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어슴푸레 드러난 원산 풍경은 북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같았다. 시간이 멈춘 듯, 낡아 빠진 듯, 소박한 듯, 과격한 듯, 메일에 싸인 듯, 시치미를 떼는 듯 미처 무언가를 다 감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 P60

고등학생 시절부터 방북을 마치고 출국하기 전 세관검사에서편지나 필름을 빼앗겨 성을 내다 제 무덤을 파는 사람을 여럿 봐왔다. 그들이 저질렀던 실수는 무엇일까. 당국이 몰수하려는 것은 어떤 기록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내가 일본에돌아간 후에도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아야 할 가족과 친척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 P63

"위대한 지도자님 아래, 조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으며 우리 인민에게는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라는 버스 가이드의 진부한 멘트에도 "비록 지금은 ‘고난의 행군‘을 견뎌야 할 시기지만"이라는 둥 이전까지는 들어본 적없던 본심이 섞여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사람들의 표정과 겹치는 교조적인 말에 더욱 마음이 쓰렸다. - P65

원산에서 고속도로를 지나 이 자리로 옮겨진 모두가 고개를 숙일때, 나 혼자 멍하니 동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내뒷머리에 손을 얹고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몇 초 후 다시 머리를 들 때까지 그 손은 계속 내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부동자세에서 풀려난 후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머리를 누르다니, 부모도 한 적이 없는 짓이었다. 형용하기 어려울정도로 소름 끼치는 굴욕감을 맛보았다. - P66

아버지는 북송 사업의 선봉대 역할을 자처했다. 북을 지지하는 조총련과 한국을 지지하는 민단의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동포 사회에서 격렬한 사상투쟁을 벌인 활동가였다. 자신이 가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미화해서 타인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무모함을 혁명적 임무라고 믿고 수행했던 것이다. 자기 자식들 손에까지 편도 표를 들려서 북한에 보낸 몇 년 후, 그 나라에 방문해서야 누구보다 북송 사업의 실태를 잘 알게 된 사람이었다.  - P71

 후회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뿐더러 용서받을 수없다는 자각도 있었을 터이다. 세 아들과 가족들이 ‘인질‘이 되고야 말았으니 그 체제에 순응하며 살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훈장을달고 활짝 웃는 부모님의 얼굴이 피에로 같다고 생각하며 나도 웃었다.  - P72

"아버지, 우리 셋 대신에 영희 하나 정도는 자유롭게 해주세요. 영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잖아요." 전화 오빠의 말에 아버지는 조용해졌다. 아버지와 머리를 맞대듯 수화기에 귀를 대고 있던 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 P73

어째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살아본 적도 없는 나라의 영향을이토록 직접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일까. 나에게 북한이란 도대체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 P76

‘난민 여권‘이라 불리는 재입국 허가증만 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미국에 온 것부터가 무모했다. 만약 전쟁이라도 나면 정식 여권(국적)이 없는 나는 의지할 대사관도 없는 것이었다. 일본 특별영주권자라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지켜줄 수 있을까. 아나키스트처럼 살기를 바라 마지않았지만, 그때만큼은 몹시도 불안해서 위조 여권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고심할 정도였다. 평양행이 무산될까 마음의 기둥이 부서져 내리는 심정으로 TV와 라디오에서 계속흘러나오는 뉴스에 귀 기울였다. - P77

"안녕, 영희,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파일이 학생비자 신청을위해 대사관에 제출할 서류예요. 불안하겠지만 정신 바짝 차려요.
당신은 우리 대학원의 정식 학생이고,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도학생의 배울 권리를 지키는 것이 대학의 의무입니다. 만약 미국에오기 위한 비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직접 주일 미국대사관에 요청할 거예요. 이 건에 관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우리에게 맡겨요. 가족을 만나러 간다면서요. 여행 잘해요!" - P80

평양에서 촬영한다는 어려움과 자기 가족을 찍는다는 어려움사이에서 고민도 많겠지만 너무 무리하지 마. 후회도 하지 말고 찍을 수 있는 만큼 찍어둬. 영화로 만들지 말지는 나중에생각하면 되니까. 영희에게도 가족에게도 틀림없이 귀중한 기록이 될 거야.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나 에세이면 또 어때.
귀중한 자료를 만들어두는 거야. 뉴욕에 돌아오면 또 이야기하자. - P81

