정한 이치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속세와는 다른 불가에서조차 박하게 변한다는 것은 조금 아쉽기만 하다.




내용 중에 명안 큰스님 다비식에 찾아온 하얀 개와 의수로 눈물을 훔치는 분, 땅바닥에 엎드리어 오열하는 백발의 할머니의 사진을 보면 저절로 숙연해지고 가슴이 찡해진다.




세태를 보면 불가에서도 다비식 풍경이 점차 사라질지 모르겠다. 그때쯤이면 이 책의 기록들이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쓰여 있는 여러 스님들의 오도송과 열반송을 읽으면서 제행무상(諸行無常)하다는 불가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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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알기 쉽게 풀어쓴 (한글판 + 영문판)
E. H. 카 지음, 이화승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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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p.45)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事實)을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실은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로 나뉘어진다. 역사적 사실을 사실(史實)이라고도 하는데, 사실(事實)이 사실(史實)이 되는 것은 순전히 역사가의 손에 달려 있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 가운데서 역사과정 상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뽑아 해석함으로써 사실(事實)이 사실(史實)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가는 과거 사실 가운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어떤 기준에 따라서 선택하고 여기에 해석을 가할까?

여기에서 기준은 순전히 역사가의 주관적인 견해에 좌우되는데, 이 주관적인 견해를 고상하게 표현하여 ‘역사철학’이라고 말한다.




역사가 역시 한 시대와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일개인일 뿐이므로, 그의 견해는 반드시 시대적, 공간적 한계와 사회적 위치에 따른 편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까닭에 하나의 과거 사실을 가지고 역사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평가와 해석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현실에서 볼 수가 있다. 또한 역사가가 국수주의나 국가주의, 파시즘에 동조하여 복무할 때에는 역사가 오히려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 공정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역사가의 주관에 따라 과거의 사실을 선택하고 평가, 해석하는 것이 역사라고 모두 인정해버린다면 주관주의나 회의주의에 빠져 비현령이현령(耳懸鈴鼻懸鈴)의 함정에 떨어지게 된다.




그럼 우리는 어떤 기준을 세우고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먼저 역사의 의미와 필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현재를 더 잘 이해하고 미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방책으로써 그 존재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당면 과제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과거 사실에 대한 역사 해석 속에 투사함으로써 역사가 서술된다는 말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에 의해서 기술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역사는 훌륭한 역사가 있고, 해악이 되는 역사가 있다. 이를 구별하는 것은 사실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에드워드 카는 ‘목적의 타당성’에 의해 올바른 역사를 구분해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목적의 타당성의 기준은 바로 ‘진보로서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찰해보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굴곡은 있었지만, 인간의 생존권, 천부적 인권, 개인의 자유, 평등, 인간답게 살 권리 등이 끊임없이 확충되어 왔다. 이것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며, 미래에도 역시 추구해야만 할 가치들이다.

‘진보로서의 역사’는 여기에서 열거하고 있는 덕목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역사를 말하며, 이것이 바로 좋고 올바르며 훌륭한 역사이다.

에드워드 카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역사 기술에 중요성의 기준을 주고, 참된 것과 우연한 것을 구별하는 표준을 마련해 주는 것”(p.193)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덕목을 추구하는가의 여부는 역사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단편적인 예로 현 정권이 과연 역사 기준으로 보아 미래지향적인 정권인가 아닌가는 이 덕목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닌가로 판단할 수 있으며, ‘진보로서의 정권’이 아니라면 사실 우리는 좋고 올바르며 훌륭한 정권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질문해보자. 우리는 과연 참된 정권 하에 있는가, 우연한 정권 하에 있는가?

에드워드 카는 “미래를 향한 진보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해버린 사회는 곧 과거에 스스로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무관심해 질 것”(p.205)라고 말하고 있다. 이 한 줄의 말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지어보면, 역사는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p.245)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올바른 역사가 아니다. 도움이란 ‘진보’에 대해 도움을 주는 것을 뜻하며, ‘진보’는 이성의 확장과 인권의 보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성의 확장과 인권 보장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역사는 사이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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