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도 엘리자베스 역시 동시에 로비에 나왔다. 캘빈처럼 그녀도 화장실에 가던 길이었다. 길게 늘어선 화장실 줄을 보고 좌절한채 몸을 휙 돌린 그녀는 어쩌다가 캘빈과 정통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캘빈은 곧바로 엘리자베스에게 토했다. "세상에, 맙소사." 그는 토하는 중간중간 말을 뱉었다. - P38
"물품 지원 받기가 왜 그리 어렵죠? 헤이스팅스는 돈이 많은데." 엘리자베스는 그를 빤히 응시했다. 마치 캘빈이 중국에 그토록 논이 많은데 어째서 굶어죽는 어린이들이 나오느냐고 묻기라도 한 듯한 눈초리였다. - P42
엘리자베스는 계속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지금 들은 제안에 마음이 갔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을 굳이 뛰어넘어야 한다는 전제자체가 싫었으니까. 애초에 시스템을 바르게 만들면 안 되는 거야? - P45
어떻게 머리카락에서 그런 냄새가 날까. 이 여자는 혹시 꽃으로 머리를 감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P49
그리하여 둘의 첫 키스는 그 어떤 화학 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구적인 결합을 형성했다. - P53
"아니야 제대로 알아둬, 캘빈,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은 사랑에대해서 설교하지만, 속에는 미움이 가득해. 누구든 편협한 믿음에 반기를 들라 치면 용서하지 않지. 오빠가 남자아이와 손을 잡은 걸 엄마가 본 날이 그랬어. 순리에서 벗어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은 지 1년뒤에, 오빠는 헛간에서 목을 맸어." - P65
"캘빈, 내가 배운 게 하나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언제나 간단한 해결책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야 볼 수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편이 훨씬쉽거든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걸 믿기는 오히려어려워 말하자면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믿기가 어렵다는 말이지."
캘빈은 길고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꾸준히 슬픔을 먹으며 자라난사람은 다른 이가 자신보다 더 큰 슬픔을 먹고 살았다는 걸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알았어, 그럼 다섯 번. 하지만 더는 안 돼. 그리고 나는 요리를 왜잘하거든, 캘빈 요리란 엄연한 과학이야. 따지고보면 화학이라고" - P75
엘리자베스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규정되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과거 그녀는 방화범의 자식, 남편을 갈아치우는 여자의 딸, 목매달아죽은 동성애자의 동생 아니면 호색한으로 유명한 교수 밑에 있던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지금은 유명한 화학자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오봇이 엘리자베스 조트로 받아들여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캘빈 에번스잖아! 물론 그가 엘리자베스에게 먼저 무례하게 굴었기에 그녀도 좀 무례하게 굴긴 했다. 그놈의 비커때문에 말이다. 그래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둘 사이에는 저항할수 없는 끌림이 존재했다.
"음, 마거릿은 계속 말했어. 토요일 밤이 되면 마침내 피터 딘먼부인이 된다고. 마치 여섯 살 때부터 줄곧 자기 성을 남편 성으로 바꾸는 걸 목표로 장거리 달리기를 해온 것 같았어."
어머니는 엘리자베스의 팔을 꼬집으며 덧붙였다. "이 세상에 청혼을 거절하는 여자는 없어, 엘리자베스, 너도 거절하지 않게 될 거야."
그녀가 캘빈에게도 말했듯, 요리는 화학이었으니까. 실제로 요리란 어딜 봐도 화학이다. - P107
그와 이디스는 부부라면 응당 이루어야 할 팀의 모습을갖춘 부부였다. 망할 놈의 조정 따위나 같이 하는 사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적합한 성별 역할을 따르는 팀, 도나티가 집에 돈을 벌어 가면, 이디스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식으로, 그것이야말로 정상적이고 생산적이며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결혼생활 아니겠는가? 도나티가 다른 여자와 자기도 하느냐고? 그런 걸 쓸데없이 뭐하러 물어보는가. 유부남 중에 다른 여자랑 안자는 놈이 어딨다고. - P127
그럼에도 엘리자베스는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알았다. 자신에게는 대단한 것을 이룰 가능성이 있었다. 누군가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운명을 타고나기 마련이고, 자신 역시 바로 그런사람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러면 머리가 폭 - P129
"남자는 더 있어요, 조트 양. 물론 에번스 씨처럼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남자는 아니라 해도, 남자는 다 똑같아요. 난 심리학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이쪽 방면을 좀 알거든요. 당신은 에번스 씨를 선택했죠 유명하고, 미혼이고, 어쩌면 당신 앞길을 도와줄 수도 있는 남자를 고른 게 뭐 그리 잘못이겠어요? 하지만 일이 잘 안 돼버렸네요. - P181
이곳에 졸졸 따라온 또 다른 하나는 같은 처지의 여자를 깎아내리면 높은 위치의 남자들이 어떻게든 자신을 높이 평가해줄 거라고믿는 여자였다. 더욱 나쁜 것은 이러한 비논리적인 대화가 과학의전당인 연구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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