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에 굴복하고, 우울증depression을 받아들이고 ‘숲‘으로들어가려는 유혹은 ‘약속‘과 마주하게 된다. 약속은 항상 의무와 관련된다. 무언가를 약속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이해하고 있다. 반면 죽음에의 소원은 자기중심적ego-centric이다.
‘자아‘ego (죽음)와 ‘약속‘(의무) 사이에서 동요할 때, 결국 잠(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는 다짐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 P42

 모든 면에서 자족적이고 외롭고멜랑콜리한 호퍼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 P59

책을 읽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세계,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않는 세계에 있다. 호퍼의 작품 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러한보이지 않는 차원 → 무의식을 재현한 데 있다. 보이지 않는 차원을설명하는 것은 관객의 일로 남는다. - P76

호퍼가 리얼리스트인 것은 바로 이런이유인데, 리얼리즘은 영화 속 현실처럼 과장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 P104

 그는 그늘진 곳(또는 덜 밝은 부분)과의 대비, 때로 과장된 대비를 통해 빛을 그린다. 그가 표현하는 빛과 그늘의 상호작용은 그가 빈방을 그릴 때 독특한 역동성을 낳는다.
그는 본질적으로 정적인 그림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이경우에는 햇빛과 그늘의 상호작용)을 표현하는 역설에 성공한 듯하다. - P107

196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마지막 대규모 회고전을 돌아보며 진행한 브라이언 오도허티 Brian O‘Dohery 와의대화에서 호퍼는 이렇게 말했다. "내 작품은 모두 시간의 흐름속 포착된 극도의 강렬함으로 재현된 하나의 순간들이다. " - P112

호퍼에게 불가해한 숲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수단이다. 마치 숲의 이미지가 우리 안의 무의식을 건드릴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호퍼는 그가 그토록 존경했던 괴테나 프로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숲처럼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숲을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들만 그림에 담으려고 한 것 같다. - P128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말로 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회화는 일종의 언어적 영점zero point에서,
아무 할 말이 없을 때 시작된다는 유명한 말을 한 적이 있다. 25 - P144

호퍼의 동년배들이 프랑스에서 ‘구상‘figuration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인 ‘추상‘abstraction 으로의 길을 개척했다면 호퍼는 미국이라는 ‘거칠고‘ 텅 빈 나라에서 다른 길을 모색했다. 보이는 것에상대적인 ‘보이지 않는 것‘, 인간의 ‘내면‘, ‘형이상학적 감각‘에천착한 것이다. 그는 그의 그림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고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 P146

호퍼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집 한쪽 벽에 드리운 햇빛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한 시인은 문명은 벽에 드리운 햇빛에서 시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말을 미학에 관한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 햇빛이 벽에 드리울때, 호퍼의 「빈방의 빛」이나 바다 옆의 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자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햇빛이 인간이 만든 벽을 만나 음영shadow 을 만들 때 인간은 미학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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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성주괴공을 반복한다 하였습니다. 별이 탄생하고,
별을 유지하다가 소멸하고 사라집니다. 모래바람이 아니어도지구도, 태양도, 우주의 모든 행성과 별도 이 순환을 반복하며탄생하고 유지되고 소멸할 것입니다. 항상 존재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제행무상인 것을, 티끌만큼 짧은 인간의 삶에 내일을 바란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 P282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효원에게 해준 것은 아마도 효종 스님이 너를 각별하고 예쁘게 여기는 것에는 슬픈 운명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함이었을 거고, 누군가의 한없는 다정함과 친절함은가라앉은 슬픔 위에 떠 있는 돛배와 같아서 그 안에 타 있는 이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주려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P284

그곳이 이 행성을 말하는 건 아니라는 걸 적어도 이 행성에서 저어새가 살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렇지만 대기권을뚫고 우주를 가로질러 다른 행성으로 날아가지 않는 한 다른행성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생각이 이런 단계를 거쳐 저어새가멸종했다는 최종 사실에 온 건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나서였다. - P287

 홈페이지 주인은 정말로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암초 섬인 각시암에 둥지를 틀어 살아남은 새들처럼 자신의 가족도 황무지행성에서 살아남길 바란다는 대목을 읽을 때 확신했다. 사랑하지 않는 대상으로 사랑하는 대상의 건투를 빌지는 않을 테니까. - P294

