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나를 사로잡아 버린다. 나는 색을 쫓지 않는다. 언제나색이 나를 사로잡아 버리기 때문이다. 색과 나는 하나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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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 컸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미완성이라고 생각했던 그 여행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비록 목표했던 건축 작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대신 예상치 못한 만남들을 선사했기때문이다.  - P61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쳐간 길인데 길의 끝이야 아무려면어떤가.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여행이 우리를 창조한다."
- P61

"하늘은 빛의 원천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 P70

헤리히는 오솔길을 따라 1, 2층 정도의 아담한 파빌리온열 개를 배치했다. 사이를 잇는 길은 숲, 들판, 습지를 지난다.
파빌리온 건축은 헤리히의 조형관을 바탕으로 단순하고 정갈한 기하학적 형태를 지닌다. 낡은 재활용 벽돌로 외부를 마감해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섬 곳곳에 세워진 파빌리온은 들판에 홀로 서 있기도 하고, 숲속에 숨어 있기도 한다. 뭘러는 이들을 ‘침묵의 성자들‘이라고 불렀다.
- P75

뮐러는 라벨 없는 전시에 대한 질문에 "사람들은 모든 것이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 인생, 당신의 아이들은 설명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예술을 삶과사랑의 감정처럼 있는 그대로 느끼라는 것이다. 그는 선입견과 생각을 내려놓고 몸과 감각으로 작품을 깊이 경험해 보라고 권유했다.  - P82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예술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언어와 개념을 버리고 낯선 자연과 조형의 세계에 몰입해 보라고 한다. 그 속에서 어떤 감정 상태, 미적 경험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예술 체험이다. 미적 경험을 유발하는 형식이 예술이라면 인젤 홈브로이히에서는 자연도 예술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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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낮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미묘하고 섬세한 울림을 준다. 넓고 높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밝고 화사한 공간을 만들지만 침묵적인 분위기를 만들기에는 과하다. 빛을 더 섬세하게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빛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소중한 것을 더욱 소중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절제하는 것이다.
- P29

하루 일과를 마친 수도사들은 작은 아치 창문 아래에 머리를 두고 잠들었다. 숙소의 창문들은 침상 머리맡에 하나씩 위치했다. 하나의 생명에게 하나의 빛을, 그렇게 수도사들은 달빛과 별빛을 받으며 잠들었고, 새벽빛을 받으며 일어났다.
- P39

새벽부터 저녁까지 여러 번 미사를 드리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노동을 하고, 잠을 잤다. 수도원 생활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함께 이루어졌다. 미사와 같은 중요한 일과에는 예배당 종탑의 종을, 식사와 같은 일상 행위에는 조그만 종을 울렸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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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나? 어머니가 떠난 이후, 한동안그녀는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하지만 그때쯤에는 이미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조차 그만둔 상태였다.
그래도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 그녀는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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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명주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우리를알아본다거나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거나, 그런느낌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멍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긴 했다. 뭐랄까, 할머니는 자신과 우리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무엇일까. 기억일까. 아니면 상상일까. 갑자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진서야, 선을 지켜. 선을."
- P89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손목을 끌어당겼다. 할머니였다.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래, 할머나는 나를 항상 이렇게 쳐다봤다. 생각나는 말을 있는 그대로내뱉을 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목소리가 커질 때, 갑자기거짓말이 흘러나올 때 할머니는 늘 이런 표정으로 나를 봤다.
- P95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뭘 보는 걸까. 나를 보는걸까. 아니면 기억 속의 누군가를 보는 걸까. 그날 내가 명주를집에 초대해도 되냐고 물었던 날, 할머니는 애써 침착한 척했다. 그녀는 내가 맞이할 또 하나의 파국, 어차피 틀어질 기대를걱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 P100

칭찬했다. 그게 진심이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나를걱정했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을 나에 대해 늘 생각했으니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게 더많았다. 손녀가 서른두 살에 사귄 첫 친구는 유방암에 걸릴 것이고, 이후 자신은 치매에 걸려 그 손녀를 완전히 잊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그 아이는 끊임없이 선을 넘을 것이고, 이 때문에남아 있는 사람들을 잃어버릴까 봐 늘 겁에 질린 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실제로 두 사람이 자신을 떠나가는 과정을지켜보게 되리라는 것. 나이를 먹듯,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에걸쳐, 그 일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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