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 모두가 누군가의 탓을 하는 시대에 나는 누구를, 무엇을 원망해야 할지 몰랐다. 하루에 십수 명이 확진될 땐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야단하며 확진자 동선을 낱낱이 공개하고술집 영업을 제한하더니 이제는 하루에 몇십만 명이 걸려도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는 정부를? 이태원 상권이 싸그리 몰락한 이 판국에도 단 한 푼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임대료를 받아 챙기는건물주를? 아니면 딱 요맘때 이태원을 헤집었던 기남시 55번 환자를 최초로 한국에 이 병을 들여온 사람을? 아니면 어머니가 그토록 믿는 신을 탓해야 하나? 아무것도 믿지 않는 나는 도통 무엇을 탓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로, 이 모든 것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기로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 P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은 안 나요? 일단 내과에 가야 할 텐데 요즘은 열나면 진료도 안 해줘요."
"안 나. 오늘도 새벽 예배 올리고 왔어. 그러니까 괜찮아, 주님이 지켜주신다."
그 상태로 교회까지? 쇠귀에 대고 경을 읽어도 이것보단 답답하지 않을 것 같았다. - P200

 실로 오랜만의 스킨십이었다. 한영에게 안긴 채 삶이 이렇게만 흐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 제로가 되고 종국에 지긋지긋한 전염병이 끝나면 좋겠다. 이 모든 일들이 꿈결처럼 흘러가버리고 우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늙어가다 정말로 영감님이 되어, 그렇게 함께 늙어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  - P213

믿음과 거짓, 희망과 배신, 미래의 단절.
정신차리자. 행복을 꿈꾸기에 나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아무것도 믿지 말고, 그 무엇도 기약하지 말자. 그게 내 유일한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 P213

"기도는 아무리 넘쳐도 모자람이 없고, 결코 너를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별 대답이 없자 어머니는 악다구니를 썼다. 네가 그 험한곳에서 장사하는 꼴이나 보려고 이 고생을 하며 널 공부시킨 줄아느냐고, 그냥 공부도 아니고 돈 잡아먹는 사진 공부를 시키느라창자가 끊어질 것 같았는데 왜 멀쩡한 일을 그만둔 거냐고 - P217

"너는 주님의 자식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때도 주님이 지켜주시지 않았니. 믿음이 있으면 환란에 시달리지 않는다."
어머니는 ‘이태원발 확진 사태‘ 당시 추이를 보며 하루종일 통성기도를 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에서 이태원 때보다두 배는 더 많은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주님의 자식이 아닐까? - P216

 어머니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정말 내가 술을 파는 대신 땅을 파먹고 살면 그때는 만족을 할까. 어머니는 무엇을 위해 손수 바느질한 면 마스크를 쓰고 매일 기도를 하는 것이며, 또 무엇을 위해 울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가 진정 슬퍼하는 것은 내 삶일까 아니면 이미 지나가버린 당신의 삶일까. - P218

전국 각지의 다양한 장소에서 새로운 전파자들이 계속 등장했다. 사람들은 매번 그들을 도려내고 나면 세상이 예전으로 돌아갈것처럼 굴었으나, 전파는 전파를 낳고 최초는 무의미해졌으며 병은 계속 변하고 또 계속 번져나가면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P218

우리의 시작이 한 남자의 거짓된 삶과 그 삶보다 더욱 거짓 같은 죽음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관계란 참 농담 같은 것이기도했다.  - P2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의 크고 작은 거짓말은 사춘기 이후 계속된 일종의 병이라고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Y의 삶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완전히 달랐다. Y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며, 수원의 전문대 레크리에이션과에 들어갔다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그뒤로 집을 나가가족과 왕래가 끊긴 지 몇 년이 됐다고 했다. 영장을 받고 급작스레 입대해 훈련소에서 죽어버린 것 같다고 말하는 누나의 표정은슬프다기보다는 몹시 피로해 보였다.  - P185

 평온한 미래를 내내 그려왔다는 사실도 좀체 미래를생각하지 않는 내가 오롯이 현재를 살아왔던 내가 나도 모르는
새 감히 ‘영원‘이라는 꿈을 품어왔다니. 그런 내가 너무 불경하고한심해 또 웃음이 나왔다.  -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르게 또다시 리나 이모의 잔상을 떠올렸다. 한영을 대하는 태도,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묻지 않고, 설사 뭔가를 알게 됐더라도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자세,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두는 자세가 꼭 닮아 있었다. - P131

이모는 잠시 놀란 눈을 하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특유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로소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한영은 그제야 자신이 며칠 동안 숨도못 쉴 만큼 지독한 압박감에 시달려왔음을 깨달았다.
- P147

심지어는 한영에게조차. 한영은 리나 이모의 침묵이 어쩌면 한없는 이해와 관용에 가까운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 P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불러도 될만큼.
나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지금으로부터 보름이후의 삶에 대해. 그 길고 막막한 시간 앞에서 소원을 빌어보려고 해봤지만 그럴수없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