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 알기 쉽게 풀어쓴 (한글판 + 영문판)
E. H. 카 지음, 이화승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p.45)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事實)을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실은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로 나뉘어진다. 역사적 사실을 사실(史實)이라고도 하는데, 사실(事實)이 사실(史實)이 되는 것은 순전히 역사가의 손에 달려 있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 가운데서 역사과정 상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뽑아 해석함으로써 사실(事實)이 사실(史實)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가는 과거 사실 가운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어떤 기준에 따라서 선택하고 여기에 해석을 가할까?

여기에서 기준은 순전히 역사가의 주관적인 견해에 좌우되는데, 이 주관적인 견해를 고상하게 표현하여 ‘역사철학’이라고 말한다.




역사가 역시 한 시대와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일개인일 뿐이므로, 그의 견해는 반드시 시대적, 공간적 한계와 사회적 위치에 따른 편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까닭에 하나의 과거 사실을 가지고 역사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평가와 해석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현실에서 볼 수가 있다. 또한 역사가가 국수주의나 국가주의, 파시즘에 동조하여 복무할 때에는 역사가 오히려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 공정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역사가의 주관에 따라 과거의 사실을 선택하고 평가, 해석하는 것이 역사라고 모두 인정해버린다면 주관주의나 회의주의에 빠져 비현령이현령(耳懸鈴鼻懸鈴)의 함정에 떨어지게 된다.




그럼 우리는 어떤 기준을 세우고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먼저 역사의 의미와 필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현재를 더 잘 이해하고 미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방책으로써 그 존재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당면 과제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과거 사실에 대한 역사 해석 속에 투사함으로써 역사가 서술된다는 말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에 의해서 기술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역사는 훌륭한 역사가 있고, 해악이 되는 역사가 있다. 이를 구별하는 것은 사실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에드워드 카는 ‘목적의 타당성’에 의해 올바른 역사를 구분해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목적의 타당성의 기준은 바로 ‘진보로서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찰해보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굴곡은 있었지만, 인간의 생존권, 천부적 인권, 개인의 자유, 평등, 인간답게 살 권리 등이 끊임없이 확충되어 왔다. 이것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며, 미래에도 역시 추구해야만 할 가치들이다.

‘진보로서의 역사’는 여기에서 열거하고 있는 덕목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역사를 말하며, 이것이 바로 좋고 올바르며 훌륭한 역사이다.

에드워드 카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역사 기술에 중요성의 기준을 주고, 참된 것과 우연한 것을 구별하는 표준을 마련해 주는 것”(p.193)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덕목을 추구하는가의 여부는 역사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단편적인 예로 현 정권이 과연 역사 기준으로 보아 미래지향적인 정권인가 아닌가는 이 덕목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닌가로 판단할 수 있으며, ‘진보로서의 정권’이 아니라면 사실 우리는 좋고 올바르며 훌륭한 정권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질문해보자. 우리는 과연 참된 정권 하에 있는가, 우연한 정권 하에 있는가?

에드워드 카는 “미래를 향한 진보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해버린 사회는 곧 과거에 스스로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무관심해 질 것”(p.205)라고 말하고 있다. 이 한 줄의 말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지어보면, 역사는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p.245)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올바른 역사가 아니다. 도움이란 ‘진보’에 대해 도움을 주는 것을 뜻하며, ‘진보’는 이성의 확장과 인권의 보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성의 확장과 인권 보장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역사는 사이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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