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열전, 황제 - 제위의 찬란한 유혹, 중국 황실의 2천년 투쟁사
샹관핑 지음, 차효진 옮김 / 달과소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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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국 전국 시대 진나라의 영정이 천하를 통일한 후 자신의 업적이 상고의 3황과 5제보다 더 월등하다고 해서 이들을 합해 '황제'라고 이름하고, 자신은 처음이므로 '시황제'라 하고, 계속해서 2세 황제, 3세 황제,,, 만세황제라고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2세에서 진이 쫑날 줄을 알기나 했을까?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는 중국의 역사를 보면 참으로 많은 나라들이 명멸했고, 따라서 황제라고 일컬었던 자들도 많았다. 이 책에서 그 숫자를 583명이라고 했으니, 정말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하늘 아래 그보다 높은 자는 없다고 하는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최상의 부귀공명을 이루었던 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현재의 나는 과연 그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행복한가, 불행한가?

 

이 책은 먼저 선정을 베푼 제왕들로 출발한다. 법을 공정하게 시행하고, 간언을 잘 받아들이며, 근검절약하고,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며, 용인에 능한 제왕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주로 놀기에 바쁜 제왕들과 엉뚱하게 죽은 제왕들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절대권력에 취했던 황제들 중 선정을 베풀어서 후대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자보다는 악행으로 더러운 이름을 남긴 자들이 더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 처했는가에 따라, 또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따라 선과 악이 나뉘게 되는데,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 아마도 악행을 하는 쪽으로 더 기울지 않나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관계는 바로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 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황제들을 보면 제일 무서운 존재가 바로 부모, 자식 그리고 형제들이었다. 절대권력을 소유하기 위해서 부모를 시해하고, 자식과 형제들을 죽여버리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아래 누구도 믿고 의지할 수 없었던 그들은 참으로 외로운 존재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런 불안한 마음을 잊기 위해서 더 향락과 사치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역사를 보면 황제가 악행을 하면 그 나라는 분명 효율성이 떨어지고 혼란해진다. 결국 나라가 망하고, 전면적인 혼란기에 접어드는 경우가 많다. 5호16국 시대와 5대10국 시대가 대표적인데, 이때 특히 악행을 하는 황제가 많이 출현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혼란기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가치관이 무너지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지는데, 이런 것이 황제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인생에서 승리자인가? 나는 서슴없이 오래 산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서문에 보면 30년 이상 재위한 황제는 21명인데 반하여 1년 미만은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절대권력과 극상의 향락을 누렸다고 하지만 과연 그들은 인생의 승리자라고 볼 수 있는가?

 

행복이 무엇인가? 천하의 소유라는 富와 황제라는 貴를 갖고서 무소불유, 무소불위하지만, 누구도 믿지 못하고,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몰라 하루하루가 불안한 그들이 행복했는가, 아니면 자동차 기름값과 애들 학원비를 걱정하지만 부모형제 무탈하고 언제나 화목한 가정이 있는 내가 더 행복한가?

 

이 책은 흥미진진해서 450페이지가 넘는 양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자가 얼마나 많은 역사서를 읽고서 이 책을 썼는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다만 카테고리를 나누어서 서술하다 보니까 같은 인물이 간혹 중복되어 나오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아서 중국 역사 전반에 대해 지식이 없으면 어수선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있었다. 또 옥에 티라면 교정이 제대로 안 되었는지 심심치 않게 오자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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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덕어미 자서전
백금남 지음 / 문학의문학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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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 가락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있었으면 더 재밌게 읽었을 뻔 했다. 또 판소리 계보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가야금 소리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면 믿겠는가?

이 책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임금에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수변청석천년상자사오동', 즉 물가의 바위 위에서 천 년을 살다 저절로 죽은 오동나무를 구해서 그것으로 가야금을 만들고, 현 위에 3일 동안 굶긴 자신의 아이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바른다. 그리고 그 가야금으로 임금 앞에서 연주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기이한 이야기다.

그 복수는 실패하고, 결국 손가락이 잘린 아이가 자라 가야금 명인 되어 그 임금 앞에서 연주하여 처절한 복수를 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무덤에 그 가야금과 같이 묻힌다.

 

이 책에서 '나'는 그 손가락 없는 가야금의 명인인 '조막손'의 손녀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서편제 시조격인 이날치의 후손이다. 이렇게 소리하기에는 좋은 혈통을 타고 났고, 신동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아버지는 북을 치는 난봉꾼이고, 어머니는 소리 연습으로 목을 지나치게 써서 버리고, 목을 버린 후 가야금에 몰입하나 손가락 관절염으로 그것마저 할 수 없는 비운의 국악인이다. 그런 어머니가 '소리의 몸'을 보아야 한다고 자주 말하지만, '나'는 어디 그런 것이 있냐고 믿지 않는다.

