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그녀는 생각했다. 아 돈을 받아야겠구나 현금으로만. 누군가 배짱 좋게도 ‘연구소의 보고를 해주러 오는 건데 왜 돈을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요금을 두 배로 받을 생각이었다. 누군가아무 생각 없이 캘빈에 대해 지껄이면 세 배를 받을 생각이었다. 임신한 걸 두고 행복하지 않냐, 기적과도 같다 운운하면 네 배를 받을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먹고살았다. 아무런 공로도 받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연구를 해주면서 말이다. 예전에 헤이스팅스에서했던 일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 P205

"말인즉슨, 사람들은 임신을 무슨 세상에서 가장 흔한 질병으로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거예요. 발가락에 가시가 박힌 정도로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이죠. 하지만 알고 보면 임신은 트럭에 치이는 것과 동급입니다. 아니, 트럭에 치이는 편이 더 가벼울 지경이죠." - P221

"캘빈이 잘해서겠죠."
그러자 메이슨 박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조트 양, 에번스 때문만이 아니에요. 배를 잘 타려면여덟 명 모두 노를 잘 저어야 하거든요. 전부 다요. 어쨌든 하던 말을 계속하자면, 저는 당신의 상황에 대해서 좀 낙관하게 되었어요.
에번스가 세상을 떠나서 작지 않은 충격을 받으며 사셨을 테지요.
그 뒤로 임신을 이어가셨고요."
- P224

개도 있고, 로잉 머신도 하고, 앞으로 2번 자리에 앉으실 거고, 얼마나좋습니까."
그러더니 명랑한 기색으로 엘리자베스의 두 손을 덥석 잡고 꼭쥐는 게 아니겠는가. 메이슨의 말은 솔직히 말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이제껏 그녀가 들었던 말과 비교해보면, 마침내 처음으로 무언가희망이 보이는 말이었다. - P225

"신생아를 키우면서 괜찮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조트 양. 이 조그마한 악마는 당신 삶을 쪽쪽 빨아먹을 거라고요. 봐요, 당신 얼굴이 바로 그 증거잖아요. 꼭 사형수 같네. 내가 커피 끓여줄게요." - P241

멍청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슬로운씨는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지 깨달을 만큼 똑똑하지 못했다. - P251

해리엇은 그럴 때마다 방에서 나갔다. 이만하면 다른 여자를 보며홍분하는 남편의 모습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건 알았다. 그가 처음침대 옆에 여성 잡지를 두고 자위했던 건 신혼여행을 갔을 때였다.
하지만 이런 남편이라도 같이 살아야지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해리엇은 남자들이 이러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심지어 건강해서 그렇다고도 했다. 하지만 남편이 보는 잡지는 점점 선정성이 길어졌고, 이런 습관도 심해졌다. 이제 쉰다섯 살이 된 해리엇은 가습에 돌을 얹은 기분으로 남편의 끈적끈적한 잡지 무더기를 단정하게 정리했다. - P252

물론 볼품없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해리엇의 외모는 볼품없었고,
스스로 그 점을 알고 있었다. 또한 캘빈 에번스도 볼품없었고, 엘리자베스가 언젠가 집에 데려온 못생긴 개도 볼품없었고, 엘리자베스가 앞으로 낳을 아이도 어쩌면 볼품없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이들 중 그 누구도 추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도 절대로추할 리는 없다. 하지만 슬로운 씨는 홀로 추했다. 그 이유는 내면이못생겼기 때문이었다.  - P253

"제가 해병대에서 배운 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매일 아침이부자리를 단정하게 정리하라는 거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뭔지 아세요? 동트기 직전에 우현에서 차가운 물을 얼굴에 철찍맞는 거예요. 그러면 만사가 해결되죠." - P268

그런데 현재 그녀는 한부모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상 가장 비과학적인 실험, 즉 ‘인간 키우기‘ 실험을 해야 하는선도적인 과학자가 되었다. 부모가 되는 일은 공부하지 않은 영역의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너무나 어려워서 주눅이 드는데 선택지도 없는 주관식이 대부분이다.  - P268