우선 찍자,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그 말이 나를 구원했다. 이미 시작된 가족 다큐멘터리 프로젝트가 행여나 가족을 상처 입히지 않을까 꿈속에서조차 고민하던 시기였다. 나는 은사가 등을 떠밀어준 덕분에 미국대사관에 제출할 편지와 캠코더를 들고 뉴욕에서 오사카로 날아갔다. - P81

잠옷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의 캐릭터에 빠졌던 관객들이 확 깨는 장면이다. 딸인 나조차 귀를 막고 싶어지니 무리도아니다. ‘오오, 그렇군, 역시 사고방식이 다르네. 이 사람들과 서로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어‘ 낙담하게 되는 연설. - P84

얼핏 보면 남들의 부러움을 살 법한 훌륭한 잔치 같았지만, 어딘가 코미디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높다란 천장 아래으리으리한 연회장에 들어찬 커다랗고 둥근 테이블, 그 위에 수북이 담긴 소박한 조선 요리와 술, 오빠들 부부와 조카들은 어머니가일본에서 보낸 정장과 민족의상을 입고 있었다.  - P86

아버지가 "나에게는 아들, 딸, 손자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뒤 "이 젊은이들을 혁명가로!"라고 외쳤을 때, 나는 무심코 조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설마, 말도 안 돼‘라는 제스처를 조카들에게 해 보이자 모두가 나를 가리키면서 웃음을 참았다.
조카들이 보기에도 나는 ‘자유분방한 문제아‘겠거니 생각하자 옷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캠코더가 흔들리지 않도록 팔에 힘을 주었다 - P87

가족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해부하여 내 백그라운드의 정체를 넓고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 - P87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본심과 명분 사이를 오가지 않을까. 본심 속에도 명분이 있고 명분도 본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다면체라 여러 측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비범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평범해 보여도 인간이란 그러한 생명체인 것이다. 훈장을 단 아버지를보면 잠옷 차림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혁명을 외치는 아버지도 평범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88

화가 났다.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다는 그의 ‘죄‘는 다른 나라였다면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몇 년 동안 감옥에가둬놓고 이제 와 ‘무죄‘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는 수용소에서 다리를 다쳤다고 했지만 나는 고문이 아닐까 의심했다.

불합리한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의 불합리성에는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하기마련이다. 원래 그런 나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예외로 두는 건 불공정한 것 아닌가. ‘김씨 왕조‘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공정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 P90

"세 명 전부 보내서 후회해?" 갑자기 물어보자 침묵이 흘렀다.
될 대로 되라지 생각한 순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미 가버린 건 별수 없다 싶지만, 그 가서……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려나 그렇게는 생각하지." 내 귀를 의심하면서 신중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타임캡슐을 타고 북송 사업이 활발했던 무렵으로 돌아가서 목차를 훑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아버지 연세가? 아들들을 보냈을 때. 아버지는 몇 살이
"몇 살이었으려나……"
"지금부터 32, 33년 전이면 아버지가 43, 44세?"
"당시 전망이라는 게, 재일조선인 운동이 제일 앙양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문제가 다 잘풀리는 쪽으로 보았으니까, 안일했지......" - P92

아버지는 <디어 평양>의 클라이맥스에서 내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허락하면서 한국에 시집가도 되니까 그저 상대만 찾으라고 말한다. 자신은 생애 마지막까지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하겠지만, 딸은 별개이니 자유롭게 살라고 한다.
실은 오빠들의 ‘귀국‘에 대해 후회하는 장면부터 나의 국적 변경을 허락하는 장면까지 모두 같은 날 찍은 영상이다. 그다음 날, 나 - P93

나는 조직의 태도는 모른 체하고, 가족과 친척을 지원하는 데필사적인 부모님에게 오랫동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만은 나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아들과 손주들이 인질처럼 잡혀 있는 부모님이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다고. 아이를 낳아본 적 없는나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세운 책망의 가시에 자꾸만 스스로 찔렸다. - P94

