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것, 언뜻무용해 보이는 것, 스스로에게만 흥미로운 것을 모으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삶을 훨씬 풍부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수집가만큼 즐거운 생물이 또 없고 수집가의 태도는 예술가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항상 다니는 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 자신이 사는 곳을 매일 여행지처럼 경험하는 사람들이 결국 예술가가되니까. - P95

겪어본바, 대부분의 서브컬처 향유자들은 다정하고 기발한데, 가끔 몇 년 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집요할 정도로따라붙으며 잔인한 말들을 하는 이를 맞닥뜨리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어렵다. 마음속의 저울이 잘 작동하는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 P107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공동체가 죽음을 똑바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하지 않으면죽은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억을 단단히 굳히지 못하는공동체는 결국 망가지고 만다. 역사교육을 전공하며 공부한 자세한내용들은 많이 잊었지만 그것 하나는 배운 것 같다. 배운 것을 자꾸현실과 비교해보며 다급함에 종종거릴 때가 있다. - P116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가장 순정한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것을 외면하는 독선은 얼마나 독한가? - P117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정교함을잃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깎아낸 부분이 남긴 부분보다 많아 심지없는 완곡어법을 쓰게 되고, 세게 밀어붙이는 글을 쓰다 보면 꼭 엉뚱한 사람이 다치게 되어 후회스럽다.일단은 조롱과 비아냥, 일반화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복잡하게얽힌 세계에서 한 사람을 덩어리로부터 떼어내 개별적으로 보고 싶다. - P119

사회적 맥락과 개인을 동시에 온전히 이해하는 것, 내가 쓰는 언어의 요철을 없애면서도 예각을 잃지 않는 것. 그 지난한 두 가지가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인 것 같다. 실패하면 그다음 번에 다이얼을 더 잘돌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한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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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팠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미래완료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70대에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며 50권까지쓰는 것이지만, 충분한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요절한 사람이아니라 열한 살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고 있는 힘껏 살았던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P15

보편적인 개념의 여행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여행을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잘 쓰인 여행 책, 화질 좋은 여행 프로그램,
친구들이 다녀와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보여주는 사진들을 즐기며충분히 만족해버리는 편이어서 스스로 여행을 떠나는 편이 아니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지 않다면 말이다. - P17

장르 소설가들이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내 부아가 치미는 말들을 듣기 때문일지도모른다. 장르를 모르면 장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무례하게들 구는지 모르겠다. - P21

 천부도 겨우 팔렸지만 그때도 강렬하게 지지해주는 독자분들이 계셨다. 책 한 권 없이 몇 편의 단편뿐이었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해주시던 분들이..………. 독자와 작가 사이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랑과도 달랐다. 어떨 때는 커다란 방패고 또 어떨 때는 완전연소하는 연료라서 한번 경험하면 다시는 그것 없이 살수 없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선택해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분들이 의기양양하실 수 있게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 P21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 같은 ‘파이프형‘이라면, 창작물이 안에 고일 때 괴롭고 내보내야 머릿속의 압력이 낮아진다면 당신도 창작을 해야 한다. 그 압력을 무시해서 고장 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 P22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들을 사랑한다. 책은 남의 책, 예술도 남의 예술이 최고………. - P39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말의 농도가 비슷한 게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만나는 내내 자기 이야기만 늘어놔서 숨이 막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상대에게 그 여백을 숨가쁘게 채우게 하는데 말의농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편하니까. 그 농도가 비슷하지 않은 사람끼리 길게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 P63

지구는 45억 년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결국 항성과 행성의 수명이 다하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텐데, 우리는 짧은 수명으로 온갖 경이를 목격하다가 가는구나 싶었다.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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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은 젊고 건강했거든. 장마가시작되기 전에 차를 빌려서 타지마할에 데려가겠다고 약속도 했었고아이들은 몇 날 며칠을 울면서 멘탈의 죽음을 슬퍼했어. 메마른 땅에 편잡초가 아이들의 눈물을 먹고 꽃을 피울 정도였지. - P12