 

스승이 죽은 후 스승의 기념비를 세울 돈을 아버지가 주색으로 탕진해버리자 '나'는 소리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린다. 재기를 위해 마련해준 테레비 프로에서 심청가에다 자기 맘대로 쫓겨난 뺑덕어미 이야기를 만들어 붙여 논란을 일으킨다. 이것은 저자가 전통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야 하는가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부분으로 이해된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때려 죽이고 감옥에 들어간 후 환각에 시달리던 '나'는 무엇에 이끌려 가야금을 탄다.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입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그리고 드디어 '소리의 몸'을 본다.

 

이상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사실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편이어서 그런지 독후감 쓰는 것이 어색하다.

다만 우리 소리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문체가 세련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통나무 껍질처럼 투박하면서도 진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주제를 이끌어가는데 더 적당한 것 같다.

 

한 가지 옥 중의 티는 '내'가 무덤을 파기 위해 고창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고창역'에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사실 고창에는 역이 없다. 어쩌면 정읍역과 헷깔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날치가 독공했다는 무등산에는 '중심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증심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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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 256조 예산을 읽는 14가지 코드
정광모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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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된 뒤로 이 나라가 하도 답답했었는데, 이 책을 읽은 뒤로 ‘정말 이 나라가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이 책은 이 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막연히 짐작했던 예산에 대한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요충지를 선점했다는 것에 있다. 우리 인생에서나 세상살이에서나 ‘요점’이니 ‘포인트’니 하는 것들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나라 살림도 예외일 수 없다. 그것의 활용여부는 13척으로 130척을 무찔렀는가 아니면 130척으로도 13척에게 패했는가를 결정짓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것도 역시 이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별로 중요하지 않는 곳에 즉흥적으로 막 퍼부을 것이 아니라 정작 중요한 곳에 신중히 쓴다면 그 효과는 두 배, 세 배, 열 배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연 재해의 경우 예방 투자를 하면 3분의 1비용이면 끝날 것을 예방에 신경을 쓰지 않아 재산, 인명 피해를 감수하고도 그 복구비용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태안 앞바다에서 있었던 기름 유출 사고를 보자. 원유를 100% 바다로 수입하는 우리나라 사정 상 항시 유조선이 바다에 떠있고, 사고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05년에 긴급 해난 사고를 대비한 예비비가 20억 원에서 2억 원으로 삭감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10년 동안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불용예산’ 즉 쓸모없는 예산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정말 통탄할 일이다. 이렇게 결정한 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정도의 사고 밖에 하지 못하는 자가 그런 중차대한 일을 결정짓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저 불안할 따름이다. 만일 그 예산을 가지고 기름 제거 장비를 확보해두었다면 피해가 그처럼 처참하게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무고하게 자기의 목숨을 버린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 결정을 내린 자는 바로 ‘보이지 않는 살인자’인 것이다.




지금은 광우병소 수입문제 때문에 수면 아래도 잠잠해졌지만, 한 동안 ‘한반도 대운하’ 문제로 시끌시끌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형 국가에서 국토를 종단하는 운하가 필요한가 하는 것도 논의해야 할 문제고, 최고 수량과 최저 수량의 차이인 하상계수가 300이 넘는 나라에서 갈수기에 어떻게 운하에 필요한 물을 확보할 것인가와 폭우기에 그 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도 논의해야 할 문제다.

대운하의 공사비용이 적게는 20조 원에서 많게는 50조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수익성이 의문이다. 이 사업을 정부에서는 민간투자로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느 기업이 수익성이 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뻔한 이 사업에 뛰어들 것인가가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몇 개 기업이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는 말을 들었다. 왜?

이 책을 읽어보니 비로소 그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한마디로 ‘정말 쥑일넘들이군’하는 욕이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민간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정말 멋진(?) 법이 있다. 바로 ‘최소운영수입보장제’라고 한다. 이것은 국가가 투자한 기업의 손실분을 보전해준다는 것을 골자로 한 법이다. 공사 전에 수요예측을 하는데 공사 후에 실제로 운영해서 그 예측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액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자 기업은 사업이 잘 되건 잘 되지 못하건 손해가 거의 없다. 더구나 수요예측을 뻥튀기해서 제출하면 그만큼 이익이다. 그럼 정부가 투자 기업에 지원하는 돈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바로 여러분의 지갑에서 나간 세금이다.

대운하의 사기도 이런 방식이다. 겉으로는 민간투자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만일 그 돈을 교육비에 쓴다면 우리나라의 전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다 면제해줄 수 있다. 만일 그 돈을 기초학문 연구에 쓴다면 앞으로 20년 내에 노벨상을 5개 이상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살림살이일까?