"바쁘기도 하고요.
엘리자베스가 다시 설명했지만, 메이슨은 마치 지금이 아니면 살수 없는 특별가를 광고하듯 강조해서 말했다.
"새벽 4시 30분에 바쁠리는 없잖아요? 당신이 잠깐 자리를 비워도 그 시간에는 아기가 깨지도 않을 거예요.
얘는 엄마가 나갔다 온줄도 모를 거라고요. 자, 2번 자리 맡아주시는 겁니다. 기억하시죠?
우리 예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잖아요"
- P272

당연히 모든 걸 제칠 수 있는 우선순위인 것처럼. 그녀는 옛날에들은 일화를 떠올렸다. 어느 날 아침, 다른 팀 선수들이 자기네 5번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놀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팀의 콕스가 집으로 찾아갔더니 5번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때 콕스는 "알았어. 그래도 배 타러 오긴 할 거지?"라고 강압적으로 물었다고 했다. - P273

"우리 기분도 훨씬 더 좋아지겠죠. 옆집 분에게 부탁해보세요. 혹시 아기를 봐줄 수 있는지요."
"새벽 4시 30분에요?"
그녀가 묻자 메이슨 박사는 떠날 채비를 하며 말했다.
"사람들이 조정을 알아주지 않는 이유가 그겁니다. 사람이 밖에안 나올 때 배를 타니까요." - P273

"사실 생각해보면 조정은 아이 키우는 거랑 아주 흡사합니다. 조정도 육아도 인내심과 지구력, 힘과 헌신이 필요하니까요.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될지 보지 못한다는 것도 그래요. 오로지 우리가 어디까지 왔나만 볼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안심이 됩니다. 안 그래요? 물론 배가 뒤집어지는 일만 없으면 말이죠. 뒤집어지면 정말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
"배는 뒤집어진다 해도, 아이도 뒤집어지나요?"
메이슨은 차에 타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이들은 정신이 희까닥 뒤집어지죠. 어제 우리 애 하나가 다른 애를 삽으로 때렸어요" - P276

"이대로라면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할 겁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는 대로 학교에 보내세요. 그런 다음 제대로 돈을 주는 직업을 구하세요 아니면 부자랑 결혼하시든가."
엘리자베스는 차에 탄 다음 주어진 선택지를 검토했다.
은행을 털까.
보석상을 털까.
아니면 정말 혐오스럽지만, 자신을 털어먹던 곳으로 돌아갈까. - P279

"인간에게는 확신이 필요하니까. 인간은 어려운 시기를 견디며살아낸 인간에 대해 알아야 하니까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행동을 할 줄 아는 여타 종과 다르게, 인간에겐 언제나 다가오는 위협이 필요하고 또 선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필요해.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속담도 있잖아? 인간은 절대로 배우질 못하지. 하지만 종교 경전은 그런 인간을 어떻게든 제대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 P321

"재미라고요?"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봐주질 않으니까요."
"하지만 요리는 재미있는 게 아닙니다. 진지한 임무예요." - P338

그는 검사 결과지를 받으면 배신감이라든가 망연자실함 등의 감정들이 마땅히 들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전혀 느껴지지않았다. 결과지는 중요한 게 아니구나. 어맨다는 자신의 딸이었고,
자신은 어맨다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는 딸아이를 온 마음을 다해사랑했다. 생물학 따위 알게 뭐람.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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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도 엘리자베스 역시 동시에 로비에 나왔다. 캘빈처럼 그녀도 화장실에 가던 길이었다. 길게 늘어선 화장실 줄을 보고 좌절한채 몸을 휙 돌린 그녀는 어쩌다가 캘빈과 정통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캘빈은 곧바로 엘리자베스에게 토했다.
"세상에, 맙소사."
그는 토하는 중간중간 말을 뱉었다.
- P38