"사람이 할 말이 있으면 감독인 나한테 해야지 모르는 사람한테서 협박 전화 같은 거 오니까 기분 나쁘겠다. 미안해요."
"모르는 사람도 아냐, 오래 알고 지냈으니 목소리만 들으면금방 알지. 너한테 이상한 전화가 안 오면 됐어. 가족 기록을 영화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언제나 당당한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 P95

"설마 그럴 리 없어. 아직은 보낼 수 없어. 다시 한번 손주를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아직 영화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주인공인데, 아버지가 처음으로 봐야 하는데." 조수석에 앉은 나는 중얼중얼거리다가 소리 내어 울었다.  - P97

 "아버지, 힘내자!"라는 내 말에 아버지도 "힘내자!"라고 화답했다. "힘내서 병을 고쳐 집에 가야지. 손주 보러 평양에 가야지" 그렇게 애버지를 격려했다. 집에 가자, 가족이 있는 평양에 가자. 그 말이 우리의 암호가 되었다. - P100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입힐 옷을 들고 병실에 도착했다. 간호사들도 들어왔다. 아버지의 숨은 더욱 거칠어져갔다. 상반신을 공중으로 밀어 올리듯 들숨을 쉬고, 떠오른 머리와 등을 침대에 격렬하게 떨어뜨리며 날숨을 뱉었다. 아버지는 이를 여러 번 반복하다천천히 단계를 거치듯이 숨을 거두었다. 인간은 이렇게 죽어가는것이라고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계속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이 차가워졌다. 얼굴도 목덜미도 차가워졌다. 차가워도 괜찮으니까 관에 들어가지 말고 영원히 이대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103

대가족에 둘러싸인 선화가 웃었고, 선화가 웃으면모두가 웃었다. 연출되고 강요된 미소가 아닌, 가족의 일상적인 표정이 거기 있었다. 그때 나는 이 미소를 찍기 위해 평양까지 온것임을 확신했다. 더 이상 검열도 두렵지 않았다.  - P112

정순 씨는 무척 소박한 사람이었다. 결혼 선물로 어머니가 일본에서보낸 속옷을 아깝다며 한 번도 입지 않고 상자에 고이 넣어 서랍에보관해두었다고 했다. 예쁜 레이스가 달린 속옷을 몇 번이고 꺼내서 물끄러미 보았다고 했다.  - P117

사회주의를 몸에 두르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그 위에 자본주의를 덮은 모습이 선화를 둘러싼 환경을 보여주는 듯했다. - P118

우습게도 재혼 생각이 없다는 오빠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서 인기는 더욱높아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생활비와 애정이 가득 담긴 소포가 온다는 사실이었다.  - P121

아버지는 열다섯 때 제주도에서 헤어진 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 할머니를, 세 오빠들은 오사카에 살면서 물자 공급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를, 올케언니들은 친정어머니를, 선화의 이복형제인 지성과 지홍은 자신을 두고 떠나간 친모와 그 이후 자신들을 키워준 정순 씨를, 선화도 다섯 살 때 사망한 친모 정순 씨를. 이 얼마나 보편적인 노래인가. 전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어 불리면 좋겠다. - P125

예전부터 만들 생각이라고 말은 했지만.
이 방북 직전에 <디어 평양>을 완성했기 때문에 출연자인 오빠들에게 알려야 했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이 정해진 상태였다영화제와 영화에 대해 뜨겁게 논하는 여동생을 보면서 오빠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우리 걱정은 하지 마"라고 말해주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빠에 대한 고마움과 죄책감과 불합리에 대한 분노, 그리고 새로운 결의가 마음속에 뒤섞였다. "내 동생이 영화감독으로서 한국에 가는 셈이네. 힘내."오빠는 덧붙였다. - P131

 고작 연극에 관한 대화일 뿐인데 녹화를 하면문제의 소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춘기 소녀가 아렇게까지 위축되어 살아가야 하는 감시 체제란 대체 무엇인가. - P133

‘아버지 용태가 호전되면 평양에서 요양하는 것이 어떨까요?
조선에도 좋은 온천이 있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서 병을 이겨냅시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편지 내용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이시점에도 송금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친척의 편지를 받았을 때는공포심마저 느꼈다. 어머니에게 말만 하면 무엇이든 보내주는 관계가 이미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에 절망스럽기도 했다.  - P138