도시는 소년을 남자로 만들어주는 곳이니까 그냥 남았던거지, - P16

제일 큰 문제는 자신에게 맞는 정령을 찾는 거야. 멘탈은 여자아이를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을 위한 정령이 되었지만, 여자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여자 정령들도 있어, 할머니 정령도 있고 여자아기정령도 있지. 어쩌면 누구보다도 정령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일 거야. 우리는 부모도 집도 없이 기차역에서 사는 아이들이잖아 우리가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건 정령들을 마음대로 불러내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비결은 그것밖에 없어. - P17

정령 같은 건 없다고 하지만, 만약에 있다면 아이들의 영혼만 훔쳐 갈 거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영혼이 제일 맛있으니까.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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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궁리를 해도 대를 끊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이건 칠판이지 그냥 목판이 아니거든요. 열병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선생님들이 글씨를 쓸 칠판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설령 제가죽고나서 관을 짤 나무가 없게 된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공부할 때 사용할 칠판을 없앨 수는 없지요." - P351

그러고는 다가가 링링을 안아 의자에서 내렸다. 링링을 안아 침대에 눕히고는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겼다. 옷을 벗기고 보니 그녀의 하얗고 윤기가 흐르던 몸은 이미 메말라 있었다. 겨울풀같은 색깔로 변하고 말았다. 얼굴에는처량하고 서글픈 걱정이 가득했다.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P443

"삼촌, 오늘 우리 집에 와서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엄마가 세상을 떠났누군가 또 소리쳤다.
"형님, 오늘은 형님이 우리 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주셔야겠어요. 지난번에 형님 댁에 상사가 있었을 때는 제가 사흘이나 일을 도와드렸잖아요. 형님은 오늘 하루만 우리 집일을 도와주시면 돼요."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늘에 수백수천 개에 달하는 해가걸려 불에 타듯이 내리쬐고 있었다. - P517

관은 일찌감치 마련되어 있었다.무덤 역시 사람들이 죽기 전에 다 파놓았다.
날이 너무 무더워 사람이 죽은 다음에 무덤을 파면 이미 때가 늦기 때문이었다. 하루만 지나면 시신이 부패되어 지독한냄새가 났기 때문에 미리 관을 준비하고 무덤을 파놓았다가사람이 죽으면 후다닥 순식간에 매장해버리는 것이었다. - P521

그러므로 먼저 독자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소설이 가져다줄 고통에 대해 모든 독자들께 사죄의 말씀을올리고 싶다. - P624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죽은 듯이 대답이 없었다. 어디선가쥐만 두 마리 찍찍거리며 나타나서는 할아버지를 비스듬히쳐다보다가 다시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다음 집에 가봤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알고 보니 딩씨 마을에는 사람이 없었다.
딩씨 마을에는 원래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열병이 대규모로 폭발한 뒤로 세상을 떠나야 할 사람들은 전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P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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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런, 내가 학교에서 도장을 찾아 자네에게 돌려주는 걸세. 아무도 도장을 훔치지 않았어. 바로 자네 침대 머리말 틈새에 떨어져 있었다네."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는 손을 리싼런의 눈으로 가져가 가볍게 두 눈을 어루만졌다. 그제야 리싼런의 눈이 감겼다. 벌어져 있던 입도 마침내 다물어졌다.
눈이 감겼다. 입도 다물어졌다.
눈이 감기고 입이 다물어지자 혐오스럽기만 하던 리싼런의 얼굴도 금세 변했다. 몸은 비록 비쩍 말라 있었지만, 그의얼굴에는 편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부족한 것도, 여한도 없는 평안한 모습이었다.
리싼런은 몸과 마음이 두루 평안해졌다. - P209

"그래, 아무 의미도 없는 삶이야. 하루를 살면 하루의 의미가 생겨날 뿐이지." - P234

"선생님보다 더 잘 해내겠다고 약속할게요. 저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큰아들 딩후이가 상부에서 우리에게제공한 관을 전부 팔아치우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듣자하니 그는 돈을 좀 더 벌면 이사를 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둥징으로 가든지 아니면 현성으로 간다고 합니다. 게다가 먹의 둘째아들 딩량은 간통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그 상대가바로 자기 사촌동생의 아내였어요. 그런데도 선생님께서 계속이 마을의 일을 관리하고 학교의 모든 일들을 처리한다는것이 과연 적합한 것인지 말씀해보시지요."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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