"물품 지원 받기가 왜 그리 어렵죠? 헤이스팅스는 돈이 많은데."
엘리자베스는 그를 빤히 응시했다. 마치 캘빈이 중국에 그토록 논이 많은데 어째서 굶어죽는 어린이들이 나오느냐고 묻기라도 한 듯한 눈초리였다. - P42

엘리자베스는 계속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지금 들은 제안에 마음이 갔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을 굳이 뛰어넘어야 한다는 전제자체가 싫었으니까. 애초에 시스템을 바르게 만들면 안 되는 거야? - P45

어떻게 머리카락에서 그런 냄새가 날까. 이 여자는 혹시 꽃으로 머리를 감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P49

그리하여 둘의 첫 키스는 그 어떤 화학 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구적인 결합을 형성했다. - P53

"아니야 제대로 알아둬, 캘빈,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은 사랑에대해서 설교하지만, 속에는 미움이 가득해. 누구든 편협한 믿음에 반기를 들라 치면 용서하지 않지. 오빠가 남자아이와 손을 잡은 걸 엄마가 본 날이 그랬어. 순리에서 벗어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은 지 1년뒤에, 오빠는 헛간에서 목을 맸어." - P65

"캘빈, 내가 배운 게 하나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언제나 간단한 해결책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야 볼 수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편이 훨씬쉽거든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걸 믿기는 오히려어려워 말하자면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믿기가 어렵다는 말이지."

캘빈은 길고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꾸준히 슬픔을 먹으며 자라난사람은 다른 이가 자신보다 더 큰 슬픔을 먹고 살았다는 걸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알았어, 그럼 다섯 번. 하지만 더는 안 돼. 그리고 나는 요리를 왜잘하거든, 캘빈 요리란 엄연한 과학이야. 따지고보면 화학이라고" - P75

엘리자베스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규정되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과거 그녀는 방화범의 자식, 남편을 갈아치우는 여자의 딸, 목매달아죽은 동성애자의 동생 아니면 호색한으로 유명한 교수 밑에 있던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지금은 유명한 화학자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오봇이 엘리자베스 조트로 받아들여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캘빈 에번스잖아! 물론 그가 엘리자베스에게 먼저 무례하게 굴었기에 그녀도 좀 무례하게 굴긴 했다. 그놈의 비커때문에 말이다. 그래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둘 사이에는 저항할수 없는 끌림이 존재했다.

"음, 마거릿은 계속 말했어. 토요일 밤이 되면 마침내 피터 딘먼부인이 된다고. 마치 여섯 살 때부터 줄곧 자기 성을 남편 성으로 바꾸는 걸 목표로 장거리 달리기를 해온 것 같았어."

어머니는 엘리자베스의 팔을 꼬집으며 덧붙였다.
"이 세상에 청혼을 거절하는 여자는 없어, 엘리자베스, 너도 거절하지 않게 될 거야."

 그녀가 캘빈에게도 말했듯, 요리는 화학이었으니까. 실제로 요리란 어딜 봐도 화학이다. - P107

그와 이디스는 부부라면 응당 이루어야 할 팀의 모습을갖춘 부부였다. 망할 놈의 조정 따위나 같이 하는 사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적합한 성별 역할을 따르는 팀, 도나티가 집에 돈을 벌어 가면, 이디스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식으로, 그것이야말로 정상적이고 생산적이며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결혼생활 아니겠는가? 도나티가 다른 여자와 자기도 하느냐고? 그런 걸 쓸데없이 뭐하러 물어보는가. 유부남 중에 다른 여자랑 안자는 놈이 어딨다고. - P127

그럼에도 엘리자베스는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알았다. 자신에게는 대단한 것을 이룰 가능성이 있었다. 누군가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운명을 타고나기 마련이고, 자신 역시 바로 그런사람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러면 머리가 폭 - P129