하지만 아버지를 완벽하게 간호하려는 어머니를 보조하면서 내 삶은 이미 파탄 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력이 없었다. 언제쯤이면 혼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족에게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또다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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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나이테를 만든다. 어제와 오늘이 디른 척한다. 새해 결심을 세워본다. 리추얼(ritual), 의식은 그런 효과를 지닌다. 마음을 새로이 가다듬는다. 그 하루가 채 가기 전에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 P23

 저희 어머니는 케이크숍 ‘미카야‘의 레어치즈케이크를 굉장히좋아하셔서, 연말연시에 제가 레어치즈케이크 하프와 다른 케이크 세 가지 정도 조합해서 한 판을 만들어와 냉장고에 넣어두면 레어치즈케이크만 사라져있곤 했어요. 엄마! 나도 먹으려고 많이 사다 둔 거란말이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나서 오히려 자주 먹지 못하는 음식이 되었지만요. - P31

영국인에게 차란 무엇일까. 한국인에게 밥 같은 것일까?
모든 것을 밥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일을밥벌이라고 하고, 일을 깽판치는 것을 밥상을 엎는다고 하는 한민족에게 밥이 의미하는 그런? 우쥬 드링크 썸 티? - P41

내가 나 자신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보고자 해온 노력의 결과는 실패의 반복이었다. 나태한 사람이 어떻게 회사도 다니고 책도 쓰는가 질문하는 분을 위해 말하자면,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생활이 불균형하기때문이다. 급한 불을 꺼야 할 때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원고를 쓰기 시작하는데, 아침밥은 고사하고물 한잔 못 마시고 원고 끝날 때까지 앉아 있는다.
이렇게 산기기 - P63

따뜻한 탄수화물을 배 속에 넣는다는 일 자체가주는 안도감이 있다.
탄수화물 중독이겠지. - P73

사랑이라고 부르든, 사랑의 노동이라고 부르든,
희생이라고 부르든,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아니면 아침상을 차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일‘인 적이 없었다고 해서 내가 노력 없이 얻었던애정과 수고, 건강의 가치를 모르지는 않는다.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아야만 어머니를 이해할 수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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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갈등이 격화되는 본국의 상황은 재일 사회에도 그대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선술집이나 고깃집에서는 테이블마다 남한 지지자와 북조선 지지자가 따로 앉았고, 문득들려오는 대화의 말꼬리를 잡아 말싸움을 시작하거나 주먹다짐까지 했다. 남한을 지지하는 거류민단과 북조선을 지지하는 조총련의 대립도 심각했다.  - P19

시간이 지나 이카이노라는 지명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조선시장은 코리아타운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곳은 이제 한류드라마와 케이팝을 좋아하는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관광지가 됐다. 길거리도 깨끗해지고, 작은 김치 가게도 세대에 걸친 비즈니스로 급성장했다. 한편으로 쩌렁쩌렁 울려대는 일본 우익단체의 헤이트스피치가 주민들의 신경을 긁는 것도 사실이다. 고양이 아줌마나비녀 할망이 오늘날의 이카이노를 보면 뭐라고 할지 문득 궁금하다. 이 땅은 변한 걸까. 변하지 않은 걸까.  - P24

‘여자 나이와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25가 지나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비상식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부모님은 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몇 달 사이에 결혼 준비를 끝마쳤다. 퇴원하면 일주일 뒤에 혼수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식과 피로연을 여는 ‘전격 결혼‘이었다.  - P28

나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직계가족에서도 벗어나고싶은데 타인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라니, 제정신인가, 아버지의딸, 오빠들의 여동생, 여성, 재일코리안 같은 명사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족을 향해 카메라를 든 이유도, 도망치기보다 그들을제대로 마주 본 다음에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영화 하나 만들었다
고 무엇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손목 발목에 주렁주렁 차고 있는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야했다. 알아야만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P31

언젠가 평양에 방문했을 때 오빠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총련 간부 자녀 합숙소에서 다른 평양 시민에 비해 대우르받았어?"
"하루에 계란 하나는 먹었나? 그 당시로 치면 파격적인 대우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아서 공부가 눈에 안 들어왔다. 하루 종일 먹을 거 생각만 했지." - P33

