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명주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우리를알아본다거나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거나, 그런느낌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멍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긴 했다. 뭐랄까, 할머니는 자신과 우리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무엇일까. 기억일까. 아니면 상상일까. 갑자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진서야, 선을 지켜. 선을."
- P89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손목을 끌어당겼다. 할머니였다.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래, 할머나는 나를 항상 이렇게 쳐다봤다. 생각나는 말을 있는 그대로내뱉을 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목소리가 커질 때, 갑자기거짓말이 흘러나올 때 할머니는 늘 이런 표정으로 나를 봤다.
- P95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뭘 보는 걸까. 나를 보는걸까. 아니면 기억 속의 누군가를 보는 걸까. 그날 내가 명주를집에 초대해도 되냐고 물었던 날, 할머니는 애써 침착한 척했다. 그녀는 내가 맞이할 또 하나의 파국, 어차피 틀어질 기대를걱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 P100

칭찬했다. 그게 진심이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나를걱정했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을 나에 대해 늘 생각했으니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게 더많았다. 손녀가 서른두 살에 사귄 첫 친구는 유방암에 걸릴 것이고, 이후 자신은 치매에 걸려 그 손녀를 완전히 잊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그 아이는 끊임없이 선을 넘을 것이고, 이 때문에남아 있는 사람들을 잃어버릴까 봐 늘 겁에 질린 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실제로 두 사람이 자신을 떠나가는 과정을지켜보게 되리라는 것. 나이를 먹듯,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에걸쳐, 그 일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
- P1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