우주는 공(空)이다. 존재에는 실재가 없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실재하지 않기에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고, 깨닫지못한 이들이 그것을 기적이라 부를 뿐이다. - P296

"꼭 한번만 다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확답은 못 드렸는데, 오늘 새벽에 새 한 마리가 이 염주 목걸이를물고 왔습니다."
군인이 염주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
"이걸 보자마자 스님이 생각나서………. 마음에 걸려서 왔습니다. 주지 스님 일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와서 다행입니다."
"어떤・・・・・・ 새였습니까?"
"무슨 새였지?"
효원과 대화하던 군인이 다른 군인에게 물었다. 상대방도고개를 저었다.
"종류는 모르겠고 부리가 검은색이었어요."
- P301

병마가 효종 스님의 삶을 앗아갈 걸 알고 있었으나, 더없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건 먼 이야기였다. 오늘은 아니고, 내일도 아닌 언젠가반드시 오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닌. - P298

효원아, 너는 미련을 두지 마라.
나직한 목소리가 풍경소리에 흩어진다. 부처님 곁으로 왜그리 성급하게 가시느냐고, 당신만 보며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신은 보이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소리치고 싶었지만 효원은 눈을 떴다. 태양은 어느새 정오를지나 하늘 높게 떠 있었고 세상은 적막했다. - P299

"일어나십시오. 그만......"
효원의 고개가 꺾인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에 이마가 닿았다. 바닥의 찬 기운을 느끼며, 몸을 감싸는 서늘함의 기운이 그것 때문이길 바라며, 지금이라도 기척을 내며 몸을 일으키길 바라며, 효원은 아침이 다 가도록 그렇게 있었다. - P298

결국 어떤 질문을 하는지는 각자의 세계에서 도출되는 거잖아. - P317

그냥 나는 이 행성에 잘못 태어난 거 같아.
그 애가 그렇게 말했을 때, 유라는 문득 이유 없이 차오른눈물을 삼켜내고 물었다. 그럼 너는 어디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 애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글쎄, 모르겠어. 여기 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알 수 없지 않을까?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나는 너무 살고 싶어, 유라야유라는 묻고 싶었다. 그 밖은 어떻게 나가는 것이냐고 우주선을 타고 나가 끝이 없는 우주를 떠돌다 네가 태어났어야할 행성을 만나는 것이냐고.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그 밖은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고・・・・・・ .  - P334

하지만 유라의 생각은 달랐다. 심장이 멈춰서 생각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다. 아마 그때가 그 애가시도했던 첫 번째 자살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알지 않았을까. 이곳은 자신이 원했던 행성이 아님을. - P339

 선생님들은 그 애를 겉돈다고 표현했지만 유라의 생각은 달랐다. 그 애는 겉도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겉에 있는 것이다. 맴돌지 않고, 꾸준히 더 멀리 벗어나기 위해몸부림쳤다. 무언가에 칭칭 감겨 있는 사람 같았다. - P340

유라야, 가끔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그러면 몸은 살아 있지만영혼은 죽게 되는거야. 현실에 있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으로 떠나버리는.
나는 그 사람들이 가는 곳이 궁금해, 유라야. - P347

유라야, 나는 너한테 모든 걸 말하고 싶지 않아. 네가 나를억지로 이해하려는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폭력이니까. 그러니까 나에 대해 다 안다는 식으로 떠들지 마. - P351

적외선 카메라로 사물을파악하는 정도였죠. 하지만 여기가 전장이고, 우리가 싸우는상대가 지구 바깥에서 온 존재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둘에게는 어떤 연대 의식 같은 게 있었죠. 페카도 그랬을 거예요.
적어도 내 옆에 앉은 게 인간이기는 하니까. - P369

서울과 인천, 경기도는 사시사철 최악의 발암물질과 함께했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어디를 가든 숨쉬기 버거웠던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떤 의미로든요.
- P372

우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주를 떠올릴 때마다 고요한 그곳에 홀로 시끄럽게 돌고 있는 지구가 좋았다. 밖은 저토록 조용한데 이 안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지나치게 피곤하고, 지나치게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평생 좋아하는 노래만 듣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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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에 [재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익숙한 필체였다. 물론이 필체가 나를 위해 쓰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재이다. 제는 없었다. 하나인줄 알고 하나의 이름만 붙였다. 그러니까 이 몸의 이름은 재이고 우리는 그런 의미로 둘 다재였지만 어느 순간 나는 제가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몸의 부속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제라는 걸 아는 사람은 나와 그 애,
그리고 동생 ‘선‘밖에 없다. 모든 편지는 재에게 온다. 재밖에없으니까 편지의 주인공이 나였던 적은 없다. 부모님조차도. - P150