"아버지한테 말하면안 돼." 어머니는 조각난 사진을 양손에 쥔 채 소리 죽여 흐느끼고있었다. 소년은 셋째 건민이었다. 편지에는 ‘조국의 품에 안겨 김일성 원수님의 자비 속에 건강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라는 문장이 지푸라기처럼 옅은 갈색 편지지에 적혀 있었다. - P37

아이들을 북에 보냈다고 후회할 여유는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세 아들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졸업한 다음에 건강히 일할 수 있도록,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가족들이 웃는 얼굴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살겠노라 다짐했다. 손주들이 태어나자 어머니의 결심은 신념이 되고, 다시 집념이 되었다. 무언가에 씐 것처럼 소포를 보내고 북을방문하는 어머니에 아버지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 P40

지금에 와서야 짐을 싸던 어머니의 미소를 조금은 이해할 수있을 것 같다. 어머니 눈에는 일본에서 온 상자와 봉투를 열어보고기뻐할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오직 그 생각 하나만으로살아왔을 것이다. 볼 수 없는 가족의 웃는 얼굴을 매일매일 떠올리면서, 그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도록 다음번 소포에 무얼 담을지궁리했을 것이다. 만나지 못하는 씁쓸함을 상상으로 메우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45년 동안 "부모밖에 못 하지"를 몇 번이나 중얼거렸을까. - P43

여전히 잉꼬부부인 부모님 사이가 부러운 한편, 절대적으로 북조선을 지지하는 전체주의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는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조직의 충실한 활동가인 부모님이 맹목적이고 편협한 어른으로 보였다. 나는 북조선을 조국이라 가르치는 조선학교에 다녔지만, 학교 바깥에서는 일본과 서구 문화를 접하면서 자아를 형성해가고있었다. 결국 학교에서 강요하는 ‘충성심‘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반응을 보이게 되어, 황홀한 표정으로 충성의 노래를 부르는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 P45

‘북한이 그렇게 좋은 나라면 본인이 가면 되잖아. 일본에 살면서 북한 체제를 지지하다니 아주 속 편하네. 비겁하지 않아?"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발 망치로 항의하는 ‘효녀‘인 나자신이 한심했다. 내 방에 숨어 차마 입 밖으론 꺼내지 못하는 ‘오빠들을 돌려줘‘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눈물을 흘렸다. - P47

오빠들과의 추억이 서린 집이라고 하기에는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짧았다. 너무도 짧아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가슴에 박힐 만큼 소중한 기억이 됐다. 조총련 커뮤니티에서는 ‘영광의 귀국‘을 한 오빠들을 칭송하며 남은 가족들의 상실감을 ‘명예‘로 메울 것을 강요했다. 어린 마음에도 오빠들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된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외로움을 견뎠다. 주변 어른들은 ‘민족차별이 만연하는 일본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차별 없는 조국에서 고생하는 게 낫다. 5년쯤 지나면 조국 통일이 이루어지고 남북도일본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꿈같은 소리를 했다. 당시에 그런 말은 확실히 꿈같은 이야기였지만, 재일코리안을둘러싼 일본 상황 역시 악몽 같았다. - P48

어머니와 약속한 대로 한 달에 한 번은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다. "대학 나와서 고등학교 선생님까지 하던 사람이 커피 나르는 거 말고 할 일이 없나?
연극? 딴따라 흉내를 내다니 한심하다. 예술가가 되려면 북조선으로 귀국해! 일본에서 조선인이 어떻게 예술을 하니, 라디오나 TV에 나갈 수나 있다니? 꿈같은 소리 마라. 동네 사람들, 우리 딸이 미쳤어요! 빨리 동포랑 결혼해서 애 낳을 생각은 안 하고!"  - P53

가족과 마주하기. 딸이라는 역할에 갇힌 상태에서 이 소박하고도 장대한 과업에 임하기란 심히 어려웠다. 캠코더라는 장치의힘을 빌려 속내를 숨긴 관찰자, 인터뷰어, 감독이라는 역할을 스스로 부여함으로써 발을 내디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을 찍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어디서 왔는지 파헤치는 행위다.  - P53