"남자는 더 있어요, 조트 양. 물론 에번스 씨처럼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남자는 아니라 해도, 남자는 다 똑같아요. 난 심리학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이쪽 방면을 좀 알거든요. 당신은 에번스 씨를 선택했죠 유명하고, 미혼이고, 어쩌면 당신 앞길을 도와줄 수도 있는 남자를 고른 게 뭐 그리 잘못이겠어요? 하지만 일이 잘 안 돼버렸네요. - P181

이곳에 졸졸 따라온 또 다른 하나는 같은 처지의 여자를 깎아내리면 높은 위치의 남자들이 어떻게든 자신을 높이 평가해줄 거라고믿는 여자였다. 더욱 나쁜 것은 이러한 비논리적인 대화가 과학의전당인 연구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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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
"철학자가 되라. 그러나 그 모든 철학의 한복판에서여전히 인간으로 있으라." - P109

우리는 경험이라는 렌즈를 통해세계를 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을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생각하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처한 가혹한 세계의 배후에어떤 힘이 있다고 믿게 되면, 어느 순간 두려움은 줄어듭니다. - P120

이마누엘 칸트
"점점 더 큰 경탄과 외경으로 마음을채우는 두 가지 것이 있다. 그것은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 P127

찰스 로버트다윈
"무지는 앎보다 더 많은 자신감을 낳는다.
이런저런 문제를 과학이 결코 풀 수 없다고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이 아는사람들이 아니라 조금밖에는 모르는사람들이다."
- P138

옳고 그름이 신과 별개의 것이라면,
무엇이 객관적인 도덕인지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주변에서 말이요. - P150

토머스 홉스
"자연 상태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추잡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
홉스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걸인에게 적선을 하는 모습을 본한 친구가 자네도 결국은 보통 사람들하고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홉스는 자신은 그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려 한 것뿐이고 동전 몇 닢으로 편히 잘 수 있다면싼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 P152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선악의 저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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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은 기존의진리들로부터새로운 진리를얻어내는 방법이고,
귀납은경험에 근거해 진리를찾는 방법이지만,
여기에는 오류가능성이있다는 것을 염두에두어야 합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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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44
효진
알다시피,은열
옥상에서 만나요
ㅡㅡㅡㅡㅡㅡ
보늬
영원히77사이즈
해피쿠키이어
이혼세일
이마와모래


정말로 날 만나고 싶었다기보다는 아들이 모아둔 돈은 자기 것이라고 확실히 하고 싶어 전전긍긍했던 것 같아. 좋은 회사에 다니는아들이 왜 나 같은 대학원생과 만나는지 모르겠다고 거의 직접적으로 말했어. 곤란한 얘기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사람은 신경도쓰지 않고 옆에서 휴대폰 게임을 했어. 뾰롱뾰로롱 하는 효과음도줄이지 않고서 도망쳐야겠다, 돌아와서 혼자 있게 되자마자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왔어. - P59

그 점잖던 사람이인터넷 싸이트에 내 이름과 얼굴을 다 공개하며 자기 집이 가난하다고 홀어머니를 대놓고 무시하면서 도망간 여자라고 글을 올리기시작했거든. 가난하기로 치면 나도 가난하고 사실 내가 도망친 건가난보다 좀더 어둡게 끈적이는 어떤 것으로부터였는데 나는 무슨
무슨 녀라고 유행하는 비속어들로 요약되어버렸어.  - P59

너는 그 사람을 처음 만나보고 나서 애는 엄청 쓰는데 재미있는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어딘가 열등감이 있을 것 같다고 싫어했는데……… 네가 만나본 내 남자친구중에 제일 싫다던 그 말을 왜 제대로 듣지 않았을까. 하여튼 그땐 너무 바닥이어서 너한테도 자세히 못했던 얘기야. - P60

 우리 반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많아선지 한중일 가리지 않고 동생들이 인생 상담을 해왔지만 웃는 얼굴로 거절하곤 했어. 계속 도망친 사람이 무슨 상담을 해주긴해줘,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어.  - P62