하지만 선은 제에게만 웃었다. 그러니까 나 구분할 수 없는 재와 제 중에서 제를 알아보고, 나는 신이 우리 둘을 한 몸에 넣은 실수를 뒤늦게 깨닫고둘을 구분하는 판별자를 내려보냈다고 생각했다. - P153

‘그냥 재가 유별나게 빠르고 특별한 거지 네가 못한 게 아니야. 너는 억지로 재의 속도에 같이 얹혀살고 있으니까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지. 네가 재 속도에 맞춰주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버겁지. ‘
하나의 몸에 둘이 살고 있으니 하나가 맞출 수밖에 없다.
그저 그뿐이라고 했다. 선의 말은 그전까지 암울하기만 한 내삶을 조금 바꿔놓았다.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깨달은 것이 중요했다. 독립되었다면 어땠을까. 부질없지만 종종 고민했다. - P157

"재는 제가 아니야."
우리는 도무지 같지 않은가.
"제가 재의 부속도 아니고." - P162

"재가 천재인 것과 네가 사는 건 다른 거야. 재가 천재여서네가 죽어야 한다는 건 정말 다른 문제야." - P163

친해진다는 건 까발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보여지는 내 모습이 아니라 살가죽을 뒤집어 내 안에 있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수고로움을, 누군가와 친해져 내 안을 까발리고 상대방의 아들야들한 속살을 끌어안는 짓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이, 기어코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 P177

저런 세상이 있다고 믿어야만 이 세상을 덜 원망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드라마를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 세상이 가짜인 걸 알면서도 그런 세상이 어딘가 있을 거야, 하고 믿어야만 버틸 수 있어서. - P179

그러자 언니는 하나의 세계를 붕괴시키려면 하루빨리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야하고, 그 세계는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에 만들어지므로 네가 살아온 세계가 빨리 붕괴되기를 원해서 그런다고 대답했다. - P180

하지만 엄마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엄마에게는 엄마와꼭 닮은 여동생이 세 명이나 있었다. 그 동생들이 공부도 하고취업도 할 수 있도록 엄마는 결혼을 했다.  - P184

집은 살아 있는 생명처럼 여름이면 울고, 겨울이면 비명을 지르다가 주인을 따라 죽어버렸다. 집이 고요했다. 새까맣게 타 죽어버린 나무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바람 소리도 쥐가 넘나드는소리도,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했다. - P193

엄마도 나를 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엄마는 꼬박꼬박 내 이름을 불렀다. - P200

진짜 잔인한 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진짜 잔인한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게 분명했다. - P225

악했다면 너는 네 아비를 찔렀겠지만, 너는 강했기에 버텨서 살아남았다. 세상을 일부러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모든 상황을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가끔은 그게 미칠 듯이 억울했지만, 그래서 ‘차라리 네가 악했다면‘이라는 생각을 수도없이 많이 했지만 나는 네가 악하지 않아서 좋았다. 너는 정말이지 강해서, 멋있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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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지키기 위해 똑똑해진 것처럼 명월은 지키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강해졌다는 걸 잊고 있었다. - P23

진화는 침략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희생이었지만 인류는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도착한 미래는 통로 같았다. 머물지 못하고 지나가야만 하는단계. - P23

다른 종족의행성을 빼앗아 지구에 넘쳐나는 인간을 위해 새로운 터전을만들자는 의미였다. - P25

할머니는 자신을 사랑했지만 제 딸을 더 사랑했을 테니까. 그래서 할머니 앞에서 마음껏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언제든 자신에게 울며 화를낼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 살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강설조차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지만크고 나서 깨달았다. 자신은 웃으면 죄가 되는 세상을 살았다. - P28

우주에서 적이 쳐들어온 건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고였다. 해일이나 화산 폭발처럼 인간의 실수나 잘못이 조금도섞여 들지 않은 완전한 비극. 시간당 100밀리미터의 비가 쏟아지며 하수구가 범람하고 지대가 낮은 도로를 지나던 차량이순식간에 물에 잠긴 것도, 하필 그날 고열을 앓는 딸이 있어 당장 응급실을 가야 했고 비 때문에 구급차가 출동할 수 없어 딸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를 몰았던 것도 불가항력의 사고라고 칠 수 있다면, 그렇게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무엇을 탓하며 살아가는지 강설은 잘 알았다. - P32