바다에 가자고 한 건 당신이었는데, 기쁘게 숙소를 예약하고 기차표를 샀는데, 모처럼 바다에 왔는데 어머니는 어쩐지 쓸쓸해보였다. 나는 수영복은 입었지만 수영을 못 해서 모래사장에 앉아 뛰노는 오빠들과 파도를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여섯 식구가 사진을 찍었다. 오빠들이 일본에 있을 때 사진관에서 찍은 것을 제외하고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찍은 사진은 그 한 장뿐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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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니. 책을 읽으면서 몇번이나 울컥햇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 P18

"그렇게 농사를 짓다 보니까, 드디어! 필요한 것보다 많이 생산하게 된 거야. 우리 마을에서 다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윤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나눠 줘요!"
그 밖에 다른 답이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하윤이에게 경제 논리를 설명하려니 나는 갑자기 속이시커먼 어른이 된 것 같았다.  - P31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착한 마음을가지고 살기에 세상이 거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더 큰 이유는 어린이들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두려워서다.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 P32

‘착한 어린이‘라는말에는 ‘남의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때 ‘남‘은 주로어른들이다. 부모님, 선생님, 산타 할아버지 같은. - P33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겠다. 머리에 불이 붙고 속이 시커메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겠다. 이상한 일이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 P37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대접을 받아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 P41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 P45

 이런 무서운 것들이 어린이의 어떤 면을 자라게 한다는
것을.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고,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그런 식의 성장은 우리가 어른이된 뒤에도 계속된다. 그러니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키워 주는 것 아닐까. - P53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그렇지, 모래가 있었다. 놀이터의 모래 때문에 뛰기 어렵고, 모래가 자꾸만 신발 속에 들어가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하준이는 바로 그런 모래를 믿고, 떨어져도 다칠 걱정없이 아찔한 정글짐을 올랐던 것이다. 나는 마치 격언인 것 - P63

얼마 전에 만난 친구는 "글이 무거워요. 한 글자 한 글자가 무거운 거예요"라고 했다.  - P72

이렇게까지 했으니 이길 수밖에 없다, 상처와 함께하는승리로군, 하고 있을 때 다시 재준이가 침착하게 입을 뗐다.
"선생님, 저희는 일을 안 해도 돼요. 엄마 아빠가 사주세요" - P82

어린이의 개성은 그보다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뒤섞인 존재다. 어른이 그렇듯이. - P90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메리 올리버의 문장들이 떠오른다.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우주는 활기차고 사무적이다." "완벽한 날들』 중에서) - P91

어떤 어린이는 여전히 TV로 세상을 배운다. 주로 외로운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모습을, 함께 노는 즐거움을, 다양한 가족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족이 아니어도 튼튼한 관계를, 강아지와 고양이를, 세상의 호의를 보여 주면좋겠다. 세상이 멋진 집이라고 어린이를 안심시키면 좋겠다. - P102

자매, 형제의 정이란 참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쌓이는 모양이다. 싫어하면서도 껴안고 껴안으면 웃음이 나고, 그렇다고 다 풀리는 건 아니고, 그래서 늘 할 말이 남아 있는 사이. - P108

"안녕하세요? 저는 요 앞에서 독서교실을 하는 선생님이에요. 어린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저 가는 데까지라도 우산 같이 쓰면 어떨까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 P140

"애기가 짜부라질까 봐.." - P143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나 자신의 사훈이다. 어린이 한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 윤리와 진실한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 P151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아가려면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나아가려면 맞서야 하니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 P164

그러니 부모님들은 어떨까. 비로소 ‘자녀 교육시장은 불안을 먹고 큰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 P176

"녹을까요?"
"응? 뭐가?"
"초콜릿요. 이거 손에 들고 집에가면 녹을까요? 엄마 아빠랑 먹으려고요." - P178

 우리나라 출생률이 곤두박질친다고 뉴스에서는 ‘다급히‘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 어린이가 찾아올까? 너무 쉬운 문제다. - P213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린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말은, 애초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그 끝이 결국 아이를 향한다. 아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된다.  - P218

한편 나는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어린이의 반응을 바라는어른들은 왜 울릴 생각만 할까. - P228