이 책은 우리 국민이라면, 최소한 세금을 내는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상심하고 분노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해결책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을 모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작게는 내 돈을 아끼는 방법이고, 크게는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위한 방법이다. 1차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예산실명제’ 도입을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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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들) - 인간의 본성을 만드는 것은 유전자인가, 문화인가?
폴 R. 에얼릭 지음, 전방욱 옮김 / 이마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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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간 집단을 부양하는 지구의 능력은 거의 한계에 다달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과연 인간은 이 지구 상에서 영원히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매우 독특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 차이점은 유전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유전자에 의해 정해지는 것인가? 유전자가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인간들이 모두 동일한 본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과 문화적 차이에 따라서 달라진다. 심지어는 같은 유전자를 갖고 거의 동일한 환경에서 자라는 쌍동이조차 본성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아니며, '인간의 본성들'도 아니고, '인간의 본성(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간의 본성을 이루는 것은 유전, 환경, 유전-환경의 상호작용 이 세 가지라고 하였다. 만일 오직 인간의 본성이 유전자에 의해서 형성이 된다고 가정할 때 인간에 의해 유발된 수 많은 현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인간 본성의 변화에 기대야 한다면 정말 절망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유전적 진화는 수 많은 세대를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 본성을 생성하는 데 유전자뿐만 아니라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유전적 진화로 볼 때 현재 인류는 1만년 전 구석기 인류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1만년 전 농업 혁명이 일어난 후에 발달한 문화적 진화로 볼 때 인류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적 진화는 유전적 진화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본성을 형성하는데 문화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긍정할 때 1만년 전의 인간의 본성과 현 인류의 본성이 같지 않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500년 전의 인간과 현 인류의 본성도 같지 않으면 50년 전과도 같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앞으로 50년 후의 인간의 본성은 현재의 인간의 본성과도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화적 진화를 올바르게 유도할 수 있다면 인간의 본성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면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여 만들어진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처음 서양인이 이스터섬을 발견했을 때 그 섬은 이미 폐허로 변했고 많을 때는 2만 명에 달하였던 주민들이 당시에는 2천 명만이 살고 있었으며, 식인문화가 만연해있었다. 이는 인간이 환경에 맞추어 인간 의식을 변화시키지 못했을 때의 비참한 결과에 이른다는 것의 단적인 예이다.

이와 반대로 티코피아 섬에 사는 주민들은 그야말로 매우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과거에 티코피아에서도 이스터에서와 같은 문제점에 노출된 적이 있었으나 섬 주민들이 모두 토론을 하여 그 문제점을 해결하였다. 인간의 곡물을 축내는 돼지를 더 이상 기르지 않고 인구 증가율을 거의 0%로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거의 지구에 포화에 이른 인류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이스터와 티코피아의 다른 점은 인간의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이스터는 주민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 만큼 작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토론해서 의견을 일치할 수 없었고, 티코피아는 면적이 작아서 섬 주문이 한 자리에 모여 의견을 일치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즉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인 것이다. 지구에 살아가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첫걸음은 서로 토론하는 것이다. 또한 이 이전에 지구의 현적한 문제점을 인간이면 누구나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는 '의식적 진화'를 주창하고 있다.

 

이제 인간의 본성을 만드는 것은 '유전적 진화', '문화적 진화' 외에 '의식적 진화'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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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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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동안 국경을 맞대고 갈등과 협력을 같이 해온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개방과 국교수립 이후 한중 간의 교류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양적으로 많아지고 질적으로 밀접해졌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의 국민성에 대해 더 깊이 알아야할 필요성이 있다. 그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중톈의 <중국인을 말하다>라고 본다.




이 책에 의하면 중국의 국민성을 단적으로 표현하여 ‘체면 문화’와 ‘단체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인은 ‘죽어도 체면’이라고 한다. 체면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죽음이나 자신의 죽음도 불사한다는 말이다. 중국인이 그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까닭은 단체 의식 때문인데, 단체 의식이란 단독의 개인은 존재 가치가 없고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개인만이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타자의 시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타자의 시선에 잘 비치기 위해서 자신의 얼굴과 모습을 꾸며야 할 필요성이 있고, 이것이 바로 체면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만한 관계를 갖고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서는 자신이 체면을 갖추는 것만이 아니라 마주한 타자의 체면을 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에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너무 앞서면 사람들이 시기를 하고 너무 뒤처지면 못난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이것이 바로 집단 속에 개인이 녹아있는 중국인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덕목에 인정과 의협심이 있다. 인정도 체면과 관계가 매우 밀접한데, 인정을 베푼다는 것이 곧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세를 잘한다는 것은 인정에 통달한다는 말과 같다. 인정을 잘 베푸는 것이 곧 덕을 쌓는 것이며, 덕이 쌓여 많은 것은 처세를 잘한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이상은 중국인의 특성을 그야말로 ‘대강’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것들은 중국인만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비롯해서 보편적인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중국인 저자 입장에서 중국인을 바라보고 해석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의 박학다식과 걸출한 말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중국인들의 특성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단지 너무 많은 예와 설명을 곁들이다보니 글에 속도감이 떨어져서 조금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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