명월도 강설에게 다를 바 없는존재인데. 곁에 있는 사람을 다 붙여도 명월 한 명을 못 이기는데. - P35

90분이면 다 낫겠지. 목이 뜯기거나 심장이 뽑히지 않는이상 대부분의 상처는 다 나을 것이다. 그러라고 진화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쫓겨나는 존재였으므로. - P46

강설은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다 문득,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진 자신과 버티기 위해 싸우는 법을 배운 명월이 안쓰럽다고 느꼈다. - P49

"마지막 말을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세상에서 너를 제일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대답을 듣지 못하더라도 들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걸 못한 게 후회가 돼요. 강설 씨,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요?
두려운 시절은 이미 다 지나갔는데, 강씨가 두려워하는 건뭐예요?" - P52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들을 연이어 떠나보내게 되면 마음은 주는 것이 아니라 보관해두는 것, 기댄다는 건 그것이 사라졌을 때 넘어진다는 것, 함께한다는 건 섞일 수 없는 물체가 잠시 머물다 갈뿐이라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 P53

어쩐지 지구는, 아니 인류는 우리의 예측과 다르게 세월을보낸 모양입니다. 대장님도 분명 흥미로워하실겁니다. 지구는 익숙하지만 낯선, 무섭고 아름다운 행성이 되었습니다. - P60

대장님, 우리는 앞으로 제2의 지구에서 새 문명을 꾸려야합니다. 우리는 밝게 빛나는 별에 태양이라는 이름을 붙일 것이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시를 건설할 테지만 우리가누렸던 과학과 기술을 재현하려면 배양에 있는 인간이 자라고, 배우고, 아이를 낳고, 세대를 몇천 년간 넘겨야 가능하겠지요. 저는 벌써 고민입니다. 우리가 살았던 첫 번째 지구에 대한기록을 남길 것인지에 관해. 그래도 대장님, 저는 인간이 바키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두 번 다시 어떤 것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P79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 P83

"보통 꿔요. 함장님도 끔찍한 꿈 꾸세요? 에디 박사님 말로는 잠들어 있던 뇌가 깰 때 제일 두려운 기억을 끄집어낸다는데 저는 몇 시간 내내 초코시럽에 밥 말아 먹었어요. 어렸을 때애들이 너는 뭐든 무조건 밥이랑 함께 먹느냐며, 초코시럽에밥을 말아 억지로 먹었거든요."
"복수했어?"
"당연하죠. 고추장에 캡사이신 넣어 만든 스파게티를 토마토스파게티인 척 먹였어요." - P88

사투르호는 선발대의 마지막 우주선이었다. 지구와 닮은행성을 찾고, 인간이 그곳에 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그렇게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을 이주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발전은 절망에 비례했다. 40년의 세월 동안, 죽음의 순간 아이큐가 높아진다는 바퀴벌레처럼 인류 역시 구두에 밟히기 직전에야 탈출로를 만든 것이다. - P91

할 생각이었다. 러스에게 말한 것처럼 태양계를 떠나는 일에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영원히‘라는 단어만큼은 어금니로지그시 씹어 입안에서 터져 흐르게 하고 싶었다. 입천장에 붙은 알약의 씁쓸함을 혀로 천천히 느끼듯이. - P91

시에라는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 푸른 점을 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스쳤던 나뭇잎,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던 파도, 달이 선명하게 뜨던 밤과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를다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리라. 생명이 태어나고 죽고, 무언가 창조되고 멸망하기를 반복했던 지구는 그 모든 걸 제 몸에한 줄의 테로만 남겨두고 새로이 바뀔 것이다. 인간은 다음 무대의 배우가 아니므로 그곳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흘러 저 행성이 인간의 흔적을 부단히 지우고 나면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제 이름도, 이곳이 어디인지도모르는 이름 모를 어느 생명체가 눈을 뜨겠지. 푸른 하늘과 광활한 대지, 혹은 흐르는 강물과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다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위대한 첫 발걸음을 내딛기 전까지 지구는 누구의 소유도 되지 못한 채 공전과 자전을 반복하리라. 시곗바늘을 되돌리면서, - P93