어린이는 정치적인 존재다. 어린이와 정치를 연결하는 게불편하다면, 아마 정치가 어린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 보기에도 민망하고 화가나는 장면들을 어린이들에게 보이기 싫은 것이다.  - P236

이런 말이 좋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이니 뭐니하는 말도 자제하면 좋겠다. 어린이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살아 있다. 나라의 앞날은 둘째치고 나라의 오늘부터 어른들이 잘 짊어집시다. - P247

사회의 돌봄 없이 어린이를 가정에만 내맡길 때 어떤 참혹한 학대가 일어날 수 있는지 뼈아프게 확인하고 있다. 교육을 이야기하려면 사회를 보아야 한다. 성범죄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감염병 사태 중에 도서관보다 성매매 업소가 먼저 문을 열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린이와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에게마이크가 주어지는 세상에서 학교와 가정이 청정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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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신들이 인간에게 공평하려고 애쓴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자기는순금 목걸이보다는 때리지 않는 남편이 더 좋다고 말했다.  - P62

"안내문도 붙여놓고, 촌장하고 협의도 해야 하고, 우린 오래전부터 여기서 살아왔어. 주민증도 있고 권리도 있지. 우린 방글라데시 사람이 아니거든."
"무슨 권리?" 엄마가 묻는다.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선거 일주전에만 우릴 기억하잖아. 그리고 사기꾼 같은 촌장을 어떻게 믿어? 이젠여기 살지도 않는데." - P75

신들이시여, 우리동네에 불도저를 보내지 말아주세요.
신들이시여, 우리 동네에 불도저를 보내지 말아주세요.
신들이시여, 우리 동네에 불도저를 보내지 말아주세요. - P78

이 둘은 결혼한 지 너무 오래된 부부처럼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지만 커서도 이 둘은 결혼할 수 없다. 파이즈가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힌두교도가 이슬람교도와 결혼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다른 종교나 다른 카스트 계급의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들의 피가낭자한 현장 사진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종종 본 적이 있다.  - P83

옴비르는 생각했다. 신이 주신 것이 결점일 리는 없었다. 신이 주신 것은 언제나 선물이었다. 옴비르는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않다면 그 모든 일이 일어날 이유가 뭐란 말인가? - P117

교차로의 여왕은 이야기 속 주인공이 아니야. 실제로 살아 있는...... 영혼이 살아 있다는 뜻이야.
교차로의 여왕은 살아서 아직도 딸을 죽인 놈들을 찾고 있어. 그리고할 수만 있다면 이 도시의 모든 여자, 모든 소녀에게 이렇게 말할거야두려워하지 마. 나를 생각해. 그러면 내가 네 옆에 있을게. - P158

안찰은 추위와, 청년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욕망에 단련이 되어 있었다. 이 청년들은 레츠토크 접수처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안찰의 시간표를 알아내 달달 외웠다. - P208

나를 병균 덩어리로 보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아빠는 남들이 우리를 존중해주지 않아도 우리가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빠가 말하는 ‘남들‘은 부잣집 사모님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이 빈민가에 살면서도 부자가 아니라고 우리를 쇼핑몰에 들어가지도못하게 하는 경비원들을 포함한다.  - P266

내일은 학교 시험 날이다. 시험이 다른 세계의 일처럼 비현실적으로느껴진다. 우리 세계에서는 날마다 정령들과 납치범들과 물소 도살자들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언제 사라질지 아무도 모른다. - P300

"말조심해." 엄마가 누나에게 말한다.
"너한텐 돌봐야 할 동생이 있잖아." 아빠가 말한다.
"돌볼 수도 없는 애를 뭐하러 낳았어?" 누나가 묻는다.
아빠가 손을 번쩍 들더니 루누 누나의 왼뺨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 P301

여자아이는 너무 늦기 전에 결혼시켜야 한다고 물라가 말할 때 카디파의조부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라가 말하는 ‘너무 늦기 전‘은 ‘열세 살이나 열네 살이 되기 전‘을 의미했다. - P305