혹시 나의 특징은 도망치는 능력이 아닐까? 누구나 타고나게 잘하는 일은 다르잖아. 그게 내 경우에 도주 능력인 거지. 참 잘 도망치는 사람인 거야. 상황이 너무 나빠지기 전에, 다치기 전에,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도망치는 사람, 타이밍과 속도를 조절해서 도망치는 사람. - P62

내용을 대충 옮기자면 "윤회의 바퀴가 셀 수 없이 거듭 돌아 본래의 육(肉)과 혼(魂)이 먼지만큼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함께 있고 싶은 이들과 함께 있다면 그곳이 극락이다" 정도인데 만족감이 엿보인달까. 행복했는지 물어보고싶다. - P80

"솔직히 역사는 그 순간을 살았던 그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전근대사는 무기로 쓰면 안되고, 근현대사에 있어선 더철저하게 책임을 져야겠지. 민족주의자 말고 각자 나라에서 좋은시민들이 되면 지금과는 다를 거야.  - P83

"하지만 네 말은 그거잖아. 우리가 언젠가 뿔뿔이 돌아가고 ‘알다시피‘에 다른 멤버들이 들어온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은 우리들 것이라서 아무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거. 다른 사람에겐 지분이 없다는거. 효짱 얘기가 그 얘기 아니야?" - P84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복사뼈에 관한 꿈에서도 해방되었다. 언젠가 또 굉장한 이야기가, 도무지감당이 안되는 이야기가 안테나에 걸려 나를 사로잡는다 해도 환태평양이 내 편인 이상 문제없다. 논문이 되지 않으면 노래라도, 농담이라도 된다는 것을 아는 이상 괜찮다.
그래서 언제나, 알다시피 밴드입니다.
조금은 웃어주세요.
그럼, 노래 들어갑니다. - P90

언니들이 아니었으면 난 정말 뛰어내리고 말았을 거야. 경리부의 맏언니 명희 언니, 편집기자인 소연 언니, 제작물류부의 예진 언4. 세 사람은 마치 운명의 마녀들처럼, 다정하게 머리를 안쪽으로 기울이고 엉킨 실 같은 매일매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함께 고민해주었어.  - P95

 그즈음에 대한 기억은 불연속적이야. 더러운 이미지들만 스틸럼 남아 있어. 회사 언니들과 나는 한달에 한번씩, 회사에 남아도는영화표나 공연표로 외출을 했어. 그런 날에만 잠깐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우리는 입안의 쓴맛을 누그러뜨려줄 기름진 음식을먹었지. 울다가 웃다가 욕하다가 탈진한 채 늦은 밤 귀가하면 내가사람 같았어. - P96

규중조녀비서(閨中操女秘書)』라는 말도 안되는 제목의 그 책에는 제목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주문들이 가득 모여 있었어. 남편의시앗을 제거하는 주문, 학문에 뜻이 없고 주색잡기만 하는 장남을정신 차리게 하는 주문, 엉덩이가 가벼운 막내딸을 처신하게 하는주문, 입이 가벼운 동네 이웃에게 갚아주는 주문 얹혀사는 군식구를 독립시키는 주문・・・・・・ 그것은 주문서라기보다 전근대 여성들의고민을 모아둔 책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았지.  - P99

막상 일요일 쌀쌀한 저녁, 회사 옥상 문을 잠그고 오컬트 행위를하고 있자니 마음이 착 가라앉았어. 누가 보면 어쩌나 싶던 불안감도 건조한 서울 공기에 날아가고 말았지.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는소원을 비는 탑처럼 보였고, - P101

 도피 결혼에 대한 전근대적 저주였올지도 몰라. 하지만 따지고보면 백퍼센트도 아닌 결혼이 어딨겠어? 여자들에겐 언제나 도망치고 싶은 대상이 있는걸,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복받치게 억울했지.
- P105

남편은, 내가보기엔 꽤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기꺼이 내 친구의 절망을 빨았어.  - P111

알아? 소도시의 청소년, 특히 망한 공단이 있는 지역의 청소년들은 서울 애들보다 훨씬 더 농도 짙은 절망을 한다는 거?  - P113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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