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게 또다시 리나 이모의 잔상을 떠올렸다. 한영을 대하는 태도,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묻지 않고, 설사 뭔가를 알게 됐더라도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자세,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두는 자세가 꼭 닮아 있었다. - P131

이모는 잠시 놀란 눈을 하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특유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로소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한영은 그제야 자신이 며칠 동안 숨도못 쉴 만큼 지독한 압박감에 시달려왔음을 깨달았다.
- P147

심지어는 한영에게조차. 한영은 리나 이모의 침묵이 어쩌면 한없는 이해와 관용에 가까운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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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불러도 될만큼.
나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지금으로부터 보름이후의 삶에 대해. 그 길고 막막한 시간 앞에서 소원을 빌어보려고 해봤지만 그럴수없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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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좋은 사람은커녕 심지어 연애와 관련된 그 어떤 소원도 빌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미래를 기약하기 힘든 게이라는 특수성을지니고 있다고 한들 삼십대 중반이 되도록 단 한 번도 그런 소망을풀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조금 기이한 일이기는 했다.  - P71

"한영아, 도대체 내 문제가 뭘까 나 그렇게 별로냐?"
"아니, 멀쩡하지. 얼굴도 못 봐줄 정도는 아니고, 키도 작지 않고, 지 앞가림도 잘하고. 근데 너는 결정적으로 용기가 없어."
"무슨 용기."
"상대한테 투신하는 용기, 연애가 별거니? 그냥 눈 꽉 감고몸 던져버리는 거야. 근데 넌 겁이 너무 많아, 발가락 하나 걸치질못하는데 누구랑 연애를 하냐." - P72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성격이 곧 운명이라고. 취향? 애인이 뭐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냐.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줄 배경을 만들려는 노력, 좋은 사람과 지속 가능하고행복한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 그런 게 다 성격에 포함돼 있는거야. 그 성격 덕분에 네 연애사는 이 지경인 거고 인정하지?" - P74

나는 악다구니를 썼다. 남준 역시 조금 더 격앙된 어조로 연애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니냐며, 서로의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편안하고 즐겁고, 하루해가 모자란 게 사랑 아니냐고 했다. 나는 네 얼굴이 넷플릭스라도 되냐고 어떻게 천년만년 계속 들여다볼 수 있겠냐고, 지겨워 미칠 것 같다고 소리질렀다.  - P87

그런 일상의 소소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남준과 함께 그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비로소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모두 맞춰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적 욕망이나 사랑이라고 단순화되곤 하는 그런 감정을 초월한, 어떤 안정감 같은 것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 P97

부장이 걱정하는 게 나와 한영의 건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있었다. 우리 회사가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병에 걸린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병은 언제 어디에나 있는 것 아닌가. 병은 병일 뿐인데, 어떤병은 흉이며 죄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인생 전체를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죄. 뭐 그런 생각을 하는데 부장이 마침표를 찍듯 말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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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점심을 먹을 때면 선배 기자들끼리 요즘 애들은 아무것도 알고 싶어하지도 질문하지도 않는다며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학원을 다니며 수동적으로 공부해 그런 것 같다고, 전혀 참신하지않은 세대 분석을 했다. 그 말을 한 배서정과 우리가 고작 네 살차이라는 것이 떠올랐고, ‘요즘 애들‘이라는 말을 쓰기에 네 살 터울은 조금 애매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5

나는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황은채 역시 나와 마찬가지인 듯했고, 이런 우리의 변화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믿었다. 그렇게 나다운 것들을 깨끗이 표백하고 나면 비로소 매거진 C의 색깔이 입혀져 그토록 염원하던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거래고 여겼다. - P38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게 부러웠는데, 그때의 내게 결핍된것이 그런 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것들, 내가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게 언제부터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 P46

선배 있잖아요, 저는 칭찬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인간취급을 받고 싶었어요. 실력도 없는 주제에 이름이나 알리고 싶어하는 요즘 애들이 아니라, 방사능을 맞고 조증에 걸린 애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요. - P49

면접장의 문을 닫고 나오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요즘애들답지 않은 건, 또 뭘까. 함께 들어온 열한 명의 계약직 사원중 정규직 전환이 된 사람은 나뿐이었다. 선배들은 그런 나를 두고 두 명의 사장 모두에게 인정받은 것은 너뿐이라고,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인사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이질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더욱 체감할 따름이었다. 불과얼마 전까지 나와 함께 웃고 떠들고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던 동기들은 이제는 모두 없는 사람이 되었다.  - P53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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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들은 어머니를 잃었고 또 아버지도 잃었데이. 내가 그 애들한테 더 잘해줬어야 했다. 혼인시킬라고 애썼어야 했는데 우리한테 돈이 없었다. 여인네는 고생할 팔자를 타고났데이. 우리네는고생할 수밖에 없데이."
선자는 두 자매가 속아서 끌려갔다는 어머니의 생각이 옳다고직감했다. 지금쯤 두 사람이 죽었을 공산이 컸다.  - P378

필요하다면 그 아이들의 이를 몽땅 뽑아버리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너희가 나를 짐승 취급한다면 진짜 짐승이 돼서 너희를 해칠 거야, 모자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자수는 선량한 조선인이 될 뜻이 없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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