[지구는 현재 화산재에 휩싸여 있습니다. 화산재는 빛이들어가지도, 나올 수도 없을 만큼 두껍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지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안에서 내가 본 건 뭐야?"
[그건.]러스가 간격을 두고 대답했다.
[유리에 띄운 홀로그램입니다.] - P99

[저를 설계한 박사님이 그렇게 입력했습니다. 인간의 호흡이 아주 느려질 때는 다가올 미래를 알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시간을 멈추기 위한 몸의 마지막 발악입니다.] 러스의 근거 없는 추측을 듣고서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느낀 감정은 절망이 맞았다.
"내가 절망할 걸 알기에 숨겼다는 거지?"
[폭동은 절망에서 옵니다.]
"폭동은 희망에서 와."
시에라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지금 돌아가면 지구에 남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 P103

[함장님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때때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앗아갑니다.] - P105

"모두 지구를 향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이었던 우리가 사랑했던 세상 모든 존재들이 있던 저 작고 푸른 점을 향해."
경례. - P107

"형이 상상해봤는데, 만약 푸코랑 다르게 생긴 애가 본인이푸코라고 하면서 푸코의 기억과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나는 그 애를 푸코라고 생각할 거 같아. 사람이든 로봇이든 강아지든 기억이 같으면" - P117

숨 쉬지 않는 형 옆에 누워 아직 따뜻한 몸을 끌어안았다.
아빠가 나를 떼어놓고 안아줄 때까지 나는 그렇게 죽은 형 옆에 누워 잠을 잤고, 형과 옥수수밭에 누워 책 읽는 꿈을 꿨다.
행복해서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 P118

형이 죽은 이틀 후, 나는 옥수수밭에서 형을 만났다. - P123

형이 하는 말은 달콤하고 씁쓸했으며, 환상적이고 무서웠다. 형은 내 대답을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것마저 형 같았다.
형은 나에게 화를 내거나 재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 P130

정수리에서부터 흘러내리다 굳은 피가 이마와 볼에 묻어 있었다.
형이 나를 보고 웃었다. 볼에 경련이 심하게 일어났다.
그날 옥수수밭에서 네 번째 형을 만났다. - P140

돈이 많다고 기가 세지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악해지고 못돼지면 영혼에서 악취가 났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악하고 못됐다. 그래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귀신이 착한 사람만 데려간다는 말은 그런 의미였다. 귀신도 악취가 나는 영혼에는 붙기 싫으니까.
- P265

몇 번의 계절을 넘기고 내가 죽었던 그 계절로 다시 돌아올때까지, 나는 성불되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았고 대신 죽은 이의 이름을 외우고 다녔다. 나와 비슷하게 살았고, 비슷하게 죽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혹시나 나처럼 잊을까 봐, 그들은 멍하니 눈만 깜빡이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돌연 울음을 터트렸다. - P265

차사가 삼창을 할 때까지 나는 그들을 꽉 끌어안고 괜찮다고다독였다. 다음은 괜찮을 거야. 네가 누리지 못했던 남은 삶의 행복과 영광을 다음 생에 덧붙일 거야, 그럼 다음 생은 행복만가득할 거야. 나는 그들의 몸이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자 차사가 억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죽음은 그들의 것이고, 내죽음은 내 것이니 오히려 저승으로 가는 그들이 내게는 위안이었다. - P266

"추모가 많은 죽음은 심판을 받지 않고 그대로 다음 생으로넘어가니, 너는 곧바로 다시 태어나면 되겠구나."
나는 그곳에서 잊고 있던 이름을 되찾았다. 차사가 내 이름을 천천히 삼창했다.  - P266

"죽은자를 잊지 않고 추모하는 사람들 덕에 귀신이 이름을되찾는 경우가 종종 있지. 그러니 이미 이승을 떠난 너는 이 강을 건너 환생의 문을 넘기 전까지 네 인생의 억울함에 목매지말고 행복했던 순간만을 떠올려라. 그게 저들이 너에게 바라는 가장 간절한 바람일 테니. 네 몫의 서글픔은 저들이 다 해줄것이니. 다음 생에는 네 이름을 절대 잊지 말거라."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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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은 첫 작품을 통해서 저는 조금은 덜 막막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길 바라며 다시 고민에 들어가겠습니다. 저한테 주셨던 따뜻한 격려가 어딘가에서 유리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는 편지 같은 글을 쓰고 있는 신인 작가들의 작품에도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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