정령이 검은 개나 고양이나 뱀의 모습을 취하지 않으면 우리는 정령을 볼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이 사원 마당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정령의 존재를 느끼게 되지. 나뭇가지가 목덜미를 간질이는 것 같은느낌에서, 셔츠를 부풀리는 산들바람에서, 기도하는 동안 점점 더 가벼워지는 마음에서 정령의 존재를 느껴, 네가 지금 무서워하는 거 다 보이는데, 우리 말을 믿어.  - P315

친애하는 친구, 너 자신을 위해서 우리 말을 믿어봐. 슬리퍼를 벗고발을 씻고, 안으로 들어가 정령들이 기다리고 있어. - P319

루누는 이해받지 못함의 연속인 삶이 자기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자신과 세상을 증오했다. - P341

자이가 태어난 이후로, 루누는 자이를 혐오와 감탄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이는 백일몽과, 세상이 사내아이에게 허용하는 자신감분에 불완전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듯했다. 반면 여자아이가 그런 자신감을 갖는다면 성격적인 결함이나 부모가 잘못 키운 증거로 여겨졌다.  - P341

루누는 사랑에 빠지는 꿈을 꾸지 않았다. 프라빈과도, 영화배우처럼꾸미고 다니는 상급생들과도 그랬고, 근처에 있는 여학생은 죄다 눈으로 훑고 다니는 양아치 쿼터와는 더더욱 사랑에 빠질 생각이 없었다. 루누는 연애를 원하지 않았다. 루누가 원하는 건 연단에 올라 고개를 숙이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뿐이었다. 전국 대회 메달? 주정부 주최 대회?
지역 대회? 어떤 것이든 좋았다.  - P343

루누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왜 코를 파느냐고왜 골가파를 먹느냐고, 왜 비가 쏟아지는 걸 보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싫었다. 삶의 단 한 부분도, 세상의 단 한 구석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루누가 유일하게 혼자라고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육상 트랙뿐이었다. 수백 개의 눈이 지켜보고 있기는 했지만, 그곳에는 오로지 루누 자신과 땅을 쾅쾅 밟고 뛰어가는 자신의 운동화 소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 P348

"때가 되면 진실이 밝혀지겠지." 촌장이 말한다.
"언제요? 우리 모두 죽고 나면요?" 엄마가 부드럽고 분명한 목소리로 묻는다. - P363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경찰소식통에 따르면, 바룬 쿠마르가 자신이 납치한 청소년들을 살해해 사체를 훼손하고 유기한 사실을 자백했다고 합니다. 훼손한 시신을 비닐봉지에 담아 자전거에 매어싣고 다니면서 쓰레기장과 쇼핑몰 및 보라선 전철역 주변 배수로에 유기했다고 실토한 겁니다.  - P391

내 가슴속에서 나비 100마리가 날개를 파닥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누군가가 어릴 때 죽는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인생을 살다 간 걸까, 아니면 절반만 살다 간 걸까, 그것도 아니면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걸까? - P399

그 기자들에 따르면, 주인 여자와 관리인 바룬은 인신매매 및 신장매매, 아동 포르노 제작과 유통을 주로 해온 조직의 일원이었다. 기자들은 바룬이 아동들을 학대하고 살해한 사이코패스라고 말한다. 바룬과그의 아내가 인신매매를 위해 납치한 어린이들을 학대하고 살해했다는것이다. 그러나 주인 여자는 죄가 없다고, 기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 P403

"자기 삶을 통제할 수있다고 생각하면서 늙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고 하지만 그들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깨닫게 될 거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걸 우린 이 세상에서 한 점의 먼지에불과해, 햇빛을 받으면 한순간 반짝이다가 곧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먼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라." - P405

 그리고 어쩌면, 신들은 진짜로 있고 자기를 잘 보살펴주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루누 누나였을지도 모른다.
멘탈이 자기 소년들을 지켜보듯이 누나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분명히 느낄 수 있다. - P410

내가 기사에서 불가피하게 지적했듯이, 한 사회를 이루는 우리와 우리가 선택한 정부들은 그 아이들을 버렸다.  - P411

이 책을 쓴 디파 아나파라는 ‘작가의 말‘에서 "아이들의 유쾌함과신랄함과 에너지를 마감 기한에 쫓기는 기사에서는 온전히 표현할 수없어서, 그리고 그 아이들이 통계 수치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썼다"고 밝혔다.  -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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